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 9

남은 반평생을 준비함

나는 이 세상,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지구 위에서 살아가는 그 누구도 매우 치열하게 살아간다고 믿는다. 실로 그럴 수밖에 없다. 삶은 매일 전쟁이고 전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행동해야 한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나 역시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애썼다. 나는 요즘 나를 이러한 비유를 들어 생각한다. 일반 병사로 입대해 전쟁 통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겨우 살아 남아 중위나 대위 정도로 진급한 군인. 살아남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공을 세우기는 했지만 아주 빛나는 무공을 세운 것은 아니었기에, 현재 대위이며 소령 진급을 바라보고 있는 상황? 과연 장군까지 진급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그래도 중령이나 대령까지 군 생활을 해도 군인으로서 실패하지는 않은 것 아닐까?    나는 10년..

일상 이야기 2024.09.29

성실하되 너무 열심히 하지 않기

아내는 종종 ‘내 손이 느리다’라며 핀잔을 준다. 이건 맞는 이야기다. 아내는 나보다 일 처리가 훨씬 빠르다. 내가 뭘 하고 있으면 답답하다면서 자기가 해 준다. 그러면 나는 머쓱하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이와 유사한 상황이 나에게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일을 빨리 처리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나는 좀 느린 편이라서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를 좀 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나는 아주 성실하긴 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어난 이후부터 계속 꾸준하게 내가 할 일을 한다. 나에게는 성실함이 최대의 무기였다. 공부할 때도 나는 그냥 성실하게만 했다. 내가 딱히 다른 친구들보다 머리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성실..

일상 이야기 2024.09.26

생활하는 철학자

철학사를 보면 역사에 남은 철학자 중에서는 집이 부유해서 생계를 걱정하지 않았던 철학자가 많다. 그러나 나는 전혀 그런 유형의 철학자가 아니다. 우리 집은 1990년대까지는 제법 벌이가 괜찮은 의류 도매상인의 집안이었지만, 1997년의 대규모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집안의 가세는 계속 기울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도 해외 연수를 가지 않았고 극도로 절약하는 삶을 살았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이라 사립대학에 비해 등록금이 저렴했다. 나는 대부분 학교에서 제일 저렴한 밥을 사 먹었고, 커피는 대개 자판기에서 뽑아 마셨다. 남들이 궁상을 떤다고 비판해도 상관없었다. 그게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육군 장교는 군 복무도 하고 돈도 벌자는 내 나름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복학 후 대학원에 다니..

일상 이야기 2024.09.22

과학을 성찰하는 시간

나는 종종 내가 왜 과학철학을 하게 되었는지를 잊지 않으려 애쓴다. 학생 시절 나는 수학과 물리학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수학을 언어로 삼은 물리학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믿을 만한 설명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학교에서 혹은 학원에서 수학과 물리학의 문제를 푸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했고, 이와 관련한 더 풍부한 이야기를 듣고 생각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찾은 것이 수학사, 물리학사에 관한 책이었다. 그렇게 역사를 읽다 보니 사상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처음부터 ‘철학’이라는 학문에 입문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제 ‘과학철학’이라는 전문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어버렸다. ‘과학철학’이라는 철학의 한 분야가 있고, 이 분야에 관련한 교과서적인 책들 또..

교수로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함

만약 내가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국립대구과학관에서 선임연구원으로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올해 3월부터 대학교수가 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삶을 시작했고, 어느덧 두 번째 학기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내가 대학교수가 된 것 역시도 비교적 합리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나의 역량에 적합한 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내가 철학과가 아닌 교양학부에서 가르치게 된 것, 국내에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국립대학교인 국립목포대학교에서 일하게 된 것에 감사한다. 내가 목포대학교에 부임한 이상, 목포대학교의 교양교육 운영과 과학철학 교육을 위해 긍정적으로 공헌하는 것이 ..

삶을 단순화하기

나는 평소에 아침 일찍 일어난다. 부지런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남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일 일찍 일어나서 무엇인가를 계속 해 나간다. 가족과 함께 있을 때는 집안일을 하고, 나 혼자 있을 때는 대부분 학교 연구실에 간다. 연구실에 있으면 가끔 쉬기도 하지만 그 공간에 있다는 것 자체가 계속 무엇인가를 하게 만든다. 수업을 준비하고, 책을 읽고, 논문을 읽는다. 그렇게 나는 나라는 사회적 존재가 해야 하는 일을 끊임없이 한다. 그렇게 계속 일을 해야 마음이 편해진다.    이번 학기에는 수업이 많다. 지난 학기보다 5학점이나 수업을 더 많이 한다(14학점, 6과목). 그래서 아직은 수업 준비로 바쁘다. 이번 주만 지나면 좀 더 적응되어 있을 것이라 예상한다. 번역도 꾸준히 해야 한다. ..

일상 이야기 2024.09.11

돌이킬 수 없는 현재의 연속

나는 2024년 2학기에 총 6개의 수업 중 ‘철학’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업을 2개 진행한다. ‘과학철학의 이해’, ‘현대철학’이 그것이다. 감개무량한 일이다. 20년 전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는 평범한 한 명의 학생일 뿐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대학에서 철학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다. 그 20년 동안 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모든 게 명확하지 않았고 불안했던 나의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본다. 그 시절에 비한다면 지금의 나의 형편은 훨씬 나아진 편이리라. 나는 그에 대해 감사 또 감사한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얻은 하나의 결론이 있다. 나의 삶은 오직 나만의 삶인 것이지 다른 사람의 삶이 아니며, 현재 내가 경험하는 이 순간은 지나고 나면 결코 다시 ..

철학자로서 살아가기

나는 초등학생 시절부터 삼국지를 읽으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이문열씨가 편역한 10권짜리 삼국지를 거듭 읽었고, 일본 코에이(Koei)사에서 출시된 삼국지 게임도 거의 빼놓지 않고 즐겼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많이 아쉽긴 하다.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흥미로운 사건들이 많았을 테고, 그걸 재밌는 소설로 썼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왜 한국인인 내가 중국의 역사에 열광했고, 왜 그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만든 일본의 게임을 즐겼을까? 지금이라도 우리의 역사를 단서로 해서 멋진 소설과 게임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이제 우리나라의 작가들도 충분히 뛰어난 역사 소설을 쓸 수 있고 우리나라의 게임 개발자들도 세계적으로 뒤지지 않는 수준 높은 게임을 만들 수 있지 않나?    어쨌든, 나는 삼국지 속에 등장하는 인물 중 ..

일상 이야기 2024.09.04

인문학 연구자의 생존력

비록 나는 최종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립대학교 교수라는 좋은 직장을 얻게 되었지만, 내가 겪었던 인문학 전공자로서의 어려움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대학 시절, 내 주변에 인문학을 전공하던 사람들은 취직 걱정을 참으로 많이 했다. 이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서울대학교의 인문학 전공자라서 더 걱정스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너무 고학력인 사람이 인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채용하는 관점에서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석사를 끝내고 박사 과정을 휴학한 후 취직을 준비할 때는 상황이 더 안 좋았다. 육군 장교로 군 복무를 한 데다가 석사까지 마쳤으니 다른 취업준비생들보다 나이가 많았고, 석사 과정에서 공부한 과학사 및 과학철학은 (이 분야로 직장을 잡지 않는 이상) 취업 시장에서는 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