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살아있기, 지켜내기

강형구 2016. 8. 25. 17:42

 

   요즘 들어 부쩍 아내는 내 머리의 정수리 부분을 쳐다보면서 자주 걱정을 한다. 머리가 많이 빠져 휑하다는 것이다. 올해 겨울에 태어날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이면 내 머리 중앙이 반들반들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병원에 가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가면서까지 모발을 관리하고 싶지는 않다. 지구 위에서 살아온 지 35년 정도 되었으니, 점점 털도 빠지고 기력도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지금까지 죽지 않고 잘 살아왔다. 앞으로도 잘 살아가야 할 텐데, 그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어제부터 여름휴가지만, 휴가라고 해서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나는 아침에 아내를 직장에 데려다주고 동네 도서관에 와서 하루 종일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작년 여름에도 비슷하게 휴가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대개 여름휴가는 일주일 정도인데, 일주일이면 책 2~3권 정도를 읽을 수 있다. 집에서 책을 읽으면 긴장감이 떨어져서 책 읽는 진도가 느려진다. 반면 도서관에서는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 긴장되고 괜스레 경쟁심 비슷한 것도 생겨서 책을 빨리 읽어낼 수 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을 보면 대개 여름휴가 때 계곡이나 바다 혹은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나는 올해도 이렇게 도서관에서 여름휴가를 보낸다.

 

   아마도 미래의 우리 아이가 나에게 투덜댈지도 모르겠다. “아빠, 왜 또 도서관이야? 오늘은 놀이동산에 가자.”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지. “그래, 알았어. 그래도 책은 챙겨가자.”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도서관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인가보다 하고 생각할 따름이다. 이런 내가 오늘을 살아가고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과연 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과연 나는 살아 있으면서 무엇을 하려고, 대체 무엇을 지켜내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내 젊은 날의 그 거칠고 뜨거웠던 열정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대체 무엇 때문에 나는 그토록 과학철학에 열광했을까? 무엇이 나 스스로에게 철학에 대한 의무 혹은 사명 같은 것을 부여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알겠다! 이건 정말 심오하다!”와 같은 느낌이 지금껏 나를 이끌어오지 않았나 싶다. 무엇인가를 깊이 이해했다는 느낌과 함께 강렬한 감동이 찾아왔다. 그 감동 때문에 과학책을, 철학책을, 소설책을 읽었다. 음악을 좋아했던 것은 그것이 정서적으로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깨달음과 아름다움이 나에게 찾아왔을 때 삶은 살만한 것이고 행복한 것이었다. 깨달음과 아름다움이 없는 시간은 형식적인 시간, 의무적인 시간, 그저 살아내는 시간,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런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시간들이 이 세상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조금씩 알게 되긴 했지만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내게 명예욕은 그다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나는 진짜인 것, 아름다운 것, 감동적인 것을 좀 더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자연에서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꼈고, 그것을 더 잘 알고 싶어서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나는 자연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그러한 아름다움과 감동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직접 사랑을 했고, 소설을 읽었고, 음악을 들었다. 지금은 직장인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자연이 아름답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 그래서 휴가임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에서 자연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생각한다.

 

   옳은 것, 아름다운 것, 감동적인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일. 스스로가 그런 삶을 살기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떠나는 일. 나는 내게도 찾아 왔던 그 젊은 시절의 열정을 되돌아본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너무나 가치 있는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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