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진짜를 알아보는 행복

강형구 2021. 12. 10. 10:23

   편견을 이겨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편견은 감염병처럼 확대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100명의 사람들 중 99명이 감염되고 1명이 감염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런 상황이 어느 정도 지속된다면, 어느 시점에서부터는 감염된 99명의 사람이 ‘정상’으로 여겨지고 나머지 감염되지 않은 1명의 사람은 ‘비정상’으로 여겨질 것이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세계관 역시 하나의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내가 알고 있던 방식 이외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방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그때 비로소 ‘사고의 독립성’이 중요해진다.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하기는 하되,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나 자신의 힘으로 독립적으로 행하는 것이 ‘사고의 독립성’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독립성’을 갖추는 것은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주거나 주입식 또는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사고의 독립성은 자신의 의지를 따라 자신에게 맞는 책들을 읽고, 글을 쓰고, 토론을 하고, 사회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기르기 위해서는 완전한 방임은 아니면서도 열려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도서관은 아주 중요한 기관이다. 사회에 속해 있는 누구나 도서관에 자유롭게 방문해서 무료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줄 필요가 있다. 또한 입시제도의 설계도 중요하다. 출제 범위가 아주 넓고, 기술적으로 매우 어려운 문제들을 짧은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이 맞출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학생들을 서열화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 지원을 위한 기본 자격 요건 정도로 삼는 것이 옳다. 이후 대학별로 서술형 시험, 논술 시험, 면접 시험 등과 같은 정성적 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학문 분야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독립성을 갖추어야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또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자신의 판단이 점점 정교해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어떤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식별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기가 만든 것이 진짜인지 복제품인지도 알 수 있다. 사고의 독립성을 갖춘다는 것은 자신의 의견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가 확실하게 이해하는 평가 기준을 갖추게 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 역시 느낄 수 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정확하게 식별하면 그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해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뛰어난 사람이기보다는 독립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그게 어떤 분야이든 상관없다. 나의 아이들이 나처럼 과학철학을 공부할 수도 있겠지만, 음악이나 미술을 할 수도 있고, 미용을 할 수도 있으며, 체육을 할 수도 있다. 제빵을 할 수도, 기계공작을 할 수도, 농업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완전한 방임, 완전한 자율성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나와 아내가 반-선험적인 조건이며 일종의 운명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이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고 싶다. 나와 아내가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내가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은 생각의 다양함과 자유로움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학원을 가라고 하기보다는 여유 시간에 함께 도서관에 가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세상에는 맛있는 것을 먹는 행복, 멋진 옷을 입는 행복,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인정 받는 행복 등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행복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진짜인 것을 알아보고 그 진짜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행복도 있다. 진짜인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사고의 독립성이 필요하고, 그 사고의 독립성은 일정한 자유로움 속에서 스스로의 힘으로만 얻을 수 있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 41살, 직장 생활 10년의 결론  (0) 2022.01.21
정치적 사고의 어려움  (0) 2021.12.13
2021년의 막바지  (0) 2021.12.06
初志一貫  (0) 2021.11.27
논문을 쓰며 행복함을 느낌  (0) 2021.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