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양자역학의 철학 독서노트 11

강형구 2016. 11. 6. 10:32

13: 양상해석과 서울해석

 

 

1. 양상논리학과 양상해석

  

   양상논리학이란 필연성(necessity)’가능성(possibility)’ 및 이와 관계된 개념들을 다루는 논리학이다. 이를 위해 두 개의 문장 연산자 을 도입한다. 예를 들어 문장 Q‘1+1=2’라고 할 때, Q‘1+1은 필연적으로 2이다라는 문장이다. 만약 문장 P돼지는 날 수 있다라면, P돼지는 날 수 있었을 수도 있다라는 문장이다.

  

   ‘필연성가능성개념을 이해하는 한 방법은 가능세계를 도입하는 것이다. ‘가능세계를 도입할 경우, 명제 P필연적으로 참이라는 것은 모든 가능세계에서 P가 참임을 의미하고, 명제 P가능적으로 참이라는 것은 적어도 하나 이상의 가능세계에서 P가 참임을 의미한다. 이에서 더 나아가, 좀 더 복잡한 양상적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서 접근가능성(accessibility) 관계를 도입하는 것이 좋다. ‘접근가능성 관계를 도입할 경우, P가 참일 때 P지금 이 세계로부터 접근할 수 있는 세계들 중 적어도 하나의 세계에서 P가 참임을 의미하고, P지금 이 세계로부터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세계에서 P가 참임을 의미한다.

  

   ◇◇P의 경우, 이는

으로부터 접근가능한

가 있어

에서 P가 참임을 의미하는데, 이 때

에서 P가 참이라는 것은

로부터 접근가능한

이 있어

에서 P가 참임을 의미한다. P는 거짓이지만 ◇◇P은 참이 될 경우(지금은 가능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가능했을 수도 있을 경우),

으로부터

가 접근가능하고

로부터

가 접근가능하지만,

로부터

가 접근가능하지는 않아야 한다. 이는 접근가능성 관계가 전이적(transitive)’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접근가능성 관계가 가질 수 있는 주요 성질들로 대칭성’, ‘전이성(transitivity)’, ‘반사성(reflexivity)’이 있다. 이 세 성질들의 조합 중 어떤 조합을 만족시키느냐에 따라, 귀결되는 양상논리학의 체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접근가능성에 어떠한 제한이 없는 경우도 있고, 접근가능성이 반사적인 경우도 있으며, 접근가능성이 반사적이고 전이적이며 대칭적인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양자역학에 대한 양상해석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 반 프라센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계의 양자역학적 상태에 관한 사실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될 수 있는 명제들은 양상적이다: 이 명제들은 무엇이 일어날 수 있고 무엇이 일어나야만 하는가에 대한 주요한 정보를 제공하지만, 실제로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오직 간접적으로만 정보를 제공한다.” 반 프라센에 따르면, “양자역학적 기술은 무엇이 물리적으로 필연적이고 무엇이 물리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완전하지만, 어떤 가능성이 현실화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불완전하다.” (반 프라센, 1981; 281)

  

   양자역학적 상태를 표현하는 명제들은 실제로 일어나는 것에 대한 사실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이 명제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 현상들에 관해 정보를 주지만, 이러한 정보는 실제 현상과 사실적인 관계가 아닌 양상적인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구분을 위해 반 프라센은 사건상태개념을 구분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 특정한 관찰가능량

이 시각

에 특정한 값

을 가짐을 말함으로써 기술된다. 물리적 계의 상태, 이 계가 특정한 값

에 대응하는 관찰가능량

의 고유상태에 있다고 말함으로써 기술된다.

  

   물리적 계가 갖는 상태의 속성들은 관찰가능한 값들의 속성이 될 수 없다. ‘상태는 슈뢰딩거의 방정식에 따라서 결정론적으로 변하는 반면, 그 결과는 통계적(stochastic)이다. 양자역학적 사건의 확률과 가능성은 상태에 의해서 결정되고, 그런 까닭에 상태는 사건에 대한 양상적인 정보를 제공한다고 보는 해석을 양자역학에 대한 양상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2. 반 프라센의 코펜하겐 유형양상해석

  

   반 프라센은 계의 값 상태동역학적 상태를 구분한다. 계의 값 상태는 어떤 관찰가능량들이 값을 가지며 그 값들은 무엇인지를 진술함으로써 완전히 구체화되며, 계의 동역학적 상태는 계가 고립되었을 경우 어떻게 변할 것인지를 진술함으로써 완전히 구체화된다. 이에 따라 값을 부여하는 명제상태를 부여하는 명제도 나뉜다. ‘값을 부여하는 명제

는 관찰가능량

이 실제로 값

를 가짐을 뜻한다. ‘상태를 부여하는 명제

는 해당 상태가 측정

을 했을 경우 반드시 결과값

를 가져야 함을 뜻한다.

