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2010년 겨울 독서모임 공부자료 01

강형구 2016. 8. 25. 07:05

 

 

1. 칼 구스타프 헴펠(Carl Gustav Hempel, 1905-1997)

 

  

   논리실증주의를 주도했던 인물들 중 한 명이었던 헴펠은 1905년에 독일의 오라니엔부르크(Oranienburg)에서 태어났다. 1982317일부터 24일까지 헴펠은 리처드 놀런(Richard Nolan)과 인터뷰를 가졌고, 인터뷰 내용은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1988년에 최초로 출판되었다. 이 인터뷰는 뒤따르는 헴펠의 일생을 서술하는데 있어 주요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헴펠은 베를린에 있는 레알김나지움(Realgymnasium)에서 공부했고, 1923년에 괴팅겐 대학에 입학한 후 그는 다비트 힐베르트(David Hilbert) 및 에드문트 란다우(Edmund Landau)와 수학을 공부했으며, 하인리히 베만(Heinrich Behmann)과 기호논리학을 공부했다. 헴펠은 기초적인 방법론을 사용해서 수학의 일관성(consistency)을 증명하려는 힐베르트의 프로그램에 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철학 또한 공부했고, 전통적인 논리학에 대해서보다는 수리논리학에 더 큰 흥미를 느꼈다. 같은 해에 헴펠은 하이델베르크(Heidelberg) 대학으로 옮겨가서 수학과 물리학, 철학을 공부한다. 1924년부터 그는 베를린에서 공부하는데, 그는 베를린에서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를 만나고 라이헨바흐는 헴펠을 베를린 모임(Berlin Circle)에 소개한다. 헴펠은 수리논리학, 시간과 공간의 철학, 확률이론에 관한 라이헨바흐의 강의들에 참여한다. 헴펠은 또한 막스 플랑크(Max Planck)와 함께 물리학을, 폰 노이만(von Neumann)과 함께 논리학을 공부했다.

  

   1929년에 헴펠은 논리실증주의자들이 조직한 과학적 철학에 대한 첫 번째 회합(congress)에 참여한다. 이 회합에서 만난 카르납(Carnap)으로부터 큰 인상을 받은 헴펠은 비엔나로 옮겨가서 카르납, 슐릭(Schlick), 바이스만(Waismann)의 강의들에 참여하고, 중등학교 교사 자격을 얻은 헴펠은 1934년에 확률 이론에 대한 논문을 통해 베를린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같은 해에 헴펠은 라이헨바흐와 폴 오펜하임(Paul Oppenheim, 헴펠은 1930년에 라이헨바흐의 소개로 오펜하임을 알게 되었다)의 도움으로 벨기에로 이민을 간다. 2년 후 헴펠과 오펜하임은 분류사(classifier) 및 비교(comparative)와 계량(metric)에 관련한 과학적 개념들에 대한 논리적 이론을 담은 책 Der Typusbegriff im Lichte der neuen Logik을 출판한다.

  

   1937년에 헴펠은 카르납의 도움으로 시카고 대학으로부터 철학과 연구 교환교수 자격으로 초청된다. 벨기에에서 짧은 기간 동안을 보낸 헴펠은 1939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그는 뉴욕 시립 대학(1939-1940) 및 퀸스 칼리지(1940-1948)에서 철학을 가르친다. 이 기간 동안에 그는 입증 및 설명 이론에 관심을 가졌고 이에 관련한 다음의 논문들을 출판한다. “입증에 대한 순수 구문론적 정의”(1943년에 발간된 기호논리학’ 8호에 수록), “입증의 논리에 대한 연구”(1945년에 발간된 마음’ 54호에 수록), “(오펜하임과 공동 저술한)입증의 정도에 대한 정의”(1948년에 발간된 과학철학’ 15호에 수록).

  

   1948년부터 1955년까지 헴펠은 예일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다. 그의 책경험과학에 있어서의 개념 형성의 기초(Fundamentals of Concept Formation in Empirical Science)는 국제통합과학백과사전의 한 권으로 1952년에 출판된다. 1955년 이후 헴펠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친다. 과학적 설명의 다양한 측면들(Aspects of Scientific Explanation)자연과학의 철학(Philosophy of Natural Science)는 각각 1965년과 1966년에 출판된다. 연금수령 연령 이후에도 그는 버클리(Berkley), 얼바인(Irvine), 예루살렘(Jerusalem)에서 철학을 가르쳤고, 1976년부터 1985년까지는 피츠버그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이 기간 동안 그의 철학적 견해는 점차적으로 변화를 겪게 되고 그의 견해는 점차 논리실증주의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패트릭 수피즈(Partrick Suppes)가 편집하고 1973년에 출판된 논리, 방법론, 과학철학4권에 수록된 논문 이론적 용어들에 대하여 : 표준적인 경험주의적 견해에 대한 비판”, 코헨(R. S. Cohen)과 라우든(L. Laudan)이 편집하고 1983년에 출판된 물리학, 철학, 정신분석학에 수록된 논문 과학에서의 평가와 객관성”, 1988년에 출판된인식(Erkenntnis)28호에 수록된 논문 조건들: 과학적 이론들의 추론적 기능에 대한 문제등에서 헴펠의 변화된 견해를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애정을 버리지 않은 채 논리실증주의의 진영에 남아 있는다. 1975년에 그는 (슈테그밀러W. Stegmüller, 에슬러W. K. Essler와 더불어) 새롭게 출판된 잡지 인식의 편집인을 맡는다. 그는 1997119, 뉴저지에 있는 프린스턴에서 숨을 거둔다.

