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2010년 겨울 독서모임 공부자료 02

강형구 2016. 8. 26. 08:26

 

1. 필립 프랑크(Philipp Frank, 1884-1966)

 

   필립 프랑크는 아버지 이그나츠 프랑크(Ignaz Frank)와 어머니 예니 파일렌도르프(Jenny Feilendorf) 사이에서 태어났다. 필립은 비엔나 대학에서 볼츠만(Boltzmann)의 지도 아래 물리학을 공부했으며, 190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학창시절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과학철학이었다. 나는 매주 목요일 밤에 낡은 비엔나 커피 하우스에서 이루어졌던 학생들의 모임에 참여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물음에 거듭 되돌아오곤 했다. 어떻게 우리는 전통 철학에서 보여지는 애매모호함을 벗어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는 서로 요원해진 철학과 과학을 화해시킬 수 있을까?

 

   프랑크가 말하는 학생들의 모임은 이후 비엔나 모임으로 알려진 학파로 발전하게 된다. 이 시기에 모임에 참석했던 다른 구성원으로는 한(Hahn), 폰 미제스(Von Mises), 그리고 경제학자이자 사회학자였던 오토 노이라트(Otto Neurath)가 있었다. 이 모임은 과학적 언어와 과학적 방법론을 탐구하는 논리실증주의의 철학을 발전시킨다. 이 시기에 프랑크는 1907년에 비엔나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폰 미제스와 친구가 된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우정은 평생동안 지속되었으며 둘은 몇몇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한다.

  

   1907년에 프랑크는 인과성에 대한 중요한 논문을 작성한다. 이 논문의 아이디어에 깊은 인상을 받은 아인슈타인(Einstein)은 이 문제에 대해 프랑크와 토론하게 되고, 이 토론을 계기로 프랑크와 아인슈타인은 평생 동안의 우정을 발전시킨다. 프랑크와 아인슈타인 둘 다 과학철학을 사랑했으며 둘의 아이디어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쳤다. 교수자격을 취득한 프랑크는 1910년에 비엔나 대학의 강사로 임명된다. 1912년에 프랑크는 아인슈타인의 추천으로 프라하 대학에 있던 이론물리학 교수 자리에 아인슈타인의 후임으로 취임한다.

  

   프랑크, , 폰 미제스는 1920년대 광범위하고 활동적인 논리실증주의의 비엔나 모임의 일원이 된다. 철학에 관심이 있었던 수학자들과 과학자들, 즉 리만, 헬름홀츠, 헤르츠, 볼츠만, 뿌엥까레, 힐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비엔나 모임의 사고가 형성되는 데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좀 더 철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프레게, 러셀, 화이트헤드가 그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아래의 인용은 프랑크 자신이 과학과 수학, 철학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다고 느꼈는지를 설명해준다.

 

   ...그는 항상 인간과 자연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얻고자 했다. 그에게 물리학은 특정한 기술적 문제들에 대한 신뢰할 만한 해답을 제공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지식의 본성, 범위, 타당성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통찰을 주었다... 그는 현대 자연과학의 비판적이고 이지적인 방법론이 삶에 대한 안정된 시각을 갖는 데 있어 최선의 방법론이라고 믿었다.

 

   프랑크와 폰 미제스 사이의 우정은 1920년대 중반의 공동작업으로 발전한다. 그들은 1925년에 출판된 두 권의 두꺼운 책역학과 물리학에서의 미분방정식과 적분방정식을 공동 저술한다. 프랑크는 19201116일에 하니아 게어존(Hania Gerson)과 결혼한다.

  

   프랑크는 프라하 대학에 1938년까지 머무른다. 그 해에 이루어진 뮌헨 조약에서 체코슬라비아 공화국의 많은 영역이 독일에 복속되었다. 1938312일에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 군대가 오스트리아에 들어오고, 오스트리아에 나치 정부가 수립된다. 비엔나 모임에 소속되어 있던 프랑크와 다른 회원들에게 정치적인 압력이 행사되었으며, 프랑크를 비롯한 비엔나 모임의 회원들이 미국으로 피신하면서 비엔나 모임은 해산된다.

  

   미국에서 프랑크는 처음에는 하버드 대학의 방문강사로 임명되었다가, 이후 하버드 대학의 물리학 및 수학 강사로 임명된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그의 친구 폰 미제스와 다시 만난다. 1947년에 프랑크는 아인슈타인에 대한 뛰어난 전기인아인슈타인: 그의 삶과 시대를 저술한다.

