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문화적 전통에 편입하기

강형구 2014. 7. 27. 21:51

   예전에 나의 아버지께서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시면서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흔드시며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너도 나이가 들면 트로트가 좋아지게 될 거다.” 하지만 아버지의 예언은 실현되지 않았다. 나는 30대인 지금도 여전히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즐겨듣던 김현철과 이소라, 조규찬의 노래를 좋아하고, 대학 시절 자주 듣던 넬이나 클래지콰이, 이한철의 노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민중가요나 김광석의 노래는 나보다 전 세대의 선배들이 즐겨 듣고 불렀다. 오히려 나에게는 영국 그룹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이 들려줬던 우울하고 몽환적인 가락이 익숙하다.

 

   나의 경우 오래 전부터 익숙해진 음악적 감수성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물론 나는 대학 입학 후 주변에서 음악적 감수성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변화시키는 친구들을 종종 보았다. 사회 운동에 헌신한 몇몇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민중가요를 익숙하게 불렀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일을 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파악한 것처럼 보였다. 어떤 친구는 입학 후 초기에 잠시 방황하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고등고시를 준비해 합격했고, 이후 우리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엘리트의 길을 걸어갔다.

 

   나에게는 진보냐 보수냐가 중요하기보다는 자유롭고 소박하게 사는 삶, 그러면서도 본인이 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는 삶이 중요했다. 내게는 적극적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기보다는 일반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분별력을 갖고 꼬박꼬박 투표권을 행사하는 게 중요했고, 의식주에 대해 크게 욕심을 부리지 않으며 검소하게 사는 게 중요했으며, 자연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게 알아보는 것이 중요했다. 나 개인의 야망과 욕망을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했다. 내가 우리나라의 역사 속에서 선망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이름 있는 왕이나 장군이 아니라 불도를 구했던 승려나 유학을 연구했던 선비였다.

 

   나는 내가 서양철학의 전통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체성에는 물질적인 근거도 있다. 나는 인문대학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해서 문학사 학위를 받았으며, 자연과학대학에서 과학철학을 전공해서 이학석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동양인이라는 것, 동양인 중에서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한국인으로서 서양철학의 전통에 속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을까?

 

   과학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이었던 내게 하나의 문제이자 도전으로 다가왔던 것은, 자연을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경로였던 서양의 자연과학을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었다. 내게 그러한 깊이 있는 이해는 학생들끼리의 경쟁적인 상황에서 연습문제를 더 잘 푸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러한 이해가 폭넓은 배경지식을 전제로 한 통찰력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서술로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깊이 있는 소설 한 권이 삶에 대한 통찰을 주고 감동을 주는 것처럼, 나는 자연에 대한 서술도 그와 같은 감동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다.

 

   내가 원했던 삶은 자연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글로 쓰고 말로 표현하는 삶이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것 말고 다른 삶을 바란 적이 없다. 내게는 정치적인 야심이 없었고, 돈을 많이 벌고 싶지도 않았고, 학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서양 철학의 역사에서 생계를 위한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었던 철학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내게 일종의 위안이 되었다. 자연에 대한 사랑, 자연을 이해하고자 하는 바람만으로 사회적인 생존을 유지하기 어려운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학원을 휴학하고 취직을 준비할 때 나는 7급 공무원 시험과 공공기관 입사 준비를 병행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자본주의가 점점 더 고도화되는 사회에서 기업의 이익을 위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등고시라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싶지도 않았다. 철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었던 내게 어떤 조직에 소속되는지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시민을 위한 일을 하는 기관이라면, 그중에서도 교육과 복지에 관련된 기관이라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근로복지공단과 장애인고용공단에서 봤던 최종 면접을 기억한다. 공공기관 면접을 먼저 봤던 것에는 큰 이유가 없었다. 7급 공무원 시험보다 더 이른 시기에 직원을 모집했기 때문이었다.

 

   생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그 직업을 소중하게 여김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유지하고 이 활동을 더욱 귀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나는 서양 자연철학 연구 전통의 계승자이다. 이 전통은 고대 그리스로부터 유래한 아주 오랜 전통으로서, 인종 및 혈통과 상관없이 인간으로서의 이성적인 이해 능력과 본인의 의지만 있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통이다. 소크라테스의 진정한 아들은 그의 혈육이 아니라 플라톤이었고, 아랍에 전해졌던 그리스 자연철학의 전통을 이민족이었던 게르만인들이 계승했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이는 서양의 자연철학 전통을 한국인인 나 역시 이을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자연철학 전통을 한국에 이식하여 뿌리내리게 하는 것, 그것이 내가 나 스스로 내게 부여한 역할이다. 아주 오래 전 중국에서 불교와 유교를 배워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든 선조들이 있었던 것처럼, 나 역시 서양에서 자연과학을 배워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물론 이러한 전통에 편입하는 나의 바람은 거창하기보다는 소박한 편이다. 나는 독창적인 사상가가 되기보다는 충실하고 성실한 번역자이자 교사가 되고 싶다. 자연에 대한 새롭고 독창적인 이론보다는 진한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4년 여름휴가  (0) 2014.08.10
예술의 기능  (0) 2014.08.07
호기심을 가진 일반 시민  (0) 2014.07.20
33살 아저씨  (0) 2014.07.13
파리 여행기  (0) 2014.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