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와 어제는 아내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출장이라, 부산에 계신 어머니께서 대구로 올라오셔서 아이들을 같이 봐주셨다. 어제 오전에는 큰딸 지윤이와 함께 평소 자주 가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어느덧 지윤이는 카페에서 시간을 잘 보낸다. 눈높이 국어, 한자, 수학, 윤선생 영어교실을 한 다음, 자기가 보고 싶은 영상을 보면서 3시간 넘는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버틴다. 얘가 벌써 이렇게 크다니. 그새 나는 헐레벌떡 학술대회 발표 준비를 했다. 괜히 의욕만 앞서서 대동철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 덜컥 발표하겠다고 신청했는데, 아직 발표문 작성이 덜 된 것이다. 에구 어떡하나. 이게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다.
점심때 집에 와서 식사한 다음에, 아이들에게 동네 근처에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와일드 로봇”이라는 영화를 상영하니 같이 가고 싶은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그러니 큰딸은 초등학교 친구랑 같이 놀기로 약속했기에 가지 않겠다고 했고, 둘째는 언니랑 같이 놀고 싶어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셋째인 아들 태현이와 함께 롯데시네마에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마침 결제 애플리케이션 할인 행사를 하기에 8천 원 할인을 받고 2인 표를 예매했고, 영화관에서 비싸게 간식을 사기 싫어서 집에 있는 과자와 음료수를 챙겼다. 롯데시네마는 차를 타고 채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있다.
시간 여유가 있는데도 셋째는 영화관에 빨리 가자고 보챘다. 마침 구독하는 어린이 과학동아에서 영화 “와일드 로봇”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셋째는 그 책을 계속 들여다보며 영화를 빨리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셋째와 함께 조금 일찍 차를 타고 영화관에 갔다. 영화관에서는 예전에 국립대구과학관에서 함께 일했던 분을 만나서 짧게 인사를 했다. 그분은 아이들은 놔두고 오붓하게 부부끼리 영화를 보러 오셨는데, 아마 3, 4년 정도 지나면 나와 아내도 그렇게 둘이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셋째 아이는 영화가 언제 시작하냐고 기대에 찬 목소리로 내게 계속 물었다. 나는 웃으며 조금만 참으라고 했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드림웍스의 작품이라 그런지 그래픽이 멋졌다. 고도의 인공지능이 탑재된 가정용 로봇이 우연히 무인도에 불시착하면서 그 섬에 살고 있는 여러 야생동물과 상호작용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특히 그 로봇은 외톨이 여우와 함께 가족을 잃은 기러기 새끼 한 마리를 키우게 된다. 처음에 아이는 초승달 같은 눈을 하고 웃으며 계속 영화와 나를 번갈아 보며 웃었다. 매우 기쁜 모양이었다. 그런데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눈이 감기더니 결국 영화 중반부에 잠이 들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났으니 그럴 수밖에. 나는 내 외투를 벗어 아이에게 덮어 주고 계속 영화를 보았다. 어른이 보기에도 썩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영화가 끝날 때쯤 일어난 아이는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셋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큰딸의 학교 친구가 우리 집에서 큰딸 및 둘째와 같이 놀고 있었다. 집에 온 셋째도 곧바로 그 놀이에 동참했다. 나는 자기들끼리 잘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안도하며 다 못한 숙제인 학술대회 준비를 했다. 아직 읽을 논문들이 많구나. 발표문을 오늘까지 써야 하는데 도저히 오늘까지는 안 될 것 같군. 어쩔 수 없지만, 포기하지는 말자. 조금 늦는 한이 있더라도 꼭 발표문을 써야겠다. 어머니께서 함께 아이들을 봐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저녁때 아내가 출장에서 돌아왔다. 올해 국제과학관심포지엄(ISSM)에서 국립중앙과학관장상을 수상했다고 했다. 아내는 돌아오는 길에 대전을 방문한 기념으로 유명한 빵집인 성심당에서 빵을 사 왔다. 옆에서 보면 아내는 과학관 일을 진심으로 즐기는 것 같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계속 보면서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나의 부모님도 어린 시절 누나와 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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