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구식 사람이 되는 일

강형구 2016. 7. 23. 08:19

 

 

   나도 한때는 이런저런 최신 유행들에 발 빠르게 맞춰가는 사람이었다. 약간 유치한 예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학생시절 가장 최신의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일주일에 몇 번씩 게임 매장을 들락거렸다.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해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늘 음반매장에 들러 새로 나온 음반이 있나 살펴보았다. 최신 판본의 개인용 컴퓨터와 게임기 등에 흥미를 가져 매달 발행되는 컴퓨터 잡지를 들여다보았다. 나에게도 최신 유행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아는 것이 제법 중요한 시절이 있었다. 대학원에서 공부를 할 때도, 나 자신이 다른 학생들에 비해 최신의 논문 정보를 잘 모르는 것을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 시절 나는 착실하게 인터넷 논문정보 사이트를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취직을 하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경향이 조금씩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최신 게임을 찾지 않고, 최신 음반을 구경하지 않는다. 이미 내가 알고 있고 익숙한 게임과 음악을 되풀이해서 즐긴다. 나에게는 고성능의 컴퓨터에 대한 열망도 없다. 그저 나는 문서작업을 하고 정보를 검색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컴퓨터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최신의 책, 최신의 논문에 대한 욕심도 없어졌다. 내가 지금까지 모아둔 좋은 책들을 다시 읽고 생각을 가다듬는 것에 만족한다. 또한 나는 컴퓨터와 같은 전자기기로 글을 읽는 것보다는 여전히 종이로 된 책을 읽는 것을 선호한다. 책 한 권을 들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읽고 밑줄 긋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나를 주변 사람들이나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과 비교해보면, 점점 내가 구식의 사람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사회의 추세와 완전하게 격리되어 살아갈 수는 없다. 직장에서 업무시스템을 사용해서 업무를 하기 때문에 나 역시 업무시스템 사용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주변 사람들과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으로 소통하는 것이 일상화되었기 때문에 나 역시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페이스북도 사용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이러한 최신의 추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것이지 즐거워서 따라가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사람과 직접 만나서 길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또한 나는 제법 길고 무거운 문장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지, 단어 위주의 단편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중학생은 나와의 대화를 매우 지루하게 여길 것이 틀림없다.

  

   시대에 뒤처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의도적으로 시대를 멀리하고자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텔레비전 프로그램, 인터넷, SNS에 지쳐간다는 느낌이 들고, 독서와 글쓰기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점점 아저씨가 되어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일까? 나는 요즘 하나의 비유를 종종 떠올린다. 아주 오래 전 책과 글이 매우 귀한 시절이 있었다. 책 자체가 얼마 없어서, 중요한 책들은 오직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만 교육되고 전파되었다. 나는 책들과 온갖 종류의 정보들이 범람하는 오늘날이 오히려 책과 글이 매우 귀한 시절과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너무 많은 정보들이 있기에 그 중에서 제대로 된 것들을 선별하고, 그렇게 선별된 것들을 제대로 체화해야 하는 시대. 온갖 소음들 중에서 진짜 소리를 찾고 기억해야만 하는 시대.

  

   나는 종이로 된 책을 들고 다니며 글을 읽고, 휴대용 컴퓨터를 갖고 다니며 문서작업을 한다. 가끔씩 텔레비전을 볼 기회가 있으면 흥미롭게 보지만 먼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찾아서 보지는 않는다. 나는 조용히 앉아서 생각하는 것, 여유가 있을 때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여전히 손으로 종이 위에 글을 쓰는 일을 좋아하며, 문장들 위에 펼쳐진 사상들과 감정들을 읽는 것에 관심이 간다. 이렇게 나는 아저씨, 한 명의 구식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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