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교수로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함

강형구 2024. 9. 15. 07:13

   만약 내가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선임연구원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올해 3월부터 대학교수가 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삶을 시작했고, 어느덧 두 번째 학기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내가 대학교수가 된 것 역시도 비교적 합리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나의 역량에 적합한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내가 철학과가 아닌 교양학부에서 가르치게 된 것, 국내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국립대학교인 국립목포대학교에서 일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내가 목포대학교에 부임한 이상, 목포대학교의 교양교육 운영과 과학철학 교육을 위해 긍정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자 책무라고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나의 바람은 대단한 철학자가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철학을 연구할 수 있는 자그마한 자리를 얻어 소신 있게 연구하는 것이었다. 학교에 나의 연구실이 있어 아침부터 밤까지 연구할 수 있고, 연구실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 내가 원하는 책들을 마음껏 오래도록 빌릴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철학을 연구하는 것에는 중요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된 철학자가 되어 철학을 연구하게 되었다.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 전까지는 정착하고 성숙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교수가 되었으니 끝인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충분한 시간을 투자하여 그 상황에 맞게 적응하고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그 조직에 유의미한 공헌을 할 수 있다. 나는 내가 한국장학재단에서 일하면서 ‘대학생 멘토링 캠프’를 시작하여 확대 및 정착시키고,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일하면서 ‘과학기술자료 조사 연구 전시 사업’을 시작하고 정착시킨 것이 내가 속했던 기관들에 대한 나의 유의미한 기여라고 생각한다. 국립목포대학교도 마찬가지다. 내가 우리 학교의 정년트랙 전임 교수가 된 이상, 재직하는 동안에 학교를 위한 유의미한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유의미한 기여를 위해서는 비교적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최소한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예상한다.

 

   특히 나는 우리 학교에서 과학철학을 전공한 철학자로 재직하면서 과연 우리나라 대학생들을 위한 과학철학 강의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관한 충분한 고민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나는 과학철학이 아닌 일반 철학 강의 역시 할 것인데, 이러한 강의를 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여전히 철학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의미가 있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려 한다. 결국 내 생각에 내가 오래전부터 계속 붙잡고 있는 가장 중요한 화두는 ‘철학’이다. 나에게는 ‘과학철학’에서도 ‘과학’이 아닌 ‘철학’이 중심이다. 물론 철학을 자신의 과학적 활동에 유의미하게 활용하는 과학자가 있지만, 결국 나는 과학을 성찰의 대상으로 삼는 철학자다. 그러나 전통적 철학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고, 그래서 과학철학을 택했다.

 

   국립목포대학교 학생들을 위한 표준적인 과학사 및 과학철학 교재를 만들고 관련 수업을 안정적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학교를 위한 나의 역할일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요즘 부쩍 나는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을 부활시키고 다시금 발전시키는 게 과학철학자로서 내가 할 일, 나에게 부여된 직업적 사명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20세기 과학의 발전이 인간에게 주는 철학적 메시지가 있는데 그게 과연 무엇이었는가? 실제로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은 이러한 철학적 메시지 규명을 위해 상당한 작업을 수행했는데, 과연 그 성과가 제대로 알려지고 평가되었는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이 현재의 일반적인 평가보다 더 심오하고 다채로웠다고 믿는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21세기의 과학철학을 하고자 한다면, 그 시작은 20세기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에 대한 합당한 재평가이어야 할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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