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우선 아인슈타인 자신의 관점을 간략하게 요약해 보자. 뉴턴의 『프린키피아』(1687년) 이후, 19세기에 이르러 다양한 전자기적 현상을 체계화한 전자기학이 발전하면서 질점이 아닌 ‘장(field)’이 물리학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그런데 전자기적 현상을 기술하는 물리 법칙인 맥스웰 방정식이 상대적으로 등속 운동하는 두 기준계에서 다른 꼴로 표현된다는 불만족스러운 상황이 거듭 확인되었고, 아인슈타인의 1905년 특수 상대론은 ‘갈릴레이 변환’이 아닌 ‘로렌츠 변환’을 도입함으로써 이러한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바로 잡은 이론이었다. 비록 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1915년의 일반 상대론은 이와 같은 상대성 원리를 등속 운동이 아닌 가속 운동하는 기준계로까지 확장했던 이론이다.
이와 같은 서술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상대성 원리’이다. 즉, 물리학의 법칙은 그 법칙을 기술하는 기준계와 독립적으로 같은 수학적 형식(꼴)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같이 상대성 원리를 중심으로 한 수학적 서술만 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대론의 경험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특히 시간과 공간 개념에 집중하여 서술할 수 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간과 공간의 철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상대론은 뉴턴 물리학에서 수학적이고 개념적인 차원에서 미리 ‘전제’했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자연 시계, 강체 막대와 같은 구체적인 물리적 과정(대상)으로 구현한 이론이다. 단순히 말해, 시간은 자연 시계로 재는 것이고, 공간은 강체 막대로 재는 것이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시계와 막대 같은 기초 측정 도구를 이용해서 구체적으로 재는 것이기에, 시간과 공간의 물리적 행태가 어떠할 것인지를 미리 선험적으로 전제할 수 없다. 그런데 뉴턴은 수학적이고 개념적인 시간과 공간이 존재한다고 미리 전제하는 오류를 범했고, 기준계 사이의 상대 운동(등속 혹은 가속)이나 질량-에너지의 존재 여부와 독립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일정하고 공간의 형태도 유클리드적(편평함)이라 가정했다. 시간과 공간을 경험적으로 탐구하는 관점에서 보면, 단순하게 말해 상대론은 시계와 자의 행태를 탐구하는 물리학 이론이다. 특수 상대론은 기준계 사이에 등속 운동이 일어날 때의 시계와 자의 행태를, 일반 상대론은 기준계 사이에 가속 운동이 일어날 때의 시계와 자의 행태를 논한다.
그런데 시계와 자의 행태를 논의할 때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경험적 원리들이 있다. 첫째, 빛이 물리적으로 가장 빠른 신호라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행한 다양한 경험 혹은 실험을 근거로 귀납적으로 추론한 결과이며, 선험적 원리가 아니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광속 일정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지만, 그 과정에 동시성 정의라는 인식론적 규약이 추가되어야 한다. 둘째, 특수 상대성 원리 역시 갈릴레오 이래로 잘 확립된 경험적 원리이다. 셋째, 일반 상대성 원리 또한 경험적 원리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등가 원리’ 때문이다. 중력에 의해 자유 운동하는 기준계에서는 아무런 힘도 느끼지 못하며 운동 과정에서 자신의 기준계가 일종의 관성계라 판단한다.
자가 측정하는 길이는 빛 신호를 이용해 시간으로 정의할 수 있다. 즉, 공간의 질서는 시간의 질서로 환원된다. 특수 상대론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계량적 질서(metrical order)가 유클리드적이고 불변하지만, 일반 상대론에서는 그 계량적 질서가 가속도의 크기 또는 질량-에너지의 양에 따라서 달라진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과 공간의 위상적 질서(topological order)는 불변하며, 이 질서는 결국 가장 빠른 물리적 신호인 빛을 통해 인과적으로 정의되므로, 시간과 공간의 질서는 최종적으로 물리적인 인과적 질서로 환원된다. 이처럼 시간과 공간은 세계의 인과적 질서 구조라는 것이 라이헨바흐의 핵심 주장(1924, 1928)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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