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르카나티, [문자 그대로의 의미] 요약 정리 03

강형구 2016. 6. 29. 05:59

 

르카나티(Recanati), 문자 그대로의 의미9

  

   단어들의 의미는 맥락에 적합하게 조정된다. 자연 언어에서 의미의 조정은 같은 문장에 있는 다른 단어들의 의미에 영향을 받으면서 일어난다. 발화 전체의 의미는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화용적 과정에 의해 영향을 받으며, 따라서 조합성을 상호작용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단어가 그 문장의 다른 단어들의 의미와 관련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단어가 무엇을 말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기술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정말 중요한 것은 단어의 의미와 단어들이 발화에 사용되는 상황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단어들의 조정 이전의 의미가 아니라 조정 이후의 의미가 진리 조건적 내용을 수립하는데 기여하기 때문에, 조정은 진리 조건적으로 유관한 과정이다. 이에 대해 명료화 과정(화용적)을 거치면 조정이 의미론과는 무관하게 될 수 있다고 반론을 펼 수 있다. 하지만 명료화 과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해당 단어에 대한 의미 목록이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데, 조정된 의미는 그러한 목록에서의 선택이 아니라 생성 혹은 창조의 과정으로부터 비롯되므로 이 반론은 설득력을 잃는다. 또 다른 반론으로 조정 과정이 다의성을 띤 제한된 단어들에만 적용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조정 과정은 굳이 다의적인 단어 뿐만 아니라 그 어떤 단어들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단어 적용의 조건은 맥락에 따라서 변화하거나 조정된다는 의미에서 다의성은 예외적이 아니라 보편적이다.

  

   화용적으로 통제되는 화용적 과정인 조정에 접근하는 네 가지 방식이 있다. 그 첫째가 강한 선택성 견해(SO)이다. 이에 따르면 조정이 포함하는 1차 화용적 과정은 강하고 직접적인 의미에서 선택적이다. 화용적 제안은 명시적으로나 맥락적으로 취소될 수 있으며, 이러한 취소 가능성은 선택적 특성이 분명하다는 것이 강한 선택성 견해에 대한 근거가 된다. 둘째로 화용적 조합 견해(PC)가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단어의 의미는 조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직접적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조합적 과정이 그 단어의 의미가 조정되게끔 만든다. 어떤 단어의 의미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배경 가정과 세계 지식에 호소해야 한다. 이러한 결정은 언어적 능력으로는 충분치 않으며 화용적 조정 과정이 필요하다. 언어적 의미 너머로 나아갈 때 언어적 지도 없이 나아가기 때문에 조정 과정에서는 포화와는 달리 의미론적 간극이 존재하지 않는다.

  

   셋째로 그릇된 형식 견해(WF)가 있다. 이에 따르면 개별적 단어들은 직접적으로 해석될 수가 없다. , 단어들은 직접적 해석에 적합한 형식을 갖추고 있지 않으며, 단어들은 너무 추상적이거나 너무 도식적이어서 의미가 덧붙여지거나 간추려져야지만 내용을 성립시킬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조정은 선택적이 아닌 필수적인 과정이 된다. 마지막으로 의미 제거주의 견해(ME)가 있다. 이에 따르면 단어에는 전통적인 뜻에서의 의미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의미 제거주의를 알아보기 위해서 진리 조건적 불안정성 개념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바이스만의 열린 조직견해에 의하면 진리 조건적 내용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며 맥락 의존적이다. 사건의 상황 S 속에서의 발화 U가 참이 아닌 가능 세계를 상상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S가 충족되면서도 추가적인 조건을 덧붙인 더 광범위한 상황을 생각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방식으로 개념을 정의한다고 해도 그 정의가 의심으로부터 완벽하게 벗어날 수는 없다. ‘열린 조직의 개념은 썰의 배경 지식개념과 유사하다. ‘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라는 문장의 문자적인 의미는 추가적 가정들을 덧붙이지 않는 경우 명료하게 적용될 수 없다. 예측하지 못했던 요소가 출현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제거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개념의 조정도 최종 상태에 도달할 수 없다. 우리가 하나의 경험적 상황을 기술하는 경우, 특정 측면들은 분명히 드러내지만 나머지 측면들은 암시적으로 남아서 숨겨진 배경 지식을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상황에 특정한 개념을 적용할 때에는 그 적용이 숨겨진 배경 지식과 적합한지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바이스만의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단어들이 순수하게 기술적인 용어로 정의되지 못한다고 해도 실제적인 상황을 명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단어들을 정의하면 진리 조건의 불안정성 문제는 극복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명시적 정의를 사용하더라도 증명되어야 하는 표본(사례)의 유사성 차원이 고정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고정은 사용의 상황과 관계되고 우리는 원천적으로 가능한 모든 상황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여전히 열린 조직을 갖게 된다. 유사성의 차원 그 자체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결정된다.

  

   의미 제거주의에 따르면 단어들의 의미가 내용을 구성하는 데 기여를 하지만 그러한 구성은 규약적이고 맥락 독립적인 단어의 의미와 무관하게 진행될 수 있다. 그릇된 형식 견해에서는 맥락화된 의미에서 추상화 과정을 거쳐 언어적 의미가 생성되고, 그 언어적 의미가 조정 과정을 거쳐 다시 맥락화 된 의미가 된다. 하지만 의미 제거주의에서는 위에서의 중간 단계를 억압하고 의미의 추상화와 조정을 통합시킨다. 이에 따르면 단어의 적용 조건들은 맥락적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표현 P의 의미론적 포텐셜은 원천 상황들의 집합체에서 대상 상황으로의 적용 과정에 사용되며, 이 때 대상 상황이 원천 상황들과 유사한지가 중요한 문제가 된다. 대상 상황이 고정되더라도 원천 상황들과 대상 상황 사이의 유사성을 평가하는 유관성 차원은 미결정적인 것으로 남는다. 이는 대화의 주제, 대화 참가자들의 관심 분야에 따라 달라진다.

  

   이 때 특별히 중요한 요소가 맥락적 변화에 있어 유관한 대조 집합이다. 유관성 판단은 평가적 가치에 호소하고, 평가적 가치는 대조 집합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조 집합은 대화 참가자들의 관심사에 의존한다. 원천 상황들과 대상 상황 사이의 유사성은 국소적이 아닌 광범위한 특성을 갖고 있다. 대상 상황이 술어 P를 기술하는 모든 전경적 측면을 포함하더라도 대상 상황에서 P가 적용될 수 없도록 만드는 배경적 측면들을 언제든지 추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 제거주의에 대한 반론으로 조정이 맥락과 맥락 독립적 의미 사이의 상호작용에 의해 일어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반론은 의미 제거주의자들이 단어 자체가 전체 내용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함을 전제하고 있지만 이 전제는 참이 아니다. 의미 제거주의에서도 단어의 의미론적 포텐셜 개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반론으로 의미론적 내용의 상대적 안정성을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안정성은 언어적 근거가 아니라 심리적 근거를 토대로 설명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단어들은 의미의 차원이 아니라 지칭의 차원과 관계되는 광범위한 상황들과 연계되며, 단어의 내용은 원천 상황들과 대상 상황 사이의 맥락 의존적인 유사성에 의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