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남원에서

강형구 2025. 5. 5. 00:50

   어머니의 생신과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겹쳐 부모님을 모시고 누나네와 함께 전라북도 남원으로 여행을 왔다. 5월 3일, 5월 4일, 5월 5일 일정이다. 남원에 오니 마침 ‘춘향제’라는 지역 축제를 하고 있어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다. 특히 축제에 아이들을 위한 놀이와 체험이 많이 준비되어 있어 마음에 든다. 숙소 근처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춘향 테마파크’가 있어서 축제 장소로 이동하기도 수월하다.

 

   5월에 고려대에서 시간과 관련한 특강이 계획되어 있어 이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리처드 뮬러의 [나우, 시간의 물리학]과 리 스몰린의 [시간의 물리학]을 번역했고, 현재 한스 라이헨바흐의 [시간의 방향]을 초벌 번역한 상태다. 리처드 뮬러와 리 스몰린 모두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저자라서 나 역시 자연스럽게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긍정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나는 라이헨바흐 역시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긍정한다고 생각하면서 그의 저작 [시간의 방향]을 번역해 나갔고,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그와 같은 생각은 계속 유지되었다.

 

   [시간의 방향] 초벌 번역은 올해 2월 말쯤 끝났다. 초벌 번역을 끝낸 지금은 나의 그와 같은 예전 생각이 계속 유효한지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는 존재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 세계에서 관측할 수 있는 사건들이 존재하고, 그들 중 일부는 소멸하나 일부는 계속 유지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대개 무질서도(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시간이 흐른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과연 이 가정이 올바른 것인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사건들의 행태가 이루어져도 이를 시간이 흐른다고 판단하는 지성적인 존재가 있을 수 있다.

 

   우리 인간이 생존하고 있는 이 환경을 보면 압도적으로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물리적인 가능성을 생각하면 이는 필연적이지 않다. 그러니까, 잉크가 퍼진 물에서 자발적으로 맑은 물과 잉크가 분리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물리적 과정의 시간 흐름이 꼭 일반적인 시간 방향의 역방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설혹 그렇다고 하더라도, 세계 속 사건들이 존재하고, 이 사건들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의 시간을 이른바 ‘초-시간(super-time)’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초-시간’ 개념 아래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엔트로피 증가와 감소를 차별하지 않는다.

 

   이 지점이 내가 좀 헷갈리는 지점이긴 하다. 이 세계 혹은 우주 전체를 보면 부분적으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일까? 아니면 똑같은 상황을 부분적으로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는 엔트로피가 감소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일까? 엔트로피의 전반적인 증가조차 인간이라는 특수한 생명 종의 특성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개체발생적 현상일까? 아니면 엔트로피의 전반적 증가는 주관적인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이 세계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어쨌든, 이런 종류의 문제가 최근 나의 머리를 제법 아프게 만들고 있다. 그런데 고민만 하다 보면 답이 잘 찾아지지 않아, 다시금 내가 예전에 번역했던 책들을 들여다보고 내가 번역하지 않았고 지금까지 내가 번역한 저자들과 다른 관점을 가진 저자(특히, 카를로 로벨리)의 책들도 들여다보고 있다. 과연 어떤 관점에 좀 더 큰 신빙성이 있는 것일까? 이는 잘 해결되지 않지만 아주 흥미로운 문제다. 충분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경우 마감 시간은 내게 일종의 구원이다. 어떻게든 마감 시간 전까지는 글과 발표 자료를 써서 발표 준비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선을 다하되, 준비가 모두 끝난 다음에는 내가 얻은 성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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