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독서일기

강형구 2016. 10. 15. 19:01

 

   오늘 문득 떠오른 생각. 나는 살아가면서 나의 감각들로부터 온갖 정보들을 얻는다. 내가 의식적으로 얻는 정보들 중에 압도적으로 많은 정보는 시각적 정보들이다. 그런데 시각적 정보들에는 짧은 문장들 역시 자주 포함된다. 예를 들어 나는 오늘 서울로 출장을 왔는데, 동대구역에서 KTX 열차를 기다리면서 나는 역사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내 시야 속에서는 사람들이 서 있거나 벤치에 앉아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고, 열차 정보를 알려주는 전광판에서는 곧 출발하는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한다는 짧은 문장을 내보내고 있었다. 내가 눈으로 바라보는 거의 대부분의 공간에서 나는 짧은 문장이나 도형이 가미된 상징 기호들을 본다.

  

   나는 이러한 시각적 정보들과 단편적인 문장들, 실용적으로 유용한 상징 기호들로부터 잠시 떠나기 위해서 책을 찾는다. 책에서는 다른 시각적 정보들은 거의 찾을 수 없고 일련의 문장들이 일관성 있게 제시된다. 나는 어제까지 버트런드 러셀이 쓰고 석기용 선생님이 번역한 [과학의 미래]를 읽었다. 명료하게 사고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꾸준히 유지했던 철학자인 러셀의 사상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이 책을 틈틈이 읽는 데 일주일 가량이 걸렸다. 그다지 크지 않은 이 작은 책에서, 이 책에 잉크로 쓰인 많은 문장들 속에서 나는 단편적인 시각적 정보들로부터는 얻기 어려운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

  

   책은 문장들로 구성된다. 문장은 인간의 생각을 표현한다. 생각이 문장이 되고, 문장이 글을 이루며, 책은 글들로 채워진다. 나는 생각을 문장으로 표현하고, 그렇게 표현된 문장이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표현하는지 음미해본다. 그리고는 문장으로 표현된 나의 생각이 나를 포함한 세계에 대해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고민한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갖고 있거나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문장을 만나면 나는 나도 모르게 즐거움과 기쁨을 느낀다. 눈을 통해 시각 정보를 처리하고 혀를 통해 미각 정보를 처리하듯, 나는 문장들을 읽고 그 문장들의 주인인 저자가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직관적으로 판단한다. 러셀은 존경할만한 저자다. 러셀은 과학적 지식에 대한 상식적이고 논리적이며 단순한 개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의 사상에는 다소 소박한 측면이 있다. 이는 그를 동시대의 위대한 수학자였던 바일이나 힐베르트에 비한다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내가 러셀의 책 이후로 읽기 시작한 책은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가 쓰고 노태복 선생님이 번역한 [교양인을 위한 수학사 강의]. 인간은 지구 위에서 살아오며 보고 생각한 것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상해왔다. 실제 물건을 본뜬 작은 모형을 만들거나, 물건의 갯수를 단순한 기호로 기록했다. 인간은 생각을 물질화하고 표상한다. 그렇게 표상된 생각이 기호들에 담기고, 이 기호들을 다양하게 조작해 왔던 장구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서 펼쳐진다. 나는 놀라움과 흥미로움을 느끼며 이 저자의 문장들을 읽는다. 영어로 된 원래의 문장들이 부드럽고 매끄러운 우리말 문장들로 옮겨져 있어 더욱 만족스럽다. 책에서 눈을 돌리면 직사각형의 건물들, 다양한 색상의 간판들, 인상적인 디자인이나 문구들이 보인다. 다시 책으로 시선을 옮기면 여전히 문장들은 종이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나는 이러한 소박한 사실에 기뻐하며 다시금 문장들이 말하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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