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4년 2학기에 총 6개의 수업 중 ‘철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업을 2개 진행한다. ‘과학철학의 이해’, ‘현대철학’이 그것이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20년 전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평범한 한 명의 학생일 뿐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대학에서 철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그 20년 동안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모든 게 명확하지 않았고 불안했던 나의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 시절에 비한다면 지금의 나의 형편은 훨씬 나아진 편이리라. 나는 그에 대해 감사 또 감사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하나의 결론이 있다. 나의 삶은 오직 나만의 삶인 것이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며, 현재 내가 경험하는 이 순간은 지나고 나면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내가 과거에 내렸던 결정에는 충분한 이유와 의미가 있어서 지금 후회할 필요가 없으며, 내가 이미 내린 결정을 후회할 때 그러한 후회를 하는 것 자체에도 돌이킬 수 없는 의미가 있다. 결국 후회하는 일조차도 내가 결정해서 실행하는 일이며, 그렇게 후회할 때조차 시간은 흘러가고 나의 삶은 진행된다.
대학의 철학과에 소속되어 철학을 가르칠 수 있겠지만, 나처럼 대학의 교양학부(혹은 그와 유사한 조직)에 소속되어 철학을 가르칠 수도 있다. 각자 나름의 장단점을 가질 것이고 나는 교양학부에 소속되어 철학을 가르치는 것에 여러 장점이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철학 전공 학생이 아니라 다른 전공 학생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 마음에 든다. 모든 학문이 철학에서 비롯되었다가 이제 철학은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 남게 되었지만, 사실 철학은 여전히 모든 종류의 학문에 필요한 활동이다. 그런 까닭에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들이 철학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법을 안내해주는 것은 퍽 바람직한 활동이다.
물론 대학의 한 학과로 철학이라는 학문이 남아 있을 필요는 있지만, 그 수가 굳이 많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니까 나는 철학과의 ‘폐과’를 그다지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폐과’ 혹은 ‘학과 통폐합’이 일정 정도 일어나더라도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없어질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철학’을 전공한 학생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을 수는 있어도,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든 사람들은 철학적 사유와 철학적 이해를 요구하며 그로부터 큰 만족을 얻는다. 그러니까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은 결코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철학이라는 사유 활동은 인간의 오랜 역사 속 지성적 탐구를 대표하는 활동이다.
나는 철학 연구자라면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철학 연구를 이어가는 것이 핵심이라 생각한다. 내가 행정 업무를 하면서도 혹은 과학관 연구원 업무를 하면서도 철학 연구를 계속 이어왔듯, 앞으로도 계속 철학 연구를 이어갈 것이다. 교양학부 소속이든 철학과 소속이든 다른 그 어떤 조직 소속이든 그건 나에게 크게 상관이 없다. 지금 내가 행하는 철학 연구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며 그것이 곧 나의 역사이다. 나는 ‘무엇인가 더 나은 상황을 위해 준비하고 연습한다’라는 생각은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준비나 연습은 없다. 모든 것이 결정이고 실행이다. 심지어 준비와 연습조차도 그러하다. 그것 역시 일종의 실천이다.
나는 철학 연구자로서 하나의 일관된 길을 가기로 했다. 그것은 20세기 전반기 과학철학의 역사와 철학, 특히 논리경험주의 과학철학을 중심에 두고 철학을 연구하는 길이다. 국립대학교의 철학 전공 교수가 된 것은 이 길을 걸어가기 위한 매우 좋은 여건을 갖게 된 것이 분명하다. 외부로부터 예산 지원을 받기 위해서 나의 관심 분야와는 다른 분야에 대해 억지스럽게 연구하는 경우는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추가로 돈을 받지 않더라도 나의 고유한 연구 분야에만 집중할 것이다. 교수로서 얻는 기본적인 급여만으로 내겐 충분할 따름이므로, 나에게는 퇴임하기 전까지 논리경험주의 분야에서 확고한 연구 실적을 남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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