일상 이야기

조용하고 차분한 삶

강형구 2026. 4. 2. 08:00

   나는 부지런한 편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일찍 잔다. 일어나서 잘 때까지 거의 쉬지 않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한다. 수업을 준비하고, 내 연구를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이나 논문을 읽으며 계속 생각하고 쓴다. 나는 교육공무원으로서 내 할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매우 재미없게 사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재미없게 사는 게 왜? 그냥 이게 내 삶의 방식이다. 어쩌면 수도승과 같은 삶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수도승처럼 사는 것은 내가 오래전부터 꿈꿔온 삶이다.

 

   살다 보면 꼭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 있다. 꼭 해야 하는 일은 공식적인 일이다.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를 꼭 해야 한다. 이때 공부란 국어, 영어, 수학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실과, 체육, 미술, 음악 등도 공부다. 꼭 해야 하는 일이라서 열심히 한 거다. 대학에서는 수업에서 가르치는 공부만을 하고 싶지 않았다. 대학에서 나는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은 학생이었지만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실제로 그건 나 스스로 하는 공부였고, 대개 도서관에서 그 공부를 했다. 나는 대학 시절 나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을 매우 열심히 했다.

 

   공식적인 일은 꼭 해야 한다. 군대에 있을 때는 내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게 꼭 해야 하는 일이었고, 직장에 있을 때는 직장에서 내게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게 꼭 해야 하는 일이었다. 대학도 직장이다. 대학에서는 교육과 연구에 힘쓰는 것이 교수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이고, 그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학교 규정에 잘 나와 있다. 국립대 교수로서 꼭 해야 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고, 그 이외의 일들은 부수적이고 부차적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라는 것.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건 좋은 일일 수 있겠지만, 그 일을 어떤 사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당연히 그런 좋은 일을 어떤 사람에게 권유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권유 혹은 제안을 받은 사람이 그 일을 꼭 할 필요는 없으며 그러한 거절은 그 사람의 정당한 권리 행사이다.

 

   조직의 관점에서 볼 때 구성원은 조직을 위해 특정한 기능을 하는 조직의 일부이다. 그리고 조직을 위한 일이 반드시 그 구성원을 위한 일인 것은 아니다. 조직의 관점에서는 그 구성원을 쓰는 것(用)이고, 구성원은 그런 쓰임의 과정을 통해 자신이 가진 일부를 희생하면서(시간과 노력) 다른 일부를 얻는 것(금전 혹은 인정 혹은 지위)이다. 꼭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그런 일이 아닌 경우 구성원은 선택에 직면한다. 나의 일부를 희생하면서 조직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일부를 얻을 것인가, 아니면 조직이 내게 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원하지 않으면서 나의 일부를 희생하지 않고 보존할 것인가. 이런 선택에 직면했을 때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심사숙고한 후 자신의 소신에 따라서 결정하면 된다. 이건 그 개인의 선택 혹은 결정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나의 인간 됨됨이를 거듭 생각할수록 나는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며 살아가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임을 확인하게 된다. 나는 꼭 해야 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금전, 인정, 지위를 주는 일들에는 크게 흥미를 갖지 않는다. 꼭 해야 하는 일들만 하면서 살면 세상의 특별한 주목을 받지는 못하는 대신 비교적 조용하고 차분한 삶을 살 수 있다. 그리고 바로 그게 내가 원하는 삶이다. 나는 매일 내가 꼭 해야 하는 일을 충실히 하면서 조용하고 차분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다. 나는 부지런히 열심히 사는 걸 좋아하지만, 내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들에 얽매여 살고 싶지는 않다.

 

   이러한 면에서 나의 입장은 확고하다. 꼭 해야 하는 일은 반드시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일들에는 굳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그리고 이건 내 개인의 특징이지 덕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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