  

   ‘값 상태동역학적 상태및 두 상태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서 양상해석의 부류를 나눌 수 있다.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면, 관찰가능량들은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서 말해야 하기 전까지는 값을 가진다고 보기 힘들다. 이러한 코펜하겐 해석의 입장을 반영하는 양상해석이 반 프라센의 코펜하겐 유형양상해석이다. ‘코펜하겐 유형양상해석에 따르면, 값의 속성들은 동역학적 상태로부터 연역될 수는 없지만, 동역학적 상태는 아래와 같은 세 가지 방식으로 값 속성들을 제약한다.

  

첫째,

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 역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모든 참인 값 속성들은 함께 보른 확률값을 1을 가질 수 있다.

  

셋째, 참인 값 속성들의 집합은 최대이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자. 어떤 계

의 처음 상태는

스핀에 대해

이다. 그리고 측정도구

+ 또는 -의 값을 갖는다.

로 이루어진 복합계는 시각

일 때 다음과 같은 준비 상태를 갖는다.

  

(1)

이 때

이고,

이다.

  

이 계는 시각

일 때 다음과 같은 상태를 갖는다.

  

(2)

  

이 때 우리는 입자와 표시기(pointer)에 대해 다음과 같은 환원된 상태를 부여한다.

  

(3)

  

   만약 양자역학의 계가 (2)에만 머물러 있다면 관찰가능량은 정해진 값을 갖지 않게 된다. , (2)와 양자역학에서의 확률을 일관되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이에 대해서 반 프라센은 (2)가 실제의 값 상태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값 상태들의 집합을 기술하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반 프라센에 의하면, 우리가 (2)에서 상태

또는

으로 명확하게 이행할 수 없는 것은 실제의 값 상태에 대한 우리의 무지(ignorance)’로부터 비롯된다.

  

   양자역학적 상태와 값 상태를 부여하는 양상해석에서는 파동함수의 무너짐이 발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자역학적 상태는 사실 관계가 아니라 사실 관계에 대한 양상적인 정보만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반 프라센에 따르면, 양자역학적 상태는 표시기의 값 상태를 고정시키지도 않고 가능한 값 상태들의 집합을 완전히 결정하지도 않는다. 양자역학적 상태는 가능한 값 상태들 위에 확률을 생성하고, 가능한 값 상태들의 집합을 제한하는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순수 상태들이 주어진 시각

에서 가능한 값 상태들인가? 이에 대해 반 프라센은, ‘경험적 적합성의 기준(모든 관찰가능한 현상들과 양립가능하다)’을 만족하는 순수 상태들은 모두 적합하다고 답했다. 일반적으로 양자역학적 상태는 혼합 상태이고, 혼합 상태를 순수 상태들의 합으로 전개하는 방식은 다양하므로, 반 프라센의 기준은 매우 느슨하다고 할 수 있다.

 

3. 코헨-딕스-힐리의 제한적양상해석과 부정확한 측정의 문제

  

   문제가 되는 양자역학적 계가 가질 수 있는 가능한 순수 상태들을 반 프라센보다 더 강한 방식으로 제약하고자 한 학자들이 코헨(Kochen), 딕스(Dieks), 힐리(Healey)이다. 이들은 모두 이른바 쌍직교 분해 정리(biorthogonal decomposition theorem)’을 이용한다. ‘쌍직교 분해 정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쌍직교 분해 정리: 벡터

가 텐서곱 힐버트 공간

에 주어졌을 때,

의 기저들의 집합 {

}

의 기저들의 집합 {

}가 존재해서,

형식의 선형 결합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만약 이 선형 결합의 모든 곁수들이 서로 다를 경우, 이러한 전개는 유일하다.

  

   코헨-딕스-힐리에 따르면, 양자역학적 상태에 대한 쌍직교 분해 정리를 통해서 가능한 순수 상태들(속성들)의 집합을 유일하게 골라낼 수 있다. 코헨-딕스-힐리의 해석에 의하면, ‘쌍직교 분해 정리를 통해서 선정된 각각의 순수 상태들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해당 상태의 곁수의 제곱과 일치하며, 이는 이들의 해석이 기존 양자역학의 경험적 결과와 일치하도록 보장한다. 코헨, 딕스, 힐리 각각이 양자역학의 양상해석을 통해 추구하는 바는 다르지만, 이들이 쌍직교 분해 정리를 통해 반 프라센의 경험적 적합성 기준을 넘어서서 양자역학의 제약 조건들을 더 강화시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하지만 알버트(Albert)와 뢰버(Loewer)1991년에 코헨-딕스-힐리의 해석에 대한 중대한 문제들을 제기했다. 첫째 문제는 쌍직교 분해 정리 자체로부터 비롯된다. 쌍직교 분해 정리가 성립한다고 하더라도, 곁수들 중 임의의 2개가 동일할 경우 해당 양자역학적 상태를 전개하는 방법이 그 유일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둘째 문제이다. 우리가 세계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측정 장치는 이상적인 장치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늘 측정에는 오차가 발생하며, 오차가 발생할 경우 (2)

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4)

과 같은 방식으로 분해될 것이다. 이 때 뒤의 두 항은 오차를 대표한다.

