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철학자로서 산다는 것

강형구 2024. 8. 11. 08:43

   우리 사회의 대학에서 철학과가 조금씩 없어지고 있다. 이와 같은 철학과의 폐과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 제법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보는 두 가지의 시각이 있다. 첫째, 이제 철학은 우리 사회 속에서의 쓸모를 다했으므로 궁극적으로 철학이라는 학문은 사라질 것이다. 둘째, 여전히 철학은 우리 사회 속에서 그 쓸모를 가지고 있지만, 그 쓸모의 비중이나 중요성이 줄어들고 있을 뿐이므로 계속 존속할 것이다. 물론 이런 두 가지 시각 이외의 다른 시각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편의상 이러한 두 가지의 시각만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겠다. 그리고 나는 이때 두 번째 관점을 취한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 사회에는 철학이라는 학문이 필요하며, 그렇기에 나는 ‘철학’과 ‘철학과’가 계속 유지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철학은 대체 왜 필요한 것일까? 이에 대한 나의 잠정적인 대답은 다음과 같다. 철학은 온갖 종류의 인간 활동을 ‘성찰’하기 위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과학철학은 과학기술에 관련된 다양한 현상과 활동을 ‘성찰’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와 비슷한 의미에서 미술철학, 음악철학, 영화철학, 문학철학 등이 가능하겠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성찰’이 필요할까?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그러한 성찰이 문제가 되는 현상과 활동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과학이 무엇인지를 성찰하는 것은 과학이라는 인간적인 현상과 인간의 과학 활동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때 성찰은 과학에 대해 ‘의미’를 부여해 준다.

 

   실제로 ‘성찰’과 ‘의미 부여’는 철학 이외의 다른 학문이 수행하기 힘든 활동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성찰과 의미 부여 그 자체에 어떤 추상적이고 독립적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성찰’과 ‘의미 부여’는 인간이라는 독특한 생명 종에게 유익하므로 바람직하지, 그것에 어떤 초월적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역사적이고 철학적으로 성찰하는 것은 우리가 물리학과 관련된 여러 현상과 활동을 잘 이해하고 잘 수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의미에서 의의가 있는 것이지, 물리학의 역사와 철학이 물리학을 초과하는 독자적인 의미와 의의를 갖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어느 순간에 이르러 인간이 온갖 종류의 성찰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냥 말없이 인간이 해야 하고 하면 이로운 계산을 하고, 이 세계 속 인간 존재와 활동의 의미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결론을 내리는 시간이 올 수 있다. 그런 경우, 인간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철학이라는 성찰적 활동은 완전히 필요 없는 활동이 된다. 실로 그때 철학은 종언을 고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끊임없이 해석과 의미 부여를 요구하는 존재이므로, 그런 시점이 과연 올지는 확실하지 않다. 나는 인간이라는 존재와 철학적 성찰은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하며, 인간이 이 세계에서 멸종하는 순간이 바로 철학이 종언을 고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상과 같이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가 점점 철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더 비성찰적인, 반성하고 해석하고 그 의미를 음미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 사회는 독창적 해석과 재해석을 통해 우리 자신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남들보다 더 잘 경쟁하기 위해 더 효율적인 방법만을 추구하는 사회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른바 ‘낭만’을 상실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철학의 쓸모를 이해하지 못하고 철학과가 점점 사라지는 것은, 어쩌면 우리 사회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인간이 수행하는 여러 활동 중 ‘철학’이라는 활동을 하면서 아직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철학 활동을 위한 미래의 상황이 녹록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는 철학자로서 살아왔고 앞으로도 철학자로서 살아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