  

   프랑크는 수학의 광범위한 주제들에 대해서 연구했으며, 물리학과 철학에 대해서도 폭넓게 연구하고 이를 출판했다. 수학 분야에서 그는 변분 해석(calculus of variations), 푸리에 급수, 함수 공간, 헤밀톤적 기하광학, 슈뢰딩거의 파동역학, 상대성이론 등에 대해서 연구했다.

 

2. 삐에르 뒤엠(Pierre Duhem, 1861-1916)

 

  

   삐에르 뒤엠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수학자, 과학철학자로, 그는 중세 과학 발전에 있어서의 실험적 기준의 미결정성에 대한 저술들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뒤엠은 그의 시대의 과학, 특히 수력학(hydrodynamics), 탄성(elasticity), 열역학(thermodynamics)의 영역에서 중요한 공헌을 했다.

   

   뒤엠의 철학: 뒤엠의 과학철학적 견해는 그의 책 물리 이론의 목적과 구조에 자세히 해명되어 있다. 그는 프린키피아의 보편중력법칙이 현상으로부터(케플러의 2, 3법칙을 포함해서) 연역되었다는 뉴턴의 주장에 반대했다. 뉴턴의 이러한 주장은 독일의 논리학자였던 라이프니츠에 의해서 비판되었으며, 귀납에 대한 흄의 논리적 비판을 받아들였던 칸트도 뉴턴의 주장을 공격했다. 그러나 뒤엠의 저술의 독창성은 뉴턴의 보편중력이론이 행성 운동에 대한 케플러의 법칙들과 완전히(flatly) 모순된다고 주장한 데 있었다. 왜냐하면 행성간 중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섭동이 케플러의 행성 궤도로부터 실제 행성의 궤도가 엇나가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명제도 이 명제와 모순되는 명제들로부터 도출될 수 없는 까닭에, 뒤엠에 의하면 뉴턴은 결코 케플러의 법칙으로부터 보편중력의 법칙을 직접적으로 연역한 것이 아니었다.

  

   뒤엠은, 특정한 관찰자료들의 집합이 주어졌을 경우 이를 설명하는 무수히 많은 설명들이 존재한다는 이른바 뒤엠-콰인 논제로 잘 알려져 있다. 이 논제는 뒤엠-콰인 미결정성 논제와 같다. 이 논제는 본질적으로는 귀납에 대한 흄의 비판과 동일하다. , 경험적 증거는 이론 선택 혹은 이론 수정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귀납에 대한 유일하게 알려진 대안은 뒤엠의 도구주의(instrumentalism), 우리는 반증을 통해서 배운다는 포퍼의 논제(뒤엠은 거부했지만 콰인은 승인했던)이다.

  

   과학철학에서 뒤엠-콰인 논제가 매우 유명하지만, 실제로 뒤엠과 콰인은 서로 상당히 다른 논제를 주장했다. 뒤엠은 물리학에서의 실험적인 이론이 생리학 및 화학의 몇몇 분과 영역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론 군(theoretical group)에 대한 뒤엠의 개념은 한계를 갖고 있었는데, 왜냐하면 모든 개념들이 서로 논리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논리학 및 수학과 같은 선험적인 분야들을, 실험에 의해 시험될 수 있는 이론 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반면 콰인은 이론 군을 인간 지식 전체의 단위로 보았다. 콰인에 의하면 수학과 논리조차도 우리의 완고한 경험을 바탕으로 수정되어야 하며, 이는 뒤엠이 결코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던 입장이었다.

  

   영국의 귀납적 전통에 대한 반대: 뒤엠은 물리학이 다른 과학들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특정한 방법론적 한계에 종속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책물리 이론의 목적과 구조(1914)에서 뒤엠은 베이컨적인 결정적 실험에 대해 혹독한(devastating) 비판을 가한다. 뒤엠에 따르면 물리학에서의 실험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이론적 틀을 통한 관찰들의 해석이다. 더 나아가, 아무리 실험을 잘 구성한다고 해도 독립된 단일 가설을 실험적으로 시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험은 서로 엉켜있는 가설들의 모임, 배경 가설들, 시험되는 이론들 모두와 관계가 있다. 뒤엠에 따르면, 이와 같은 필연적인 전체주의(holism)적 관점에서 볼 때 결정적 실험은 불가능하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뒤엠은 사실과 관찰들로부터 직접적으로 연역한다는, 물리학의 방법론에 대한 뉴턴의 기술을 비판했다고 볼 수 있다.

