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에 대하여

강형구 2015. 9. 29. 14:36

   내가 과학철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들어갔을 무렵, 과학철학 학계에서는 논리경험주의를 이미 한물 지나간 철학 사조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왜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해야 하는 것일까? 과연 논리경험주의는 어떤 특성을 갖는 서양의 철학사조일까? 왜 한국에서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일까? 만약 한국에서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이 의미 있다면, 나는 어떤 방식으로 이를 연구하고자 하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물음들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바를 서술해보고자 한다.

 

   논리경험주의는 20세기 초기에 서유럽에서 등장한 서양철학의 한 사조였다. 고대에서부터 17세기까지 서양의 자연과학은 서양의 철학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함께 발전해왔다. 뉴턴의 고전역학이 등장한 17세기 이후 자연과학의 발전은 철학과는 다소 독립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하지만 17세기 이후에도 자연과학이 발전하는 데 있어 철학적 사유는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7세기 이전에 자연과학과 철학이 함께 움직였다면, 17세기 이후에 철학은 자연과학이 나아갈 방향을 지시하거나 자연과학이 제대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고전물리학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대변하는 서양의 철학자는 임마누엘 칸트다. 그 자신이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기도 했던 칸트는, 수학과 물리학 같은 서양의 정밀과학들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인식론적으로 규명하고자 했다(점검, 정당화의 기능). 뿐만 아니라, 칸트의 인식론적 규명을 통해 드러난 인간 인식의 특징들은 이후 자연과학자들의 자연 탐구를 이끄는 지침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렇듯 자연과학의 점검자이자 지시자로서 역할을 하던 철학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일종의 위기에 직면한다. 당시의 주류 철학이 사변적인 경향을 띤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연과학 자체가 중요한 변화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시장 경제 및 산업과 연동되어 기술적으로 발전한 자연과학은 고도로 정교화 된 실험 장비들을 사용해서 다양하고 많은 양의 관측 자료들을 확보했고, 자연과학자들은 협동과 경쟁을 통해 이와 같은 관측 자료들을 체계화시킬 수 있는 이론 체계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문제는 이렇게 수립된 자연과학의 새로운 이론 체계가 예전에 고전물리학을 근거로 형성했던 세계상 및 지식 개념과 잘 들어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새롭게 발전한 자연과학에 부합하는 세계상과 지식 개념을 수립하고자 하는 욕구가 서양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등장했다.

 

   20세기 초 자연과학의 핵심적인 분과였던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에 종사하면서도 자연과학적 세계상 및 과학적 지식의 개념을 규정하는 데 관심이 있었던 일군의 학자들이 일으켰던 철학적 운동이 바로 논리경험주의다. 이들은 20세기에 이르러 변화된 과학적 지식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갖는지, 어떤 세계상을 인간에게 제시하는지를 구체화하고자 애썼다. 이러한 작업을 위해 논리경험주의 운동에 참여한 학자들은 여러 분야의 과학적 지식들을 반성적으로 분석하고, 그 분석이 무엇을 의미하며 과연 그 분석이 타당한지를 논의했다. 특히 논리경험주의자들은 논리학, 수학, 물리학적 지식의 본성을 규명하고자 애썼고, 한스 라이헨바흐 역시 이 분야에 대한 여러 저작들을 남겼다.

 

   이제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게 된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물리학자가 되고자 한국의 한 과학 특성화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나는, 단기간에 교과과정을 끝내는 방식의 주입식 교육에 거부감을 느꼈다. 동시에 나는 자연과학의 의미를 상세히 풀어 설명해주는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대 물리학자들 사이의 대화를 생생하게 표현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 수학의 철학적 의미를 논한 이브즈의 [수학의 기초와 기본개념], 아인슈타인이 일반인을 위해 쓴 [상대성이론] 같은 책들이 나의 관심을 끌었다. 이때 나의 목표는 자연과학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에 있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나는 자연과학의 의미, 특히 수학과 물리학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명하는 책들을 찾았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매혹시켰던 것은 한스 라이헨바흐가 쓰고 이정우 선생이 번역한 [시간과 공간의 철학]이었다. 상대성이론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해설한 여러 책들을 보았지만, 나는 이 책만큼 상대성이론을 상세하고 명료하게 분석한 책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이 책을 쓴 라이헨바흐에 대해서, 그리고 그가 종사했던 철학적 운동인 논리경험주의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가 어떤 다른 책들을 썼는지, 그와 함께 활동했던 학자들은 누구였는지를 찾아보았다. 학부 시절의 공부만으로는 부족함을 느껴 대학원에 진학했고, 대학원에서도 라이헨바흐의 물리학 분석을 연구했다.

 

   자연과학은 서양의 문화이고, 우리나라에 이 문화가 들어온 지 대략 200년 남짓 되지 않았나 싶다. 다른 나라의 문화였던 유교와 불교가 우리나라의 문화에 완전히 동화되었던 것과 달리, 아직 서양 자연과학의 사상과 세계상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고 이에 관한 저술들 역시 우리말로 제대로 옮겨지지 않았다. 자연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자연을 더 잘 알고자 하는 욕구는 인간의 보편적인 욕구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현대의 자연탐구를 대변하는 서양 자연과학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전문가를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에게는, 자연과학의 의미를 정확하게 규명하고자 한 서양의 철학 사조가 있다면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서양 자연과학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름길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 말기에 서양의 학자들이 아랍어와 그리스어로 된 문헌들을 번역하고 해설한 것이 이후 서양 과학이 발전하는 밑거름이 되었던 것처럼, 나 역시 서양의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함으로써 이 연구가 자연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발전시키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러한 전망 아래에서 내가 하는 작업이 갖는 의의는 좀 더 분명해졌다. 논리경험주의, 특히 한스 라이헨바흐를 철저히 연구한다면 논리학, 수학, 물리학과 같은 서양 정밀과학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나의 작업은 자연과학의 의미를 좀 더 깊이 탐구하고자 하는 우리나라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과학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깊어진다면, 우리 중에서도 아인슈타인과 같이 위대하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자연과학자가 탄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위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는 한스 라이헨바흐를 비롯한 논리경험주의의 주요 저자들의 저서들을 번역하는 것과,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정확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남기는 것이 과학철학의 영역에서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본다. 이 일은 철학적인 천재성을 요구하기보다는 오랜 시간과 일관된 의지를 요구한다. 철학을 연구하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들은 많은 경우 내가 계획하는 작업이 뛰어난 철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들고 소모적인 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이 일이 누군가는 해 야 하고 제법 가치 있는 일이라면, 이 일을 내가 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작업이 한국의 뉴턴과 한국의 아인슈타인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이 일을 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이 학문적으로도 전망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한국에서 논리경험주의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이 별로 없다. 뿐만 아니라, 논리경험주의는 사회과학이나 자연과학의 다른 학문들과 연계될 수 있는 접점 역시 상당 부분 갖고 있다. 서양의 과학철학 학계에서도 한창 논리경험주의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논리경험주의의 주요 저서들은 대부분 20세기 전반기에 쓰였기에 저작권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논리경험주의를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는 것이 상당히 아쉽고, 조만간 논리경험주의에 관심을 갖는 학자들이 다수 생길 것으로 기대한다.

 

   그토록 오랫동안 논리경험주의에 관심을 갖고 이를 아직까지도 연구하고 있는 나를 나의 친구들이 이해하는 데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유지될 건물이나 배를 짓는 목수의 마음으로 이 작업을 하고 있다. 나는 우리의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누릴 수 있는 과학적 문화를 상상하고 있다.

 

20150929(논리경험주의를 연구하는 것에 대하여).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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