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에게 가끔 묻곤 했다. 네가 어떻게? 대체 왜? 사람들이 나에게 이렇게 질문을 하면 나도 덩달아 좀 의아스러웠다. 왜 그렇게 반응하지?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아무런 숨은 의도 없이 한 일인데? 지금도 기억난다. 초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몇몇 친구들이 운동장에 모여 교실로 들어가려던 나를 위협한 적이 있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직도 모르겠다. 그날 이후 나는 태권도에 다니기 시작했고, 태권도를 수련하는 나를 건드리는 친구들은 없었다. 오히려 그때 나를 위협했던 친구들 중의 한 명은 나에게 찾아와서 친구가 되자고 했고, 나는 그러자고 했다.
나는 자유롭고 즐겁게 어떤 행동을 한다. 그런데 그 행동은 타인들로부터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해석된다. 또 하나의 예가 있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한창 체력이 왕성하던 나는 몸이 근질근질한데 풀 데가 없어서 청소 시간이 되면 학교에서 매우 열심히 청소했다. 그러니까 선생님께서 그런 날 보시고 나를 칭찬하시며 나를 모범생이라 불러 주셨다. 그때도 나는 좀 이상하긴 했다. 왜 그렇게 반응하실까? 나는 그냥 몸이 근질근질해서 한 일인데.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반응하는 것을 나로서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들을 내 안으로 충분히 내면화시킬 수는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내면화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제법 된다. 그런데 나는 그게 잘되지 않았다. 사실 굳이 그렇게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는 건가? 꼭 그래야만 하나? 그래서 내 방식대로 그냥 자유롭고 즐겁게 무엇인가를 하면, 그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나의 원래 의도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상황을 나는 여러 번 경험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제법 흥미로운 현상이었다. 일종의 일반적인 사회적 법칙 같기도 하다. 사회는 규정, 제도, 일반적 상식으로 구성원들을 이끌어가려 하고 전반적으로 그 방법은 상당히 유효하지만, 늘 그런 형식적 통제를 오해하거나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독창적으로 해석하는 몇몇 구성원이 사회 곳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잡초처럼 나타나기 때문이다.
부산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을 때도 나는 마음속 한쪽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나를? 당신들 착각한 거 아냐? 나와 같은 사람을 감당할 수 있겠어? 서울대학교에 다니면서도 나는 늘 내가 ‘핵심 인물’이 아닌 ‘주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역설적인 상황이 일어났다. 나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박사학위를 모두 받았다. 그야말로 나는 찐 ‘서울대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나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뭔가 미묘한 아이러니를 느낀다. 왜냐하면 나는 서울대에 입학할 때부터 서울대 특유의 특권과 권위에 반감을 느꼈던 사람이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세상을 급격하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인 것도 아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꾸려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하는데, 나는 성격상 그런 일을 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즉 나에게 허락된 자유로움을 최대한 활용해서 매우 즐겁게 내 할 일을 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냥 나는 과학철학을 계속 연구한다. 그 과정에서 과학사도 계속 들여다본다. 그렇게 연구한 결과를 토대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논문을 쓴다. 나는 공적으로 그런 활동 말고 전혀 관심이 가는 활동이 없다. 나는 학교에서 높은 지위에 오를 마음이 없고, 학회에서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지도 않다. 그냥 부디 날 오해하지 말고 내버려두기 바랄 뿐이다.
그런데 이건 그냥 내 스타일인 것 같다. 그냥 이게 바로 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잘 모른다. 그것은 나에게 세계 이해와 세계 속 실천의 전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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