 

2. 자연과학의 철학2장까지의 주요 내용

 

1, 이 책의 범위와 목표

  

   과학적 탐구의 여러 분야들은 크게 두 가지의 부류, 경험적 과학과 비경험적 과학으로 나뉜다. 경험적 증거에 대한 의존은, 경험적 발견들을 반드시 언급할 필요가 없으면서도 증명되는 명제들을 갖는 비경험적 분과 학문들인 논리학 및 순수수학으로부터 경험적 과학들을 구분해준다. 경험적 과학은 다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라는 두 부류로 나뉘지만, 헴펠은 자신의 책에서 소개되는 과학적 탐구의 방법론과 기준은 자연과학 및 사회과학 모두에 잘 적용될 것임이 밝혀지리라고 생각한다. 헴펠 등과 같은 논리경험주의자들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구분 없이 모든 경험과학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방법론을 철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헴펠은 이 책에서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도출되며, 이러한 지식이 어떻게 지지되는지, 과학적 지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또한 그는 과학이 경험적 사실들을 어떻게 설명하며, 과학적 설명이 우리에게 어떠한 이해를 제공하는지도 밝히고자 한다. 과학적 탐구, 과학적 지식, 과학적 이해에 관련된 전제들과 한계들을 분석하는 것 또한 이 책의 주요 주제들 중 하나다.

 

2, 과학적 탐구: 발명(invention)과 시험(test)

 

  

과학사에서의 사례 연구: 젬멜바이스(Semmelweis)의 경우

  

   1844년부터 1848년까지 비엔나 종합병원의 제1산부인과에서 일했던 헝가리 출신 의사 젬멜바이스는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했다. 비엔나 종합병원에는 제1산부인과와 제2산부인과가 있었는데, 1산부인과에서 분만한 산부들이 산욕열(puerperal fever)이라는 질병으로 인해 사망하는 비율이 제2산부인과에 비해 월등하게 높았다. 따라서 젬멜바이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한다. 우선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당시까지 알려져 있던 설명들이 옳은지의 여부를 확인해보았다. 확인 결과 그 설명들(신비로운 감응에 의한 발병, 노상(路上)출산에 의한 발명, 정원초과에 의한 발명, 미숙한 의대 학생들에 의해 생긴 상처로 인한 발명, 특정한 심리적 효과에 의한 발명, 분만 자세로 인한 발명 등)이 모두 그릇된 것임이 밝혀졌다.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젬멜바이스의 동료인 콜레치카(Kolletschka)는 검시를 하던 중, 그를 도와주던 의과 학생의 칼에 상처를 입은 이후 산욕열과 유사한 증세를 보이며 앓다가 사망했다. 이를 통해 젬멜바이스는 산욕열이 검시 도중에 칼에 묻어나오는 물질로 인해 발생한다고 추측했고, 만약 그 추측이 옳다면 제1산부인과에서 검시한 모든 의사 및 의과 학생들이 검시 이후 표백분용액으로 손을 씻을 경우 산부들의 사망률이 낮아질 것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젬벨바이스는 자신이 생각한 바의 조치를 취했고, 이후 제1산부인과의 산부들이 보여준 산욕열에 의한 사망률은 현저하게 낮아졌다. 뿐만 아니라 젬멜바이스의 추측(가설)은 제2산부인과에서 해부학 실습이 없었기 때문에 산욕열에 의한 사망률이 낮았다는 점, 노상출산의 경우 사망률이 낮았다는 점, 산욕열에 의해 희생된 신생아들이 모두 산욕열에 전염된 산모들의 아이였다는 점 등도 잘 설명해주었다. 이후 그는 검시 도중에 묻어난 물질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에서 나온 부패한 물질에 의해서도 산욕열이 발병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가설을 시험하는 기본적인 단계들

  

   헴펠은 1절에서의 사례 연구를 기반으로 과학적 탐구에서의 가설을 시험하는 단계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해명하고자 한다. 과학적 가설을 직접적으로 시험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다음과 같은 추론을 행한다. ‘어떤 가설

