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2014년 여름휴가

강형구 2014. 8. 10. 19:59

   2014531일에 나는 은혜와 결혼을 했다. 혼인신고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611일에 했다. 결혼을 하고 처음 맞는 여름휴가였다. 처음에는 우리 둘이서 여름휴가 일정을 맞추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은혜의 선임이 나의 휴가와 같은 시기에 휴가를 쓰는 바람에 은혜는 휴가를 쓰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출장 때문에 원래 계획했던 휴가를 그 다음 주로 미루게 되고, 은혜 역시 그 다음 주에 2일을 쉴 수 있게 되면서 서로의 일정이 들어맞았다. 나는 81일 금요일에 경상남도로 출장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대구역에서 은혜를 만나 서울로 올라왔다. 우리의 2014년 여름휴가는 82일 토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뒤늦게 서로의 휴가 일정이 들어맞았기 때문에 우리는 비교적 급하게 휴가 계획을 세웠다. 처음 계획은 휴가를 일찍 시작하는 내가 은혜가 있는 대구 현풍으로 내려가 은혜와 같이 쉬다가, 대구에 있는 영화관이나 놀이공원에 방문할 생각이었다. 휴가 일정이 그렇게 길지 않았고 올해 우리는 신혼여행으로 프랑스에 다녀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굳이 멀리 가지 않고 서울에서 쉬면서 문화생활을 즐기기로 했다. 은혜가 먼저 호텔 패키지를 제안했고, 나는 인터넷에서 호텔 패키지 상품들을 찾아보았다. 점심 때 한강유람선을 타면서 식사를 하고, 63빌딩의 빅3(씨월드 관람, 아이맥스 영화관 관람, 스카이아트 전시 관람)을 관람하고, 여의도에 있는 렉싱턴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다음날 여의도 한강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았다. 두 사람에 26만원의 비용이 들어, 가격도 저렴하다고 생각되었다.

 

   호텔 패키지는 일요일부터 시작했기 때문에, 82일인 토요일에 은혜와 나는 휴가 준비도 하고 문화 생활도 누리기로 했다. 우리는 우선 명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영화관에 가서 그 주 수요일에 개봉한 김한민 감독의 영화 명량: 회오리바다를 보았다. 사실 나는 개봉한 다음 날인 목요일 밤에 서울대입구역에 있는 에그옐로우 롯데시네마에서 이미 이 영화를 본 바 있었으나, 은혜도 이 영화를 꼭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함께 한 번 더 보았다. 예상했던 것처럼 은혜는 영화를 매우 재미있게 보았다. 평소에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은혜는 나와 함께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 명량을 보면서 은혜는 한 번도 졸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은혜가 평소에 가보고 싶어 했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 갔다. 독특한 디자인에 규모가 굉장히 큰 건물이었기에 가히 관광 명소라고 할만 했다. 디자인 플라자에는 관광객들도 많았고 이것저것 다양한 전시를 하고 있었으나, 우리는 그저 디자인 플라자를 전체적으로 한 번 쭉 둘러보는 것에 만족했다. 디자인 플라자를 한 번 둘러본 다음 우리는 근처에 있던 밀리오레에 가서 수영복을 샀다. 나는 무난한 야외 수영복을 골랐고, 곧 실내 수영장에서 수영을 할 예정인 은혜는 무난한 실내 수영복 한 벌과 물안경을 하나 샀다. 지하에 있는 롯데리아에서 감자튀김과 팥빙수를 먹은 다음, 우리는 저녁 공연을 보기 위해 합정역으로 갔다.

 

   저녁 때 우리가 볼 공연은 서울재즈원더랜드 2014’였다. ‘재즈다(JAZZDA)’라는 한 재즈 클럽에서 진행되는 공연이었다. 공연 전에 근처의 한식당에 가서 저녁식사를 한 후, 생각보다는 공간이 좁은 재즈다에 들어갔다. 공연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전반부에서는 재즈 및 당일 공연 주제에 대한 간단한 강연이 진행되었다. 이 공연에는 도올 김용옥 선생도 참여해서 은혜와 나는 매우 놀랐다. 짐작컨대 공연을 주관한 전진용씨와 김용옥 선생 사이에 오랜 친분 관계가 있는 듯 했다. 김용옥 선생은 공연 시작 전과 후에 간단한 인사말과 마무리 인사도 하셨다. 후반부에는 10명 이상의 연주자들이 모여서 합주하는 빅밴드 공연이 이어졌는데, 이날의 공연 주제는 유명한 재즈연주가였던 카운트 베이시였다. 기본적인 주제를 연주자들이 모두 유지하면서, 한 사람씩 자유롭게 변주하는 재즈의 자유로움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조촐하지만 열정이 살아 있는 무대였기 때문에 은혜와 나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82일이 지나갔다.

