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지키고 가꾸는 일

강형구 2020. 3. 8. 21:17

 

   문득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할머니는 깨어 있는 동안에는 늘 무엇인가 일을 하셨다. 밭에 나가서 김을 매거나, 방을 닦거나, 나물을 다듬거나, 설거지를 하셨다. 할머니는 영특하신 편은 아니셨지만 부지런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지는 못했지만, 할머니의 초인적인 부지런함은 나에게는 늘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나는 나의 할머니로부터 그런 부지런함을 물려받은 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지적인 영특함은 없지만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하는 근성과 부지런함은 있다.

  

   318일에 나의 다섯 번째 번역서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가 출판된다. 나는 학부 4학년 때(2004) 이 책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때는 이 책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읽어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고 싶었고, 그런 나의 바람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나는 거듭 이 책으로 되돌아왔고, 석사학위 논문을 이 책에 대해서 썼고, 결국 올해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출판하게 되었다. 이 책의 실질적인 번역 작업 기간은 1년 미만이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이해하고자 처음 뜻을 세운 이후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미련한 곰 같은 짓을 한 것이다. 엄청난 고집 혹은 집착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등장한 이후 뉴턴 물리학의 철학적 의의에 대한 많은 성찰들이 있었다. 뉴턴 자신조차도 이런 성찰을 피해나갈 수 없었다. 20세기 전반기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다수 물리학자들의 공동 작업을 통해 탄생한 양자역학은 이에 관련된 여러 철학적 문제들을 제기했다. 내가 한스 라이헨바흐라는 철학자를 나의 주된 연구 대상으로 선택한 것은, 그가 20세기 전반기에 당대의 물리학자들과 활발하게 상호작용 하면서 20세기 물리학의 철학적 의의를 심도 있게 연구한 학자였기 때문이다. 물론 라이헨바흐가 그러한 연구를 한 유일한 철학자는 아니며, 그의 사후인 20세기 후반기에는 그에 못지않은 혹은 그보다 더 뛰어난 많은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계속 그의 철학에 대해서 연구하는 것은 그의 철학이 충분히 연구될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흄의 철학, 칸트의 철학이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 역시 연구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내가 라이헨바흐의 과학철학을 제대로 연구하기에는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이 모자란 내가 그래도 계속 이 연구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일차적인 이유는 좀 이기적이지만 자기만족이다. 그 다음의 이유는 나의 연구가 나 아닌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마치 내가 이정우 선생이 번역하신 [시간과 공간의 철학]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던 것처럼 말이다.

  

   내년이면 내 나이 마흔이다. 20대에는 나의 뜻이 언제까지나 영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이러한 뜻이 과연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 의해서 이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또한 나의 남은 삶 속에서 내가 이 뜻을 잘 가꾸어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달리 방도가 없다. 그저 부지런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남긴 책들, 내가 남긴 글들이 큰 반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고요히 시간 속에 묻혀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부지런히 번역하고 생각하고 글 쓰고 발표하고, 기회가 되면 마다하지 않고 강의를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니겠는가.


   나는 그렇게 나의 정원을 지키고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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