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논문을 쓰며 행복함을 느낌

강형구 2021. 11. 1. 21:28

   나는 글을 쓰면서 행복함을 느끼는 편이다. 중학생 시절에 그러한 나의 성향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그 시절 나는 시, 소설 등과 같은 글들을 썼는데, 문학적으로 전혀 훌륭하지 않았고 재미도 별로 없었다. 다만 그때 썼던 글들의 내용은 퍽 철학적이었다. 자기성찰적인 글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후 나는 계속 글을 썼다. 가끔은 글을 쓰지 않으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이 밀려오기도 했다.

 

   10월 말에 전시를 오픈한 후, 다시 학위논문 작업으로 되돌아왔다. 어떻게 보면 100년 전의 유럽으로 되돌아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100년 전인 1920년대 초, 여전히 자연과학을 전공한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상대성 이론과 관련한 철학적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물리학 이론 속에는 경험적 사실들, 가설들, 허구들이 있고, 상대성 이론이 제시한 새로운 개념들은 단지 ‘허구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혹은 마흐의 실증주의적 입장에 서서 상대성 이론 속 객관적인 내용은 오직 관측가능한 사실들 뿐이라고 주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혹은 푸앵카레의 규약주의를 심화시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유클리드 기하학을 물리학적 기하학으로서 옹호해야 하며,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물리학적 기하학으로 사용하는 상대성 이론은 잘못된 이론이라고 주장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상대성 이론은 올바른 이론이자 혹독한 경험적 시험을 통과해 살아남은 이론이다. 그러나 미리 오늘날의 관점을 전제하고 100년 전의 논쟁들을 돌아보면 재미가 없다. 오히려 그때 논란이 되고 있던 쟁점들에 몰입해서, 그때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함께 생각하고 대화해 보면 더 재미가 있고 더 신선하다. 그러면 오히려 오늘날 만연해 있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의 의미를 설명하는 상투적인 내러티브들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와 같이 상대성 이론이 철학적 논란의 중심에 있는 상황에서, 라이헨바흐와 카르납 같은 논리경험주의의 창시자들은 과연 어떤 종류의 철학적 작업을 한 것일까? 그들은 새로운 물리학으로 인해 오래된 인식론이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새로운 인식론, 새로운 철학이 어떤 작업과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다.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고도로 전문화된 물리학자들이 이른바 ‘대중서’를 쓸 경우,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한 명의 ‘과학철학자’가 된다는 것이다. 건전한 상식과 이성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물리학의 의미를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서, 물리학자의 설명은 물리학 이론에 대한 자신의 철학적 이해에 기반해야 한다. 만약 그 물리학자가 자기 자신의 이해에 기반하여 설명하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가 제시한 철학적 이해를 차용해야 한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도 물리학자는 대중들을 위해 물리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물리학에 대한 일종의 철학적 이해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상대성 이론이 등장한 지 10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이론에 대한 대중적 설명에 있어 오늘날의 물리학자들이 100년 전의 학자들에 비해 유리한 것은 별로 없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상대성 이론에 대한 대중적인 과학서들을 읽었는데, 이 책들의 내러티브는 대개 비슷비슷하고 오늘날의 대중서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내게 더 신선했던 것은 아인슈타인 자신이 쓴 상대성 이론 해설서였고 아인슈타인 자신이 쓴 물리학 에세이 혹은 자서전적 글이었다. 상대성 이론에 대해 100년 전에 라이헨바흐와 카르납이 철학적으로 분석한 글들을 읽는 오늘날, 나는 동시대의 그 어떤 글들보다 100년 전의 글들 속에서 더 신선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100년 전에 활동했던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며 일종의 행복함을 느낀다. 나의 글이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느끼는 신선함과 행복함을 충분히 누리고 즐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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