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동양의 전통을 존중하고 배운다

강형구 2026. 3. 12. 08:02

   나는 동양인, 특히 한국인이다. 그런데 나는 평소에 한복을 입고 다니지 않는다. 서양 스타일의 옷을 입는다. 지금껏 나는 학교와 같은 우리나라의 교육기관에서 동양(한국)의 사상이나 동양(한국)의 과학기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나는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왔지만, 최근에 나는 그렇게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퍽 비극적인 일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의 말과 글은 우리의 것 아닌가? 우리가 평소 먹는 음식(밥, 김치, 장류, 찌개류)은 우리의 것이 아닌가? 스마트폰, 세탁기, 냉장고 등 전자제품은 우리의 것 아닌가? 세계화된 오늘날 굳이 서양적인 것과 대비되는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다소 시대착오적인 모습 아닐까?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는 내가 온전히 서양적 전통 속에 서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인종을 부정할 수 없고, 나의 모국어를 부정할 수 없으며,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외국에서 태어나, 외국에서 자라며 외국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이고, 외국의 국민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사정은 다를 것이다. 그 사람은 비록 동양인이고 한국계라고 하더라도 그건 오로지 생물학적으로만 그럴 뿐이다. 인간으로서 그 사람을 한국인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진정한 역할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은 한국에서 살며 한국에서 활동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서양철학,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그러므로 아직 내가 주로 연구하는 대상은 서양 출신의 철학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 계속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고, 나 이후의 세대에서는 상황이 바뀔 수 있으며 더 적극적으로는 상황이 바뀌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은 일은 서양철학, 동양철학의 구분을 없애고(서양 스마트폰, 동양 스마트폰이 크게 의미가 없는 것처럼), 동서양 구분이 없는 과학철학을 추구하면서, 연구의 대상을 서양 출신의 학자가 아니라 동양 특히 한국 출신의 학자로 삼는 것이다. 현재로서 과학철학 분야에서 그와 같이 연구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대상이 케임브리지 대학의 장하석 교수님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다. 장하석 교수님은 고등학생 시절 미국으로 가서 미국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영국에서 생활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이건 참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과연 어떻게 과학철학을 동양 특히 한국적 전통과 연결할 수 있을까? 나는 한국 승려들의 전통(원효, 의천 등), 한국 유학자의 전통(정몽주, 율곡, 퇴계 등)을 심정적으로 나 자신이 한 명의 지식인으로서 계승하고 있는 전통이라 보는데, 실제로 이런 전통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나의 학문에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건 나 개인의 한계이기도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한계인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상황은 내게는 온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물론 유교나 불교 또한 한반도가 외부로부터 수입한 학문적 전통이긴 했지만, 한반도에 수입된 이후 유교와 불교는 한반도의 상황에 맞게 깊이 소화되고 발전해서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 아닌가?

 

   이 문제가 나의 세대에서 온전히 해결되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의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영화, 음악, 드라마가 한국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세계 속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과학철학 역시 그런 수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동양의 전통, 동양의 자연철학을 무시하거나 배척하지 않는다. 비록 내가 전공자 수준으로 깊이 동양철학을 탐구할 수는 없겠지만,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을 선명하게 구분하거나 동양철학은 서양철학과 접목될 수 없으리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장기적으로는 동양, 한국적 전통을 과학철학과 접목하여 잡종을 만드는 게 좋다는 관점을 유지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