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Maynard Smith & Eörs Szathmáry(2000), The Origins of Life: From the Birth of Life to the Origin of Language(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Chapter 4: From the RNA World to the Modern World.
Szathmáry(2003), "Why are there four letters in the genetic alphabet?", Nature Reviews Genetics Vol. 4, pp. 995-1001.
효소가 있어야만 DNA의 길이가 충분히 길어지지만, 이와 반대로 DNA의 길이가 충분히 길어야지만 복잡한 단백질 효소가 생겨난다. 일견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와 같은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는 『생명의 기원들』2장에서 RNA의 세계에서 현대 세계로의 이행 과정을 서술함으로써 이 물음에 답하려 한다. RNA가 구조 복제의 템플릿뿐만 아니라 효소의 기능 또한 담당했었고, 이로부터 노동의 분업이 일어나 이후 DNA와 효소가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RNA는 DNA와는 변별되는 여러 특징들을 보인다. DNA는 두 개의 서로 상보적인 염기 가닥들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RNA는 하나의 염기 가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RNA에서는 복제 시에 새로운 가닥과 낡은 가닥이 즉각적으로 분리되고, 이에 따라 ‘검독’이 일어나지 않아 오류율이 높다. 염기 가닥이 하나인 RNA는 염기 서열에 의존하는 다양한 이차적(secondary) 구조(머리핀 형식의 순환 고리, 38쪽의 그림 참조)를 가지며, 그 결과로 다양한 3차원 구조를 갖게 된다. 1967년에 외즈(Woese), 크릭(Crick), 올겔(Orgel) 등이 RNA 분자들도 단백질처럼 효소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음을 제안한 이후, 효소 활성이 있는 RNA 분자인 리보자임(Ribozyme)과 생명의 기원 사이에 상당한 관련성이 있음이 인정되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이로부터 DNA와 효소의 노동 분업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를 찾기 위해서 우선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는 오늘날 유전암호의 번역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DNA와 상보적인 방식으로 결합하여 염기서열 정보를 운반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전달자 RNA’ 혹은 mRNA이다. mRNA의 염기서열은 단백질을 구체화하는 정보를 운반한다. mRNA에 있는 세 쌍의 염기인 UAC(이를 코돈이라 부른다)는 아미노산인 ‘티로신’으로 번역된다. 티로신이 부착되어 있는 tRNA는 UAC와 상보적인 AUG(안티코돈)가 노출된 순환 고리를 갖고 있다. mRNA의 코돈에 tRNA의 안티코돈이 접합하면 리보솜의 도움을 받아서 tRNA에 부착되어 있던 티로신이 떨어져나가고, 떨어져 나간 티로신은 자라나고 있는 아미노산 사슬에 부착되고, 남은 tRNA는 재활용된다.
총 64개의 코돈 중 3개는 번역을 멈추게 하는 ‘정지 코돈’이고, 나머지 61개의 코돈들은 20개의 서로 다른 아미노산을 구체화시킨다. 코돈들의 수가 아미노산들의 수보다 더 많은 것은 이 코돈들이 ‘여분을 갖고 있음(redundant)’을 뜻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tRNA에 적절한 아미노산들이 부착되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른바 ‘할당 효소(assignment enzyme)’가 이러한 아미노산 부착의 기능을 담당하는데, 이러한 부착에 화학적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임의적인지 하는 것은 여전히 열린 문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왜 특정한 아미노산이 특정한 RNA 염기 서열에 관련되는지’이다.
이에 대한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공동 인자(cofactor) 구성을 위해서 아미노산이 올리고뉴클레오티드에 연결되었고, 리보자임이 점차적으로 단백질 효소로 변환되었을 것이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따질 경우, 리보자임이 할당 효소의 역할을 했다면 올리고뉴클레오티드가 tRNA 분자의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 사실 만으로는 유전 암호의 보편성(UUU-페닐알라닌)을 설명하기 어렵다. 레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에 의하면, 비록 코돈들의 할당에 있어 어느 정도의 임의성이 개입되었을지라도 이 할당은 ‘자연 선택’에 의해서 영향 받았다.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저자들은 다음의 세 가지의 근거들을 제시한다. 첫째, 비슷한 코돈들이 동일한 아미노산을 구체화시킨다. 둘째, 비슷한 코돈들이 화학적으로 비슷한 아미노산을 구체화시킨다. 셋째, 단백질에서 자주 사용되는 아미노산은 많은 수의 서로 다른 코돈에 의해서 구체화된다.
