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생명과학통론 독서노트 04

강형구 2016. 11. 28. 06:57

 

John Maynard Smith & Eörs Szathmáry(2000), The Origins of Life: From the Birth of Life to the Origin of Language(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Chapter 3: From Chemistry to Heredity.

Szathmáry(2000), "The Evolution of Replicators", Philosophical Transactions: Biological Sciences, Vol. 355, No. 1403, pp. 1669-1676.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는 생명의 기원들3장에서 어떻게 화학적인 물질으로부터 유전적인 특성을 보이는 물질이 형성되었는지를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파린(1924)과 할데인(1929)은 자외선과 번개의 방전을 이용할 경우 원시 대기에서 다양한 종류의 유기화합물들이 합성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밀러(1953)는 물

가 포함된 플라스크에 전기 방전을 해서 아미노산, 당류, 퓨린, 피리미딘 등과 같은 다양한 유기화합물을 생성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유기화합물들만으로는 유전이 일어나지 않으며, 문제는 이 화합물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특정한 화학 결합을 맺으면서 단백질이나 핵산과 같은 중합체들을 형성했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귄터 베히터호이저가 해답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이온들은 특정한 방향성을 유지한 채 전위를 띤 표면에 들러붙어서 움직였고, 이에 따라 상호작용하는 분자들은 부분적으로 집중되었으며 반응 속도도 증가되었다.

  

   복제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원시 지구에서의 최초의 복제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효소 및 복제에 적합한 형태를 띤 단량체(monomer) 없이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RNA와 유사하게 서로 다른 단량체들이 결합될 수 있는 방법의 수를 감소시키는 중합체가 필요했을 것이며, 그런 중합체는 RNA보다는 더 간단한 화학적 골격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에 의하면 아직까지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생물학자들은 문제의 해결을 향한 빠른 진전을 보이고 있다.

  

   변이가 일어나려면 복제가 완벽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복제자가 담고 있는 정보의 전체성(integrity)이 유지되기 위해서 적어도 하나의 복제물은 완벽하게 복제되어야 하며, 나머지의 오류 복제들은 선택에 의해서 제거될 수 있다. 그런데 유전자의 크기나 돌연변이의 비율이 특정한 한계를 넘어서면 복제에 있어 돌연변이 메시지의 축적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만프레드 아이겐과 페터 슈스터는 오류의 문턱(역치)’이라고 불렀다. ‘오류의 문턱이론에 따르면 정보의 전체성이 보존되기 위해서는 오류 확률이

을 넘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유전자가 1000개의 염기를 갖고 있을 경우, 돌연변이 비율이

을 넘어서는 안 된다.

  

   효소는 복제에 있어서 정확도를 증진시키는 역할을 해 주지만 원시 지구에서의 복제는 효소 없이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다. 효소 없는 복제는 오류 확률이 높은 까닭에 이러한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염기들의 수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RNA는 스스로 효소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별도의 효소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임을 감안할 경우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의 추측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들은 고등 생물일수록 유전자의 수가 많고 효소를 통한 정보의 검독 과정이 정밀함을 지적하는데, 이러한 다량의 유전자와 효소의 정보 검독은 정보 복제의 정확도를 고도로 높이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서트머리는 논문복제자들의 진화에서 다양한 종류의 복제자들에 대한 다소 개략적인 개념적인 분석을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복제자들은 제한된 유전(가능한 유형들이 개체들의 수보다 작은 유전)에서 무제한적 유전(가능한 유형들이 개체들의 수보다 많은 유전)으로, 끌개에 기초한(동역학적) 복제자에서 모듈적(이진법적) 복제자로 진화해왔다.

  

   우선 서트머리는 가설적인 지방질 세계에서의 앙상블 복제를 논의하기 위해 순환적 화학량 이론이라는 기호적인 연산 법칙에 대해 설명하는데, 이를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예를 들어

라고 쓰면 이는 효소

의 작용으로 인해

로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의 경우에는

가 자가촉매 혹은 복제했음을 의미한다. 서트머리에 의하면 가장 대표적인 앙상블 복제는 막 복제이다. 적절한 양쪽 친매성 구조를 갖고 있는 막 생성분자가 막에 주입되면 막이 촉매 역할을 해서 막 생성 분자를 형성하고, 그 결과가 축적되면 새로운 막이 형성된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체계는, ‘제한된 유전을 갖는 끌개 중심의 앙상블 복제자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복제에서는 분자 앙상블 전체가 복제되며, 이 때 복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반응 연결망의 동역학적 본성이다. 또한 이같은 복제는 제한적이다. 크기

의 복제자를 만들기 위해

가지 유형들의 분자들이 사용되었을 경우 가능한 복제자들의 계열 수는

인데, 앙상블 복제자들의 경우 가능한 유형들의 상한은

으로 항상

보다 작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서트머리는 자가촉매적 순환을 논한다. ‘자가촉매적 순환의 대표적인 경우로 시트르산 순환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종류의 순환은 별도의 효소작용을 필요로 하는 까닭에 자발적이지 않으며(비자발적 순환), 순환을 통해 늘 계가 전체 단위로 복제되기 때문에 이 때의 복제는 모듈적 복제가 아닌 전체론적 복제이다. 포르모스(formose) 반응(단순한 포름알데히드에서 리보오스와 같은 복잡한 당류를 만드는 반응)에서는 효소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는 자발적 순환이지 않느냐고 반론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반응에서는 순환 과정의 매 순간마다 합법적 반응뿐만 아니라 비합법적 반응 또한 일어날 수 있고, 이러한 비합법적 반응으로 인해 온갖 종류의 부수 반응들이 생겨 계 전체가 비가역적인 방식으로 변형되어버릴 수 있다.

