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기능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이, 더욱이 나이 어린 여성들보다는 나이 많은 여성들이 아주 잘 아는 사실이 있다. 세상과 삶이란,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지고 그럴싸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사랑이라는 것도, 명예라는 것도, 신념과 의지라는 것도 다 세상을 많이 경험하지 못한 것에서 우러나는 법, 시간이 지나면 삶이라는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단조롭고 덜 정의로운 것이며 그저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네들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그 정열을 그 누구보다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많은 진정한 것들은 그런 환상과 열정 속에서 새롭게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정말 평범했던 사랑을 너무나 아름답고 그럴듯하게 꾸며 새로 자라나는 아름다운 딸에게 멋들어지게 들려주는 한 늙은 어미의 마음을? 어미는 딸이 자신의 거짓을 믿고 더 아름답게 자라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 딸이 자라는 것을 보며 자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고정된 진실이란 없기 때문이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고지식하고 차가운 진실 따위란 삶에 전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을 활기차게 만들어주는 환상을 주조하는 것, 지겹고 힘든 이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다시 사람들에게 목표와 활력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의 기능임을 사려 깊은 많은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예술가들은 자신이 진정한 예술가로 태어나기 위해서 끊임없이 물어야만 했다. “과연 나는 인간 앞에 무슨 환상을 선사하려는가? 과연 새로운 인간이 자라나는 데에 나와 나의 예술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는가? 혹시 나는 나의 인간적인 결점을 숨기고 포장하려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전혀 건강하지 못하고 병적인 삶을 미화시켜 수많은 사람들을 유혹하려는 것이 아닌가?” 이런 자기 반성의 깊이가 진하게 배어 있는 예술 작품들 속에는 한결같이 인간에 대한 연민의 느낌이 담겨 있다. 오래도록 살아온 이가 한창의 젊은이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짓는 미소 속에 담긴, 그런 종류의 연민이다. 그런 까닭에 늘 현명한 예술가들은 자신 안에 젊음과 늙음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현실에 빚어내는 환상의 살결 하나하나에 인간의 미래를 새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환상 없이는 인간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왔다. 이제 우리에게 현실과 진실은 더 이상 예전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이 인간이 고안한 매개물을 타고 그 형식 속에서 재현되고 있다. 원래 사건의 복제물들이 생산되고, 전파되고, 다시 그 사건들의 효과가 새로운 사건들을 만들어낸다. 새로운 사건들은 그 사건들이 복제되고, 전파되고, 일정한 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전제 속에서 새롭게 발생한다. 이제 인간은 모든 현상을 담론화시킬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하고 있다. 수많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명멸하고 있다. 그 사건들의 연쇄 속에서 이전까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왔던 자아상이 변형되고, 우리의 과거마저도 변형되어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우리의 의식에 침범해오는 새로운 사건들을 더 이상 우리는 거부할 수 없고,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환상에의 욕망 또한 더 이상 우리는 거부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의식을 어떤 사건들로 채워야 하는가?” 이것이 21세기의 정보화된 인류가 당면한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과 명예의 개념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전사로 양성시킬 수 없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고정불변하는 진리의 개념을 가지고 젊은이들을 학자가 되게끔 유혹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자본과 권력만이 새로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의 목표가 되게끔 내버려둘 수는 없는 일이다. 전투적으로 환상을 생성할 것, 그 환상을 생성할 수 있는 물질적 배경을 항상 염두해 둘 것, 그렇게 생성된 환상이 미래의 세대들을 이끌어 갈 이정표가 될 것을 굳게 믿을 것, 환상이 생성되고 상연되는 장을 결코 적으로부터 잠식당하지 않을 것. 이러한 지침들 속에서 이 시대의 철학자와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재해석하고 이 현실 또한 거듭해서 해석해내고 있다. 기계에서 찍혀나오는 자신들의 역사를 거부하고 새로운 역사를 쓸 것, 그렇게 쓰여진 역사를 널리 전파해서 새로운 효과를 일으킬 것. 정보의 유통은 이제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사항이 되었다. 생명체가 끊임없이 음식물을 흡수하고 소화하여 배출하듯, 이제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흡수하고 소화한 다음 배출해내고 있다.
나는 우리 시대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하고 싶다. 예술가들이여, 부디 그대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이 어떤 기능을 할지, 어떤 효과를 미칠지를 조금만 더 숙고한 후 작품을 만들기를! 예술과 환상을 왜 인류가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그런 인류가 진정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예술과 환상을 필요로 하는지를 그대들이 정말 진지하게 생각할 수만 있다면! 이 거창한 질문들에 대한 답은 없다네! 다만 그대들의 고민의 깊이 만이 그대들의 작품 속에 담겨질 것이니!
'일상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학철학에서 자연철학으로 (0) | 2014.08.23 |
---|---|
2014년 여름휴가 (0) | 2014.08.10 |
문화적 전통에 편입하기 (0) | 2014.07.27 |
호기심을 가진 일반 시민 (0) | 2014.07.20 |
33살 아저씨 (0) | 2014.07.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