 

   83일부터 호텔 패키지가 시작되었다. 휴가가 시작하기 직전부터 태풍이 북상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은혜와 나는 태풍 때문에 호텔 패키지 일정이 전체적으로 틀어질까봐 사뭇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우리는 여의도 역에서 내려 IFC(국제금융센터)에 들렀다. IFC에 있는 영풍문고에서 은혜의 토익 단어집을 한 권 산 다음, 우리는 여의도 유람선 선착장까지 걸어갔다. 다행히도 유람선을 타는 시간 동안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우리는 유람선에서 뷔페를 즐기며 느긋하게 한강 풍경을 관람했다. 은혜와 나 모두 처음 타보는 한강 유람선이었다. 은혜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결혼도 하지 못했을 것이고, 프랑스에도 가보지 못했을 것이며, 한강 유람선도 타보지 못했을 것이다.

 

   유람선 관람이 끝나고 우리는 63빌딩으로 갔다. 우리는 가장 먼저 아이맥스 영화관에 갔는데, 아무래도 여름이라서 그런지 영화관에서는 더위를 식힐 수 있는 시원한 주제의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남극 근처의 한 섬에서 무리지어 살고 있는 펭귄들의 이야기였다. 은혜는 식사 후 피곤하고 졸렸는지 깜박 잠이 들었지만, 나는 졸지 않고 영상을 흥미롭게 보았다. 수많은 펭귄들 사이에서 자신의 짝과 새끼를 목소리 하나만으로 찾아내는 것이 신기했다. 수컷과 암컷이 동등하게 분업해서 새끼를 키우고, 자신의 위에 있는 먹이를 게워내어 새끼를 먹이는 모습도 흥미로웠다. 아이맥스 영화관을 관람한 다음에는 씨월드를 관람했는데, 사람들이 많고 다소 피곤하기도 해서 금방 훑어보고 나왔다.

 

   렉싱턴 호텔은 좀 오래되긴 했어도 아담하고 깔끔한 호텔이었다. 은혜와 나는 호텔에서 저녁 시간까지 잠시 쉬었다가, 여의도의 맛집인 서래통에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은혜가 삼겹살을 먹고 싶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었는데, 기대에 맞게 매우 맛있는 모듬 삼겹살 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삼겹살을 먹으면서 은혜와 막걸리 한 병을 마셨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제법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63빌딩으로 가서 스카이아트 전시를 관람했다. 비 때문에 습기가 차서 야경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괜찮은 작품들이 많았다. 스카이아트 전시 관람을 끝으로 63빌딩의 빅3 관람이 모두 끝났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렉싱턴 호텔로 돌아왔다.

 

   84일 월요일 아침에는 렉싱턴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 뷔페를 이용했다. 식사 후 호텔에서 조금 쉬다가 은혜와 나는 봉천동에 있는 우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북상하는 태풍 때문에 여의도 한강 수영장은 이용하지 못했다. 집에서 점심 식사를 한 후에 우리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는데, 도서관에서 대학원 선배와 후배를 우연히 만나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선배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데, 과학철학으로 유명한 장하석 교수님의 지도 아래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후배는 이번에 석사학위를 끝내고 과정 박사과정으로 입학할 예정이라고 했다. 은혜와 나는 도서관에서 오후 5시 정도까지 머무르다가, 서울대입구역까지 산책 삼아 걸어갔다. 우리는 서울대입구역 에그옐로우에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 애슐리에서 푸짐한 저녁을 먹은 다음,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집에서 김한민 감독의 최종병기 활을 보려고 했으나, 은혜는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잠들었다.

 

   어느덧 휴가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85일에는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는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지난번에 은혜와 함께 왔을 때 ‘20세기의 위대한 화가들전시를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 우리는 퓰리처상 사진전을 관람했다. 세계 속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사건의 현장들이 정지된 사진들 속에 담겨져 있었다. 부담 없이 사진전을 관람한 우리는 예술의 전당 내에 있는 카페테리아에 가서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해결하고, 남부터미널 근처의 스타벅스에 가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셨다.

 

   은혜는 오후 210분에 현풍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떠났다. 아내인 은혜와 헤어질 때마다 가슴 한 편이 허전해지고 아픔이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앞으로의 운명을 꿋꿋하게 함께할 것이다. 나는 나의 아내를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 은혜는 내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지켜야 할 나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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