  

   위와 같이 오차가 존재하는 상태에 대한 쌍직교 분해를 할 경우, 이 때의 기저는 우리가 알고자 하는 관측가능량과 양립하지 않을 것이며, 기저의 곁수 또한 해당 관측가능량을 가리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세계에서는 사실상 이상적인측정보다는 오차가 있는측정이 압도적으로 많이 일어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므로, 쌍직교 분해 정리를 통해 양상해석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실질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이 알버트와 뢰버의 주장이다.

  

   이러한 반론에 대해 반 프라센은, 계의 상태 중에서 가능하고 잘 정의된 순수 상태들을 골라내는 것은 세계의 전체 상태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상호작용이 계의 상태에 이르게 했느냐에 의존한다고 대응했다. 그리고 그는 측정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종류의 동역학적 상호작용에 대한 일반적인 수학적 특징을 제시했다(반 프라센, 1991). 이에 대해 알버트는, 세계에서 실제로 수행하는 실험들 중 반 프라센이 제시하는 수학적 특징들을 만족시키는 실험은 하나도 없으리라고 응수한다. 양자역학의 여러-마음해석을 옹호하는 알버트는, 기록되는 관측 가능량이 마음과 분리가능한 특정 사실 관계(동역학적 상호작용)를 갖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4. 상태 값에 대한 동역학을 개발하려는 시도, 양상해석에 대한 향후 전망

  

   위에서 살펴본 부정확한 측정의 문제외에도 양자역학의 양상해석에는 해결해야 할 다른 문제들이 있다. 첫째, ‘쌍직교 분해 정리혹은 더 넓은 의미에서 빛띠 분해 정리는 물리적으로 어떤 의의를 가지는 것인가? 이 정리가 양자역학에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면, 이 정리가 왜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한 별도의 설명이 제시되어야 하지 않는가?

  

   둘째, 만약 양자역학적 상태가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서 결정론적으로 변화한다면, 값 상태는 어떠한가? 양자역학적 상태와 값 상태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물리적 상태에 대한 동역학이 수립되어 있다면, 값 상태에 관한 동역학 또한 수립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두 동역학 사이의 관계를 적절하게 설정할 수 있지 않을까?

  

   계의 완전한 물리적 상태는 혼합된 양자상태실제의 값 상태라는 두 요소들로 구성된다. 양자상태의 시간 변화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 결정되고, 슈뢰딩거 방정식은 무지의 확률을 생성한다. 하지만 우리는 슈뢰딩거 방정식에 의해 제공되는 양자확률에 의해 값 상태 위에서의 확률 분포가 주어진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바시아갈루피(Bacciagaluppi)와 딕슨(Dickson)은 속성들 혹은 값 상태들에 관한 동역학을 제안했다(1999).

  

   값 상태의 동역학은 가능한 속성들의 집합이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서술해야 한다. 바시아갈루피와 딕슨이 제시하는 동역학은 기본적으로 통계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들은 우선 무한소 시간 단위에서의 전이 확률을 정의하고, 이로부터 유한 시간의 전이 확률을 이끌어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바시아갈루피, 도널드, 베어마스의 연구(1995)에 의하면, 값 상태의 변화는 힐버트 공간에서의 연속적인 궤적을 따르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정의될 수 있다.

  

   셋째, 과연 양상해석은 상대성이론과 정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문제의 범위를 좁혀서 말해, 양상해석은 상대성이론의 국소성 조건을 만족시키는가? 이에 대해서 딕슨(Dickson), 클리프턴(Clifton), 아른트체니어스(Arntzenius), 미어폴트(Myrvold) 등은 국소적 동역학으로서의 양상해석이 벨의 부등식을 산출하고, 이는 양자역학의 예측과 어긋난다는 금지 정리를 증명했다. 이에 대해 베로코비츠(Berokovitz)와 헤모(Hemmo)는 양상해석에 대한 비국소적 동역학을 제안했지만, 이는 여전히 초평면(Hyperplane)에 의존적이라는 문제를 갖고 있다. 결론적으로, 양상해석을 상대론적으로 확장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넷째, 과연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에 물리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합당한가? 양자역학의 힐버트 공간 정식화라는 수학적 구조는 양자역학적 실재를 온전히 표현하는 데에 부족할 수도 있고 잉여적일 수도 있지 않은가? 만약 우리가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에 물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면 어떤 기준을 근거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 또한 여전히 양상해석을 탐구하는 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양상해석이 이전까지의 양자역학 해석들에 비해 두드러지는 점은 이 해석이 양자역학적 상태값 상태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두 상태 사이의 관계가 사실적인 것이 아니라 양상적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구분은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물음을 던진다. 대체 양자역학적 상태값 상태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과연 양자역학적 상태는 반 프라센의 주장처럼 경험적 적합성을 만족시키는 순수 상태들만을 제공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인가? 반 프라센은 값 상태에 대한 동역학을 제시하는 것은 양자역학의 해석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양자역학의 해석은 양자역학과 더불어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상대성이론과 정합적인 관계를 맺고, 기존의 양자역학과 구분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적 예측을 내놓을 경우에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과연 동역학적 양상해석이 어떤 미래를 갖게 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