  

   “신자(Believer)의 물리학이라는 제목이 붙은물리 이론의 목적과 구조부록에서 뒤엠은, 물리학과 종교 사이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과학철학이 줄 수 있는 함축을 이끌어낸다. 뒤엠에 의하면,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교리들은 객관적인 실재와 관련되는 판단들인 반면, 물리 이론의 원리들은 객관적 존재가 결여된 특정한 수학적 기호들과 관련된다. 따라서 위의 두 종류의 원리들은 서로 공유하는 용어들이 없으며, 이러한 두 종류의 판단들은 서로 모순되거나 일치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엠은 신학자나 형이상학자에게 있어서도 물리 이론에 대한 세부적인 지식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지식을 갖고 있어야지만 사색하는 데 있어서 이 지식을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사: 니콜 오렘(Nicole Oresme)은 중세의 저명한 학자다. 뒤엠은 중세의 스콜라적 전통이 근대 과학의 기원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뒤엠은 과학사에서의 업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그의 업적은세계의 체계: 플라톤에서 코페르니쿠스에 이르기까지 우주론적 교리의 역사라는 10권짜리 책으로 출판되었다. 이전까지의 많은 역사가들(볼테르, 꽁도르쎄 등)이 중세 시대를 낮게 평가했던(denigrade) 것과는 달리, 그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서양과학이 가장 결실이 풍부했던 시기에 서양과학을 육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음을 보이려 했다. 이 분야에 대한 그의 연구는 정역학의 기원에 대한 그의 연구로부터 촉발되었는데, 그는 존 뷔리당(John Buridan), 니콜 오렘 및 로저 베이컨(Roger Bacon)의 정교한 논의들로부터 놀라움을 느꼈다. 그는 그들을 근대과학의 시초를 세운 인물들로 여기게 되었으며, 뒤엠에 따르면 이들의 업적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및 이후의 사상가들의 발견들 중 많은 부분을 예견하고 있었다. 뒤엠은 근대의 역학과 물리학은 중세 학파들의 중심부에서 표명된 원리들로부터 발전된 결과라고 결론내린다.

  

   열역학: 뒤엠은 또한 열학학적 작업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이른바 깁스(Gibbs)-뒤엠 관계와 뒤엠-말귤레스(Margules) 방정식을 발전하는 데 부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뒤엠은 물리학자들이 열역학의 제 1 원리들로부터 물리학의 다른 분야들(화학, 역학, 전자기학 등)을 도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3. 결정적 실험(crucial experiment)

    

   과학에서 결정적 실험이란, 특정한 가설 혹은 이론이 맞는지의 여부를 결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실험을 일컫는다. 특히 그러한 실험은 전형적으로 기존의 가설 혹은 이론이 제공하지 못한 예측 결과를 제공해야만 한다. 결정적 실험의 개념은 프란시스 베이컨의 신기관(Novum Organum)에서 비롯되었으며(‘결정적 사례라는 이름으로), 이 개념은 후크 및 뉴턴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특정 가설 혹은 이론에 대한 결정적 실험을 제공하는 것은, 해당 가설 혹은 이론이 기존에 확립되어 있는 과학적 지식의 일부분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결정적 실험이 제공되기 전에 이론이 충분히 발전한 사례들을 과학의 역사에서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실험결들과 일치하지만 결정적 실험을 제공하지는 않은 이론의 경우에는, 대개 그 이론에 대한 결정적 실험을 발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탐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아이작 뉴턴은 1687년에 행성 운동에 관한 데까르뜨의 소용돌이 이론에 대한 부정적 증명(반증)을 제시했다.

  

   20세기에 있어서의 유명한 결정적 실험은, 일식 도중의 항성들의 위치를 기록하기 위해 1919년에 아프리카의 프린시페(Principe) 섬으로 가 있던 아서 에딩턴의 원정대에 의해 시행되었다. 항성들의 위치에 대한 관측은 1915년에 아인슈타인이 출판한 일반상대성이론이 예측했던 중력 렌즈 효과를 입증했다. 에딩턴의 관측 결과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한 최초의 확고한 증거로 간주된다.

  

   때로는 새롭게 제시된 이론이 이전까지의 이론이 설명하지 못한 변칙적인 실험 결과들을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한 예로 막스 플랑크(Max Planck)가 흑체 스펙트럼을 설명하기 위해 1900년에 제시한 양자 가설을 들 수 있는데, 이 가설은 이전까지의 고전적인 레일리-진스(Ralyleigh-Jeans)의 법칙이 설명하지 못했던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례들은 완전히 수립된 새로운 이론으로 여겨지기에는 불충분하며, 양자역학의 경우 새로운 예측에 대한 입증을 통해 완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4. 뒤엠-콰인 논제(DuhemQuine thesis)

 

