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생각하는 남자 01

강형구 2016. 8. 29. 11:33

 

 

   태현은 자의식이 강한 남자였다. 자의식이 강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자신과 세계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태현은 자신이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를 경이롭게 여겼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어느 휴일 아침이었다. 태현은 아버지를 따라 동네 근처에 있는 작은 산에 올랐다. 시절은 봄이었고, 산 중턱에는 커다란 나무들이 넓게 뻗은 가지들과 초록빛 잎사귀들을 뽐내며 울창하게 서 있었다. 맑은 날씨에 하늘은 푸르렀고, 태현은 나뭇가지들 사이로 쏟아지는 환한 햇살을 쳐다보았다. 찬란한 빛이 태양으로부터 태현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공기 중에 퍼져 있는 조그만 먼지 입자들이 빛 사이로 이리저리 움직였고, 태현은 빛 속에서 움직이는 입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빛 속에서 자연 속의 많은 물질들이 오묘한 법칙을 따라 아름답게 움직이고 있었고, 이는 태현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물론 이와 같은 경험은 비단 태현만에게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이는 인식능력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인식적인 감정이 태현에게 다른 종류의 인간적인 감정들에 비해 더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는 것이 태현에게 약간의 톡특함을 부여했다. 실제로 태현은 먹는 것, 입는 것,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것,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등으로부터 비롯되는 인간적인 감정들에 대해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모래사장에서 물을 모래와 섞은 점토로 산을 만들고 계곡을 만드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또한 그는 나무 이파리 뒤쪽에 새겨져 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문양들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고, 땅 위에서 개미들이 줄을 이어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작은 장난감 블록들을 쌓아서 자기만의 작은 마을을 만들어보는 것을 좋아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태현은 그러한 작은 세계를 종이 위에 쓰인 문자들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되었다.

  

   태현의 부모님은 태현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이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자의식이 강했던 태현은 글을 읽고 생각하고 숫자를 계산하고 방정식을 푸는 것에 어느 정도의 재능을 보여,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학교에서 곧잘 좋은 성적을 얻었기 때문이다. 태현의 부모님은 아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아들에게 어느 정도 심리적인 거리감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은 태현과 같은 자의식 혹은 인식론적인 흥미를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태현의 아버지 민수는 상업을 공부한 상인이었고, 젊은 시절부터 물건을 사고파는 일에 전념했다. 민수에게는 대기업으로부터 물건을 받아 자신이 담당하는 지역에 물건을 많이 파는 일이 중요했고, 돈을 많이 벌어 풍족한 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민수의 아내인 선영에게는 민수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잘 벌고, 남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태현이 아주 탁월하게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치르는 시험에서는 곧잘 90점 이상을 받았지만, 수학경시대회 같은 어려운 시험에 학교 대표로 나갈 정도로 공부를 잘하지는 못했다. 사실 태현은 똑똑한 아이란 이름으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고, 오히려 그러한 주목을 불편한 것으로 여겼다. 태현은 또래의 아이들처럼 친구들과 함께 농구나 축구를 하는 것을 즐겼고 비디오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했다. 또한 태현은 숙제를 적당히 끝내놓고 나면 소설책을 즐겨 읽었지, 학교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계속 공부를 하지는 않았다. 태현은 공부 성적은 상위권에 속하면서도 성적에 집착하지 않고 수시로 책을 읽었다. 태현에게 학교에서의 공부가 의무적이고 지루한 것이었다면, 책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세계 속 이야기들은 훨씬 더 풍부하고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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