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이상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도 내가 한 명의 과학도라고 생각한다. 학창 시절 나는 과학을 공부하는 게 너무 좋았다. 수학, 물리,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나에게 어떤 종교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시절에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내게는 차례와 제사 같은 유교적 의례가 친숙했으며, 종종 부모님을 따라 산 속 깊이 자리한 사찰들을 방문하며 마음의 평온을 느꼈다. 나는 동양적 전통 속에서 자연 현상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걸 굳이 동양적 전통이라고 말할 필요가 있겠냐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나는 내가 경험에서 마주하는 자연에 대한 교과서적(혹은 선생님의) 설명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찾았다. 그렇게 과학의 역사와 철학을 만났다.
대학교수가 된 지금까지도 나는 왜 나 자신을 한 명의 과학도라고 생각하는 걸까? 최근 내가 살펴보고 있는 설치미술가 서도호(Doho Suh) 작가도 자신을 ‘나이는 오십이지만 어린아이와 같은 동화적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었어도 학창 시절에 꾸었던 꿈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전히 내가 철이 들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인가? 여전히 자연은 내게 너무 흥미로운 대상이다. 경이로움의 대상. 더 잘 알고 싶은 대상. 정복의 대상이 아니다. 나는 자연을 정복하고 싶지 않다. 왜 자연을 정복하려고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굳이 정복해야 하나?
내가 나를 여전히 한 명의 과학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 ‘철학을 위한 철학’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과학의 역사와 과학의 철학을 시작하게 된 것은 자연에 대한 교과서적 설명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과학의 역사와 철학이란 자연을 좀 더 명료하고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담론이라고 생각하며, 과학의 역사와 철학이 과학교육과 분리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일종의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여름과 겨울에 열리는 과학교육학회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것에도 이러한 이유가 있다.
나는 더 잘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런 바람에는 끝이 없다. 나는 전문가가 되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저 더 잘 이해하고 싶을 뿐이다. 학문적인 권위? 물론 그런 권위는 좋은 것이지만 그 권위가 내가 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더 좋은 음악을 계속 갈구하는 것처럼, 나 역시 자연에 대한 설명(담론)을 좋아하고 더 좋은 설명을 계속 갈구한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처럼. 그 이야기 또 해 주세요, 할머니. 이렇게 할머니를 재촉하는 아이처럼. 나는 계속 고전역학에 대해, 전자기학에 대해, 상대론에 대해, 마흐와 푸앵카레에 대해, 로런츠와 아인슈타인에 대해, 보어와 그 제자들에 대해 듣고 싶다. 지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그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담은 꾸러미가 바로 과학의 역사와 철학이고, 그게 바로 내가 과학사와 과학철학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이 이야기 꾸러미는 계속된다. 100년 전의 사람들이 소설을 썼어도 오늘날의 사람들이 계속 소설을 쓰는 것처럼. 이 이야기 꾸러미는 이어진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이야기하신 것을 내가 받아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처럼.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어느덧 나는 다시 중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있다. 자연에 대해 궁금해하는 학생으로.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문제집을 풀면서도 자연의 비밀을 궁금해하던 시절.
아마 나는 평생 이렇게 살지 않을까? 권위 있고 세련된 학문적 담론은 나에게 사교를 위해 입어야 하는 격식 있고 품격 있는 옷과 같지만, 나는 그런 담론이 어색해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잘 입지 않는다. 나는 소박하고 편안한 옷이 좋다. 그런 내게 자연은 여전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궁금증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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