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래 전부터 과학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마 대학 시절 나를 조금이라도 알았던 사람이라면 이러한 점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나는 공식적인 학점이 좋지 않았고 그야말로 ‘A+ 모범생’은 아니었다. 그 시절 나 자신조차도 내가 과학철학을 아주 좋아하지만 부족한 나의 능력으로는 교수까지 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나는 우리나라 국립대학교의 교수가 된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과분한 행운에 너무나 감사할 뿐이다.
나는 이제 과학철학 연구자로서의 내 운명이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결정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2012년 1월부터 2024년 2월까지 12년 1개월 동안 직장 생활을 했다. 나로서는 자랑스러운 공직 경험이었지만 그 기간은 그만큼 쓰라린 시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나는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살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현실에 타협한 결과 직장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제 국립대학 교수가 된 이상, 내 오랜 꿈이 이루어졌고 앞으로 남은 내 생애 동안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살아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나의 운명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저명한 과학철학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또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그렇다고 해서 부족한 능력을 가진 나를 탓할 생각 역시도 전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일종의 ‘학문적 열등감’에 시달려 왔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한국의 너무 많은 학자들이 쓸데없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외국 학자의 학문적 관점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자신의 학문적 역량에 대한 근거 없는 비하가 우리 학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다. 이를 타파하는 방법은 매우 단순하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환상적인 욕심(대단한 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환상)을 버리고 그냥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문 연구를 하면 된다. 그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철학 연구자로서 나는 아주 단순한 방식으로 목표를 세운다. 공식적으로 내가 퇴임하기 전까지(만 65세가 되기 전까지) 100편의 연구 논문을 쓰고 30권의 과학철학 저술들을 번역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다. 연구 논문은 한글로 쓰일 수도 있고 영어로 쓰일 수도 있다. 영어로 쓰이면 더 많은 나라의 학자들이 읽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좀 더 바람직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글로 쓰인 논문이 저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말 바람직한 것은 한국인으로서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학문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야 학문 연구의 성과를 더 많은 한국인들이 누릴 수 있지 않겠는가?
만 65세에 퇴임한 이후에는 그간의 내 과학철학 연구 성과를 종합하는 저서(한 권 또는 여러 권이 될 수 있다)를 집필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또한, 만약 그때까지 유튜브(혹은 그와 비슷한 플랫폼)가 존재한다면, 퇴직한 교육 공무원으로서 우리나라의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유튜브 과학철학 강의 채널을 개설할 것이다. 그 채널에서는 일반적인 과학철학 내용이 아니라 내가 연구한 과학철학 분야에 관한 영상을 공개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 채널의 고유성이 확보되어 그만큼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만 65세까지 내게 주어진 일을 다 할 경우, 그 이후에는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철학과라는 특정 학과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역사를 봐도 ‘과학철학’이라는 학문은 늘 특정 학과에 얽매이지 않은 채 당대의 현실과 타협하며 그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최종 소속 학과는 인문대학의 ‘철학과’가 아니라 자연대학의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었으며, 그 무엇이 아닌 책과 논문을 벗 삼아 과학철학 연구자로 성장해 왔다. 나의 후배들도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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