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정독도서관

강형구 2013. 9. 15. 22:25

 

   이번 학기에 대학원에 복학하여 김기현 교수님의 [인식론 연습] 수업과 홍성욱 교수님의 [과학기술과 사회연구]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과학기술과 사회연구] 수업에서 추석이 끝나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을 다룬다고 하여,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책을 빌리려고 찾아보았지만 서울대학교 도서관과 관악도서관에서는 이미 관련 책들이 대출이 된 상태였다. 그래서 나는 전에 도서관회원증을 만들어 놓은 바 있는 정독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비트겐슈타인에 관한 책들을 찾아보았다. 다행히도 찾는 책들이 다 대출되지 않은 채 남아 있어, 오늘은 서울대학교 도서관이나 관악도서관이 아닌 정독도서관으로 갔다.

 

   3호선 안국역에서 내려 1번이나 2번 출구로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정독도서관이 나온다. 내 기억으로 정독도서관은 예전에 경기고등학교였는데, 경기고등학교가 이사를 한 이후 옛 학교 건물을 도서관으로 바꾸었다. 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일반열람실(3열람실)에 자리를 잡고, 노먼 맬컴(Norman Malcom)이라는 철학자가 비트겐슈타인을 회상한 [비트겐슈타인의 추억]이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실제로 비트겐슈타인을 만나 오랫동안 비트겐슈타인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 그와 함께 시간을 나누었던 사람이 쓴 책이기에, 학술적이고 어렵다는 느낌보다는 인간적이고 따뜻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의 양이 그리 많지도 않았고, 비트겐슈타인이 노먼에게 쓴 편지들의 내용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나는 비트겐슈타인이 한 인간의 '지적 능력'보다는 타인에 대한 '인간적인 따뜻함'을 더 높이 평가했다는 노먼의 회상이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도서관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많았고, 도서관 밖의 잘 꾸며진 벤치들에 않아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았다. 날씨도 화창해서, 따뜻한 가을 느낌이 나는 푸른 하늘이었다. 나는 곁에 은혜가 없어 다소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우리가 곧 다가올 추석 연휴에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나는 인문사회자연과학 서고에서 비트겐슈타인이 쓴 [철학적 탐구](이영철 옮김)와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박정일 옮김), 엔서니 케니(Anthony Kenny)가 쓴 [비트겐슈타인](김보현 옮김)을 빌렸다. 그리고는 다시 열람실로 돌아가 회사 업무와 관련된 책인 [금융경제기초] 2권(한국금융연수원)과 [인문학 공부법](안상헌 지음)이라는 책을 읽었다. 부담을 갖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책장들을 넘겼다.

 

   과학철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의도적으로 비트겐슈타인과 콰인(W. Quine)의 저작들을 피해 왔다. 왜냐하면 내가 공부할 당시 이 두 학자의 철학이 과학철학에 '후기 논리실증주의'라는 이름으로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고, 이들의 철학이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논리경험주의의 철학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가끔씩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자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정보들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었고, 그가 보여준 순수하고 정열적인 삶의 양식이 인간적으로 존경할만 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종종 있었다. 철학사를 보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철학을 하는 학자들을 찾아볼 수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니체(Nietzche)와 비트겐슈타인이 그러했다.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아인슈타인(Einstein)과 라이헨바흐(Reichenbach)도 그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과 길거리에서 나는 틈틈이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이 사람들과 더불어 나는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비록 활자화되지는 않겠지만, 이들과 더불어 나는 이 사회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들과 더불어 삶을 유지하면서 더 나아가 무엇인가 가치 있는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내가 이 곳에서 할 수 있는 제법 괜찮은 일들이 무엇일까? 나는 내일부터 다시 출근을 하고, 틈틈이 수업 준비를 할 것이다. 겉으로 보면 표면적이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는 어떤 방향을 갖고 조금씩 좀 더 나은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다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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