서트머리는 2003년에 쓴 논문인 「왜 유전 알파벳에는 네 개의 문자가 있을까?」에서 DNA가 네 개의 염기를 갖게 된 이유에 대해서 더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다. 서트머리에 따르면 DNA가 네 개의 염기를 갖게 된 데에는 이론적, 실험적, 계산적 근거들이 있으며, DNA의 4개 염기들은 RNA 세계로부터 남겨진 자취이다.
우선 서트머리는 확장된 혹은 대안적인 유전 알파벳을 만드는 데 있어서의 실천적인 제약들을 소개한다. 첫째, 화학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둘째, 열역학적으로 안정되어야 한다. 셋째, 효소적으로 처리가능해야 한다. 넷째, 운동학적으로 선택적이어야 한다. 저자에 따르면 대안적인 유전 알파벳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은 복제의 신뢰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염기의 수가 증가할수록 구조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반면 구조가 정확하게 복제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필요한 ‘직교성’은 줄어들게 되었기 때문에, 염기의 수가 마냥 증가할 수는 없다.
다음으로 서트머리는 RNA 세계에서는 가장 적당한 유전 알파벳의 수가 넷이었다는 이론적인 근거들을 제시한다. 우선 그는 ‘진화적 안정성’을 언급한다. 저자에 따르면 네 개의 염기가 ‘선택 안정화’에 있어서 최적이었다. 알파벳의 크기가 커질수록 최적의 구조가 보다 분명히 정의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럴 경우 부정확한 염기를 포함하게 될 위험 또한 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가장 최적화된 알파벳의 크기는 4로 줄어든다. ‘방향성 있는 선택과 진화가능성’과 관련해서도 알파벳의 수가 4인 경우가 가장 최적임이 컴퓨터 본뜨기를 통해서 밝혀졌다. 알파벳의 수가 4임을 지지하는 증거는 이른바 ‘오류-암호화 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요약하자면, 가장 적합한 유전 알파벳의 크기는 안정성과 진화가능성 사이, 신뢰성과 촉매적 효율성 사이, 정보 밀도와 오류 저항도 사이에서의 적절한 타협점이라고 할 수 있고, 여러 이론적인 근거들은 왜 4가 가장 적합한 염기 숫자였는지를 설명해준다.
이상과 같이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의 책 『생명의 기원들』의 4장 및 서트머리의 2003년 논문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생명의 기원들』의 4장을 읽으면서 든 의문은 다음과 같다. 리보자임이 아미노산과 협동하여 촉매로서의 효과를 증대시켰다면, 왜 그런 촉매로서의 효과 증대가 필요했을까? 당시 리보자임은 일종의 자가촉매적 신진대사 순환체계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러한 순환체계의 효율성을 증대시키기 위해서 당시에 가용했던 자원인 아미노산을 이용한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리보자임, 올리고뉴클레오티드, 아미노산 사이의 관계가 명쾌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자가촉매적 순환체계 → ‘복제’와 ‘효소’의 기능을 동시에 담당하는 RNA의 등장 → RNA의 효율성 증대를 위한 아미노산과의 협동 → DNA와 RNA의 분업 및 현재 볼 수 있는 복제 기제의 출현]에 대한 일목요연한 설명은 없을까?
서트머리의 논문은 여러 실험적, 이론적 근거들을 통해 DNA 알파벳의 수가 4인 것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다. DNA 알파벳 수에 대한 그의 설명은 기존의 연구들을 종합해서 특정한 물음(‘왜 DNA 알파벳의 수는 4인가’)에 답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물음이 생긴다. 굳이 알파벳 수가 4이지 않아도 되었음을 암시하는 실험적, 이론적 근거들은 없는가? 혹은, 기존의 근거들을 서트머리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여지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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