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소박한 행복

강형구 2022. 5. 14. 16:30

   어제 오후 나는 달성도서관에서 박사학위 논문 초고의 결론 부분을 쓰면서 소박한 행복함을 느꼈다. 설혹 심사위원 선생님들께서 좋지 않은 평가를 하신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가 쓴 논문의 원고에 대해 충분히 만족한다. 당연히 원고에는 부족한 부분들이 많을 것이고, 이런 부분들은 올해 말까지 계속 수정해나가면 된다. 올해 말까지 논문을 수정한다고 해서 이 논문이 심사에서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할 수 없지만, 올해 말이 되면 대략 박사학위 논문 작업의 90% 이상이 완성되리라 추측한다. 올해 말까지 열심히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논문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 능력의 부족함 탓이다.

 

   하지만 학위를 받지 못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올해 논문 작업에 실패하더라도 곧 기운을 차려서 내년에 다시 도전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직 2년이라는 시간이 있다. 나에게 본질적인 것은 내가 과학철학 연구를 즐긴다는 점이다. 이 일이 내가 유일하게 잘하고 즐기는 일이다. 나의 취미이자 특기는 과학철학 연구다. 아마 나의 아이들은 이런 아빠가 재미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수학과 물리학과 철학책 읽기를 좋아하고, 철학적인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재미없고 소박한 40대의 남자다. 나는 골프에 관심이 없고, 주식투자에 관심이 없으며, 부동산투자에도 관심이 없고,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좋은 옷을 입거나 좋은 차를 사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나는 한국철학회, 과학철학회, 대한철학회, 대동철학회, 새한철학회, 범한철학회에 가입을 했다. 나는 과학철학회와 대한철학회의 평생회원이다. 나는 대구 지역을 중심으로 계속 철학 학술 활동을 해나가고자 한다. 나는 매년 2편 이상의 과학철학 논문을 작성하여 투고할 예정이다. 논문을 심사받고 학술지에 게재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이 비용은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감내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며, 다행히 큰 비용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과학철학이 나의 직장인 국립대구과학관의 업무에 100% 적용될 것이라 확신하지 않는다. 나는 과학철학을 나의 직장 업무에 적용하려고 노력하겠지만, 그렇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과학철학 논문을 쓰고 과학철학 관련 저서들을 번역할 것이다. 그런 삶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다.

 

   앞으로 나는 생긴 대로 편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그다지 재미가 없는 사람이다. 맞다.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나는 책 읽기, 논문 읽기, 글쓰기를 좋아하며, 도서관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말을 재미있게 하지 못하며, 주변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그저 과학철학에 관한 글을 읽고 영상을 보고 글을 쓰고 생각하기를 즐기는 사람일 뿐이다. 나는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고, 담배를 피우지 않으며, 일반적인 우리나라 성인 남성들이 즐기는 것들에는 큰 관심이 없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존재감이 없는 편이며, 굳이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그렇게 생긴 사람이다. 나는 내가 생긴 대로 살기로 한다.

 

   사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원했던 것을 대부분 다 얻은 것 같다.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 셋을 얻었다. 내가 평생 공부할 수 있는 전공 분야를 찾았고, 박사학위 취득을 목전에 두고 있다. 비싸지 않으나 가족들과 함께 아늑하게 살 수 있는 집 한 채를 얻었고, 썩 괜찮은 직업도 얻었다. 더 이상의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저 앞으로도 계속 과학철학을 연구하면서 가족들과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나의 연구를 통해 도움을 얻는 사람이 적게나마 있기를 기원한다. 앞으로 나는 지금까지 내가 얻은 것들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소박하고 조심스레 살아가면 될 것이다. 부디 내 삶이 얻는 자그마한 성취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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