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에서 자연철학으로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생존을 위한 임무와 노동을 피할 수 없다. 내가 학교라는 조직에 속해 있을 때 나는 학교에서 내게 요구하는 임무인 공부를 수행했다. 군대에서 나는 통신소대장과 본부중대장이라는 내게 주어진 직책에 맞게 업무를 수행했다. 대학원에서는 수업에 참여하고 보고서를 제출했고 학위논문을 제출했다. 취업을 한 이후에는 내게 주어진 업무인 ‘한국 대학생 지식멘토링’ 사업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다. 나는 내가 나의 임무와 노동을 통해 사회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나는 노동자다.
나는 대학원 박사과정 1학기를 마치고 휴학하여 취직을 했다. 위기에 빠진 나의 가정을 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 필사적으로 취직 준비를 했다. 취직을 한 후 3년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누나는 초등학교에 정식으로 임용되었고, 나의 소개로 남편을 만나 결혼하여 남자아이 하나를 낳았다. 이 아이는 우리 부모님과 누나, 매형에게 큰 행복을 주고 있다. 나 역시 결혼을 했다. 지금 나의 아내는 국립대구과학관에 취직하여 열심히 생활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가끔씩 생각한다. 내게 나의 가족을 지켜야 하는 의무, 결혼을 하여 가정을 꾸려야 하는 의무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아마도 나는 계속 대학원에 남아서 철학을 공부했을 것이다. 물론 가난한 대학원생으로서 고질적인 생활고에 시달렸겠지만, 조교를 하거나 과외교사로 활동하거나 강의를 하거나 논문이나 책을 번역하면서 삶을 영위했을 것이다. 나에게 가장 절망적인 것은 내 삶의 바람이 내 주변 사람들의 바람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 절망을 내 삶이 감내해야 하는 하나의 운명으로 생각했다.
이제 내 나이 서른 세 살이다. 그간 갖가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올해 가을학기를 잘 버티어 내면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데 필요한 필수 학점을 모두 이수하게 된다. 서른 네 살에는 논문제출자격시험 2개(과학철학, 서양철학)를 통과하는 것이 목표이며, 나이 마흔 살이 될 때까지 박사학위를 얻는 것이 목표다. 라이헨바흐의 철학을 연구 주제로 삼아 박사학위를 받고자 하는 나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읽은 저자들 중에서 라이헨바흐만큼 나를 만족스럽게 하고 나의 존경심을 불러일으킨 저자를 찾을 수 없었다.
직장인이 된 지금 더 좋아진 점도 있다. 이른바 ‘학계의 유행’을 따라야 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이 원하는 책과 논문을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물론 아직 한 학기를 더 수강해야 하기는 하지만, 다음 학기가 끝나면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글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걸림돌은 있다. 아무리 자유롭게 연구한다고 해도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통과해야만 박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걸림돌을 오히려 디딤돌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라이헨바흐의 철학에 관한 세계적인 수준의 식견을 갖추게 된다면, 우리나라의 학계에서도 내 연구의 가치를 알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과학철학’을 연구하기보다는 ‘자연철학’을 연구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물론 둘 다 비슷한 표현이긴 하지만, ‘과학철학’은 인간이 만들어 낸 ‘과학’이라는 학문을 그 대상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한 반면, ‘자연철학’은 생물체를 포함하는 이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뿐만 아니라, ‘과학철학’이 서양의 자연과학만을 국한하는 표현이라면, ‘자연철학’은 서양뿐만 아니라 동양의 자연관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또한 철학의 세부적인 논의에만 치중하기보다는, 자연과학의 여러 성과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하면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철학을 연구하고자 하는 바람도 ‘자연철학’이라는 개념 속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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