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수학에 대한 단상

강형구 2022. 3. 28. 15:22

   이상원 교수님의 책 [객관성과 진리 : 구성적, 다원적, 국소적 관점]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제 나는 4월 말까지 수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나에게 수학 공부란, 수학사 책도 읽고 수학 교과서도 읽으며 때때로 수학 문제들을 푸는 것이다. 수학 공부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다. 모름지기 공부란 즐겁게 하는 것이고, 그것이 나의 이해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문제를 빨리, 잘 풀어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수학에 대한 나의 이해가 증진되면 된다.

 

   박사학위 논문 작성과 관련하여 수학 공부를 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리만(Riemann)과 헬름홀츠(Helmholtz)의 생각을 직접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두 사람의 생각에는 수학적 통찰과 인식론적 통찰이 섞여 있고, 독자에 따라 수학적 통찰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고 인식론적 통찰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다. 특히 과학철학자로서 내가 흥미를 갖는 것은 두 사람의 인식론적 통찰이다. 나는 수학 논문들에 복잡하고 어려운 수식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 속에서 충분히 인식론적 통찰들을 포착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물리학 논문들 또한 마찬가지다.

 

   나는 기술적으로 너무 어려운 수학 혹은 물리학 문제들을 보면 기형적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기이한 문제들은 결국 학생들의 순위를 매기기 위한 불필요한 개념적 도구이며, 수학의 본질을 오도한다. 나는 수학 역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일종의 언어라고 생각한다.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굳이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필요는 없다. 부지런히 훈련하고 습득하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특정한 종류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 물론 언어를 통해 예술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또 다른 예로 육상을 들 수 있다. 달리기를 못하는 사람은 별로 없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로 잘 달리지만, 올림픽에 나가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달리기 선수들은 전체 사람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나는, 한편으로는 수학이라는 언어에 특출한 능력을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을 존경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일반인들이 굳이 수학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으며 특히 수학에 부당한 권위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예를 들어, 어떤 물리학자는 물리학 이론의 정수를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수학을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주장은 맞다. 그러나 그 주장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물리학 속에서 오직 수학적 공식들만이 중요하다고 볼 필요는 없다. 내가 볼 때 물리학 이론에서는 수학적 공식만큼이나 물리적 직관에 기반한 사고 혹은 추론의 과정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 혹은 추론 과정을 이해하고 납득하기 위해 반드시 수학 공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볼 때 수학적 공식은 경험과 관측에 기반한 인간의 직관적 추론을 보조하기 위한 주요 수단이다. 설혹 수학적 공식에 기반한 이론 전개가 놀랍고 중요한 귀결을 도출하더라도, 결국 이 또한 인간의 직관적 추론을 그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수학을 공부할 수 있다. 느긋하게 자신에게 맞는 책을 찾아 읽으면 된다. 이야기를 읽고 싶으면 이야기를 읽고, 문제를 풀고 싶으면 문제를 푼다. 그리고 수학이 무엇이고 어떤 의의를 갖고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보면 된다. 단, 수학에 불필요한 신비로움과 힘을 부여하는 글들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수학자나 물리학자를 일종의 마법사로 그리는 글들이 바로 그와 같은 위험한 글들이다. 나는 기하학의 기초에 관한 리만과 헬름홀츠의 논문들을 읽고 모리스 클라인이 쓴 [수학사상사]를 읽을 작정이지만, 아주 편안하고 즐거운 심정으로 읽을 예정이다. 수학 역시 일종의 언어이므로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연습하면 누구나 친숙해질 수 있으며, 이 또한 언어이므로 다채롭고 생생한 이 세계를 오직 거칠고 조야하게 나타낼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