    뒤엠-콰인 논제는(뒤엠-콰인 문제라고도 불린다) 하나의 과학적 가설을 분리시켜서(isolate) 시험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주장하는데, 왜냐하면 가설에 대한 경험적 시험은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배경 가정들(보조 가정 혹은 보조 가설이라고도 불린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는 가설은 그 자체로 예측을 만들어낼 수 없다. 반면 가설의 귀결들은 전형적으로 그 귀결들을 도출되는 데 사용된 배경 가정들에 의지한다. 이는 이론의 배경 가정들이 증명되지 않았을 경우, 이론이 경험적 방법에 의해 궁극적으로 반증되는 것을 막는다. 왜냐하면 보조 가정들은 때때로 하나 또는 그 이상의 과학적 이론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구가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증명하기 위해, 몇몇 사람들은 만약 지구가 운동을 한다면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을 때마다 내팽개쳐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러한 근거는 더 이상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한 경험적 증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와는 다른 예측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다른 물리학적 배경 체계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비록 일군의 이론들이(혹은 이론과 이 이론의 배경 가정들이) 그 전체적으로 볼 때 경험적 세계에 관해 시험될 수 있고 이 시험에 실패할 경우 반증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뒤엠-콰인 논제는 그 일군의 이론 묶음들 중 특정한 하나의 가설을 분리시키는 것이 불가능함을 주장한다. 과학자들이 직면하는 이와 같은 딜레마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만약 우리가 배경 가정들이 참이라고 받아들일 합리적인 근거들을 갖고 있을 경우(증거에 의해 입증되었을 경우), 우리는 비록 결정적이지는 않을지라도 경험적 시험에 실패한 이론은 거짓이라고 생각할 합리적 근거를 갖게 된다.

 

5. 수업 참여 및 보고서 작성에 관한 약간의 조언

 

  

   ① 수업이든, 전공자 모임이든, 세미나든, 자신의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게 좋다. 과학철학통론 수업의 경우, 수업 시간이 크게 선생님의 프레젠테이션과 학생들의 발제 및 논평이라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선생님께서 프레젠테이션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하시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은 파워포인트 자료를 공책에 적느라고 정신이 없다. 몇몇 학생들은 사전에 선생님의 양해를 얻고 강의 내용을 녹음하기도 하는데, 이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수업 시간에는 핵심적이라고 생각하는 내용들만 기록해 두었다가 나중에 강의 내용을 다시 들으면서 세부적으로 내용을 정리할 수 있다. 몇몇 선배들은 작년에 녹음에 두었던 파일을 가지고 있으니 필요하면 선배들에게 문의해도 된다.

  

   요는, 프레젠테이션 시간에 결코 프레젠테이션의 방대한 내용들에 치이지 말라는 것이다. 선배들에 의해 작성된 좋은 강의 노트들이 있고 강의 녹음 파일들도 있으니까, 수업 시간에는 수업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치중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프레젠테이션 중간 중간에 선생님께서 던지는 질문들에 제대로 답하는 것이다. 대학원 수업에서는 침묵은 금이라는 격언이 통용되지 않는다. 물론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수업에서 제대로 발언하고 토론하려면 나름대로 많이 준비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 과정은 결국 본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다른 학생들의 발제, 논평을 듣고 그에 적절한 질문과 논평을 해주는 것은 어쩌면 발제자 혹은 논평자에 대한 예의일 수 있다. 발제와 논평을 듣고서도 아무런 질문과 논평이 없다면 그것은 스스로가 발제와 논평에 관심이 없거나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지를 정리하고 이를 논박하는 것은, 글쓰기에서 뿐만 아니라 토론하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② 미리 미리 준비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본인에게 굉장히 유리하다. 과학철학통론 수업의 경우, 기말 시험(대학원 수업에서 왜 기말 시험을 보는지 이해를 못하는 학생들이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이 끝난 그 다음 주까지 기말 보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학기 중간 중간에 보고서에 관한 책과 논문들을 읽어두지 않으면 기말에 엄청나게 고생한다. 기말에 써야 할 보고서가 통론 보고서 외에도 1~2개가 더 있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마음에 들어하는 철학자(헴펠, 포퍼, , 라카토슈, 핸슨, 파이어아벤트, 기어리, 카트라이트 등)나 주제(헴펠의 연역법칙적 설명, 새먼의 통계 유관성 설명, 포퍼의 반증주의, 라카토슈의 연구 프로그램 방법론 등)가 있다면 학기 초부터 관련되는 책들, 논문들을 틈틈이 찾아서 읽는 것이 확실하게 본인들에게 도움이 된다. 괜히 하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