가 옳을 경우, 구체적인 상황 속에 서 특정한 관찰 사건들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간략하게 말해,

가 참이라면 관찰가능한 사건들을 기술하는 진술

가 도출된다. 이 때

는 가설

에 대한 시험 진술(test implication)이라 한다. “만약 가설

가 참이라면

도 참이다. 그러나 (증거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는 참이 아니다. 따라서

는 참이 아니다.” 이와 같은 형식의 추론을 논리학에서는 후건부정법(modus tollens)’이라 하고, 이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추론이다. 제안된 기존의 가설들을 기각할 때 젬멜바이스는 바로 이러한 후건부정법을 사용했다.

  

   “만약 가설

가 참이라면

도 참이다. (증거가 보여주는 바와 같이)

는 참이다. 따라서

는 참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추론을 논리학에서는 후건긍정의 오류(fallacy of affirming the consequent)’라고 하며, 이는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추론이다. ,

가 옳다고 해서

의 옳음을 논리적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 이는 시험 진술들이 복수일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가설

로부터 복수의 시험 진술들

이 도출되고 이 시험 진술들이 모두 옳다고 밝혀진 경우에도, 우리는 이로부터 가설

의 옳음을 논리적으로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단수의 시험 진술이 옳다고 밝혀진 경우와 복수의 시험 진술들이 옳다고 밝혀진 경우 두 경우 모두에서 특정한 과학적 가설

가 동등한 정도의 귀납적 지지를 받는다고 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다양한 시험 진술들이 옳다고 밝혀진다면, 과학적 가설

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입증(confirmate)되거나 용인(corroborate)된다고 말할 수 있다.

  

   이후 헴펠은 과학적 가설의 시험에 관한 또다른 사례를 제시한다. 갈릴레오의 제자인 토리쩰리(Torricelli)는 지구를 둘러싼 공기의 층이 지표면에 압력을 가하고, 이 압력으로 인해 진공 속의 물이 일정 정도의 높이(34피트)로 상승한다는 과학적 가설을 세운다. 이 가설 및 수은의 비중이 물의 비중보다 14배 크다는 사실에 의하면 수은 기둥의 높이는 34/14피트가 되어야 할 것이며, 이는 실험 결과 옳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토리쩰리의 가설이 옳다면 수은 기둥의 높이는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감소해야 할 것이고, 이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빠스깔(Blaise Pascal, 1623-1662)의 처남이었던 뻬리에(F. Perrier)에 의해 옳음이 밝혀졌다(쀠드 돔Puy-de-Dôme 산의 실험).

  

과학적 탐구에 있어 귀납(induction)의 역할

  

   이어서 헴펠은 과학적으로 적합한 가설이 어떤 과정을 통해 제시되는지의 문제를 논의한다.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추측은 과학적 가설이 귀납의 과정을 통해서 제시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건부정법(pq, ~q, ~p)이나 전건긍정법(pq, p, q) 등과 같은 타당한 연역적 추론의 경우 전제들은 확실성을 갖고 결론을 보장하는 반면, 귀납적 추론의 경우에는 개별 사례들을 언급하는 전제들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례들에 대한 일반적인 주장을 하는 결론을 완벽하게 보장할 수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개별 사례들이 특정한 속성 P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후에 확인될 특정한 개별 사례가 속성 P를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월프(Wolfe)는 가상적인 사고 실험을 통해서 완벽한 귀납적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를 제시하지만(과학적 탐구에 대한 좁은 의미에서의 귀납주의), 헴펠에 따르면 월프 식의 귀납적 방법을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세계에 관련된 모든 사실들을 수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수집해야 하는 사실이 문제와 관련 있는(relevant) 사실이라고 제한한다고 해도, 어떤 사실이 관련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의 판단은 제시되는 가설에 따라서 달라진다. , 경험적 사실들이나 발견들은 주어진 문제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어진 가설에 의해서 그것의 논리적 관련성 여부가 판가름난다(월프의 첫 번째 단계에 대한 비판). 또한 경험적 사실들은 숱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분석되고 분류될 수 있으며, 만약 가설이 제시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분석과 분류는 맹목적인 것이 될 것이다(둘째 단계에 대한 비판). 따라서 귀납은 과학적 가설의 발견의 논리가 될 수 없다.