  

   서트머리가 세 번째로 논하는 복제자는 모듈적 복제자이다. 키드로프스키가 1986년에 제안한 모형에서는 단순한 한 쌍의 염기 가닥들이 동시에 결합했다가 분리되면서 자기 복제가 이루어지는데, 이 때의 복제는 모듈적이기는 하지만 그 크기의 제한으로 인해 제한된유전적 특성을 갖는다. 서트머리에 의하면 펩타이드의 템플릿 복제 또한 이같은 종류의 모듈적 복제에 속한다. 서트머리가 네 번째로 논하는 복제자는 반사적으로 자가촉매적인 단백질 집합이다. 이와 같은 계는 끌개에 기초한 제한 유전 복제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에서의 복제는 아미노산과 펩티드의 계열적 첨가에 의존하는 까닭에 모듈적 복제라고 말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서트머리가 논하는 복제자는 표현형 복제자이다. RNA는 세포와 유관한 표현형을 갖고, DNA는 후성 유전과 유관한 표현형을 갖는다는 의미에서 둘 다 표현형 복제자라고 할 수 있다. 현 시대의 유기체들에서 볼 수 있는 유전적 막과 프리온은 제한적인 성격을 갖는 표현형적 유전 복제자이지만, 인간의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은 무제한적인 유전적 복제자이다. 그렇다면 왜 유독 인간의 만이 무제한적인 유전적 복제자일까? 서트머리는 인간이 무한정하게 많은 수의 을 유지할 수 있는 까닭을 인간의 언어에서 찾는다. 그에 의하면 언어는 문화적 유전 체계이다. 언어는 이진법적인 정보체계이며, 이같은 언어라는 정보체계에 의해서 인간이 무제한적인 유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서트머리의 주장이다.

  

   자가촉매적 신진대사 순환을 하는 계가 원시 지구에서 물리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비록 그 확률이 낮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명체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복합적 유기물질들이 생성되는 것도, 뮐러의 실험 이후 밝혀진 것처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끌개에 기초한 혹은 동역학적 본성에 기초한 복제로부터 모듈적 복제로의 전환이다. 왜 굳이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이행이 일어났을까? 전자로부터 후자로의 이행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이 낮다는 것, 그러한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이행이 일어났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두 종류의 복제(비모듈적 복제와 모듈적 복제)로의 이행은 서로 다른 특징을 갖는 것으로 보인다.

  

   자가촉매적 신진대사 순환과 복합적 유기물질의 생성에는 그야말로 물리적인 우연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자가촉매적 신진대사 순환이 한 번 형성되고 난 뒤의 일련의 변화에는 어떤 일관성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이 순환을 더 효율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정보전달 부분체계와 막 형성 부분체계가 발전했고, 그 중에서도 정보전달 부분체계가 이 순환 전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음은 앞서의 야블론카와 램의 논문에서 살펴본 바 있다. 하지만 왜 정보전달 부분체계가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게 되었을까? 이 또한 물리적인 우연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단순한 물리적 우연만으로는 이와 같은 진행 과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듯 보인다.

  

   나는 이와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좋은 개념적 도구가 다름 아닌 되먹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리적으로 단순하면서도 서로 다른 작동 논리를 가진 부분 계들이 집합적으로 모일 경우, 집합 내에서 계들 서로 간의 상호작용이 축적되면서 거시적인 규모에서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직접적인 사례들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사이버네틱스 이론이다. ‘물리적인 우연에 의한 자가촉매적 순환계의 탄생과, 그러한 계 내부에서 되먹임 작용이 축적되면서 계가 변화해가는 과정을 구분해서 논의해보면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되먹임 작용의 축적을 통해 계의 복제와 관련된 정보들이 계 전체가 아니라 일부의 특정 분자들로 응집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비모듈적 복제자에서 모듈적 복제자로의 이행에 대한 하나의 설명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되먹임에 의한 설명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는 장소는 컴퓨터를 통한 본뜨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실제의 물질적 성분들이 갖고 있는 물리적 성질에 기초한 실험을 통해 우리가 규명하고자 하는 현상을 본뜰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제 실험을 통해 그런 작업을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계의 구성 성분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물리적 메커니즘들을 컴퓨터 상에 구현된 가상적인 물리적 환경에 입력시키고, 이 환경 내에서 되먹임 효과를 통해 계가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자가촉매적 신진대사 체계를 되먹임에 초점을 두고 컴퓨터 상에서 본뜰 경우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궁금하다.

  

   또 하나 관련 있는 흥미로운 물음은 어떻게 표현형 복제자가 가능하게 되었는가하는 점이다. 서트머리에 의하면 RNA는 세포와 유관한 표현형 복제자이며, DNA는 후성 유전과 유관한 표현형 복제자이다. 유전 정보의 주요 전달 메커니즘이 계 전체가 아니라 계의 일부분으로 분업화됨과 동시에 표현형 복제자도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표현형 복제자의 등장을 정보 이론적 용어들로 설명할 수 있을까? 아니면 이러한 등장 또한 되먹임을 기반한 본뜨기를 통해 설명할 수 있을까?

  

   메이너드 스미스와 서트머리의 글들을 읽으면서 이들이 시간의 경과에 따른 구체적인 변화 양상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같은 변화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 생물학이 사이버네틱스’, ‘되먹임’, ‘본뜨기와 만난다면 흥미로운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