  

   헴펠은 주어진 개별적 관찰 자료들로부터 과학적 가설들이 기계적인 귀납적 절차에 의해 도출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 가설은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발명되는 것이며, 이 발명의 과정에는 창조적인 상상력(creative imagination)이 요구된다. 가설을 제안하는 데 관여하는 추론은 체계적 추론의 과정과는 구분지만, 제안된 가설은 비판적이고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과학의 객관성은 안전하게 유지된다. 연역적 추론에 있어서도 상상력은 중요한데, 연역 규칙 자체만으로는 추론 과정의 방향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추론 규칙은 논증의 건전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뿐이다. 비록 귀납적 절차가 가설들에 대한 발견의 논리가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경험과학에서 귀납은 가설들을 시험하고 그 입증의 정도(혹은 용인의 정도)를 평가하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 헴펠은 뒤따르는 장에서 과학적 가설의 귀납적 시험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를 할 것을 예고하면서 2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3. 생각해 볼 문제들

 

  

과학철학자로서의 헴펠의 논의의 전개에 대한 물음

  

   헴펠은 과학사에서 과학적 탐구의 전형으로 알려진 몇 가지의 사례들(젬멜바이스의 사례, 토리쩰리의 사례 등)을 토대로 과학적 탐구의 중요한 특징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헴펠 분석에서 과학적 탐구는 크게 두 단계의 과정, 즉 가설을 제시하고 그 가설에 의한 시험 진술의 옳고 그름을 확인함으로써 해당 가설을 평가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가설을 제시하는 과정에는 창조적 상상력이 필요하며 이와 같은 발견의 과정은 철학적으로 엄격하게 분석할 수 없는 반면, 가설을 평가하는 과정은 체계적인 분석이 가능하다(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의 구분). 과학사의 사례들을 분석함으로써 헴펠과는 다른 철학적 결론에 도달할 수는 없을까? 예를 들어, 실제로 헴펠의 주장과는 달리 과학적 탐구에 대한 시험은 굉장히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특정 현상을 잘 설명하는 서로 다른 과학적 가설들이 있었을 경우, 그 가설들 중 어떤 가설이 옳은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당시 과학자 집단이 처해 있던 역사적이고 정치경제적인 맥락에 의해 좌우되지 않았을까? 과학사적 사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헴펠과는 다른 과학철학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음을 유념하는 것이 중요하다.

 

헴펠의 예는 과학적 탐구의 다양한 사례들 중 일부분에 지나는 것 아닌가?

  

   헴펠은 젬멜바이스, 토리쩰리의 예를 들고 있지만, 이 예들 외에 헴펠 자신의 설명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다른 종류의 과학사적 사례들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헴펠의 예들은 헴펠의 주장을 지지하는 데 있어 귀납적으로 불충분하다. 또한 헴펠 본인이 말하는 것처럼 관련되는 사례들을 찾는 것은 특정한 가설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헴펠이 제시하는 예들은 올바른 과학적 탐구의 특징들에 대한 헴펠 자신의 특정한 가설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헴펠이 생각하는 올바른 과학적 탐구의 특징들이란 무엇인가? 이 물음은 헴펠의 책을 읽어가며 그의 논지를 따라가는 동안에 조금씩 분명히 밝혀질 것이다.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을 구분하는 것에 대하여

  

   과학적 가설에 관한 발견의 맥락을 논의하는 것과 정당화의 맥락을 논의하는 것은 그 성격상 서로 다르다는 것은 논리경험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견해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다. “과연 정말로 과학적 가설을 제시하는 과정, 즉 과학적 가설을 발견하는 과정에 대한 과학철학적 탐구가 불가능한가? 비록 정당화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정도의 엄격한 논의는 불가능하겠지만, 발견의 맥락을 완전하게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는 것 또한 철학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것 아닌가?” 케큘레의 벤젠 분자구조의 발견은 단순히 우연적으로만 이루어진 것일까?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개발은 단지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등과 같은 물리학자들의 해명될 수 없는 창조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인가?

 

4. 수업 준비 및 발제와 논평에 관한 약간의 조언

 

수업 준비에 대하여

  

   대학원 수업은 1주일에 하루 동안만 이루어지고 수업의 밀도는 학부 수업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볼 수 있다. 과학철학통론의 경우 대개 매주 3~5편 정도의 논문들에 대한 교수님의 강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이 논문들을 읽고 이해한 후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한 학기에 세 과목의 수업을 수강한다고 가정할 때, 적어도 하루에 한 편의 논문을 소화해야 한다. 읽는 것만으로는 논문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줄 긋고, 중요한 부분을 자신의 언어로 요약하고, 더 나아가 저자의 주장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 또한 할 수 있어야 한다.

 

  

발제와 논평에 대하여

  

   해당 논문을 읽지 않은 사람(혹은 대충 읽은 사람)이라도 발제문을 읽고서 논문의 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제문을 작성하는 게 원칙이다. 반면 논평은 해당 논문의 요지가 이미 모두에게 잘 알려져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논평자가 논문에 대한 자신 만의 강도 높고 수준 있는 비판을 전개하는 글이다. 논평은 비교적 치밀한 논지 전개 과정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