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어 노동의 관점에서 나라는 인간 개체를 바라본다.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공동체에서 매일 일종의 언어 노동을 하면서 삶을 영위한다. 언어 노동 현상은 우리 사회 안에서 매우 다채롭게 펼쳐지고, 나는 하나의 개체이자 행위자로서 말하고 글을 씀으로써 거대한 언어 노동의 흐름 속에 편입된다. 인간이 하던 상당한 분량의 육체적 노동이 기계와 에너지에 의해서 대체되었던 일과 유사하게, 상당한 분량의 언어 노동이 비교적 빠른 속도로 인간이 아닌 기계(인공지능)에 의해서 대체되고 있다. 하지만 나의 주된 노동은 여전히 언어 노동이다. 주로 두뇌와 음성 기관을 활용하여 수행되는 언어 노동의 종사자.
철학자는 단순한 언어 노동 종사자가 아니며 그에게는 뭔가 특별한 구석이 있는가? 나는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철학자 또한 언어 노동 종사자일 따름이다. 그리고 ‘철학자’라는 집합 혹은 범주를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전에 다양한 준비를 하는 성인들(대학생들)에게 과학의 역사, 과학의 철학, 논리학, 인공지능 윤리학을 교양 수준에서 가르치는 언어 노동을 한다. 철학이라는 용어의 의미와 용도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나의 대학원 공식 전공은 ‘과학사 및 과학철학’이다. 게다가 나는 문학박사가 아니라 이학박사다. 나라는 사람의 전공만 봐도 철학 개념이 계속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교수는 일종의 전문화된 언어 노동 종사자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쓸모를 바라면서 교수라는 언어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어떤 누군가가 ‘교수의 존재 가치는 사회적인 쓸모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 본다.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교수가 아니라 철학자의 존재 가치는 독립적이다.’ 그러나 철학자의 그런 독립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인가? 그 돈은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가? 일종의 사회적 활동에서 나오지 않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철학자의 존재 가치 역시 사회적 쓸모와 인정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우리 사회의 다른 누군가가 철학자를 철학자로 인정해 주지 않는다면, 철학자가 철학자라는 이름을 가질 수조차 있겠는가?
언어 노동자는 자신의 언어 노동으로 평가를 받는다. 강의 혹은 강좌라는 이름의 언어 노동이 있으며, 이 노동의 고객은 대학생들이다. 결과적으로 강의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의 감동이나 만족을 성취할 때 언어 노동은 성공한 것이다. 그것 이외의 다른 더 객관적인 기준이 있을까? 나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강의에 참여하는 학생들의 만족을 성취하지 못하면 그 방식이나 형태, 내용과 관계없이 강의라는 언어 노동은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논문 게재라는 이름의 언어 노동이 있다. 내가 볼 때 논문 게재라는 언어 노동의 성공 여부 평가는 비교적 간접적이며 상당히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
외국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면 그것이 성공한 것인가? 그건 우리 사회 공동체 누구에게 쓸모가 있고 유용한 것일까? 그 분야의 소수 전문가에게? 국내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는 것은 사소하고 덜 성공한 것일까? 대체 왜일까? 오히려 국내 학술지 논문이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더 쓸모 있을 수 있는 거 아닐까? 논문이 게재된다는 게 정말 유의미하고 가치가 있어서 게재되는 것인가? 특히 철학 분야의 경우, 어떤 연구자가 논문을 심사하느냐에 따라서 논문 게재 여부가 사뭇 달라지는데, 운 좋게 심사자를 잘 만나 논문이 게재되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그 논문의 쓸모라는 걸 믿을만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당연히 이런 질문들에 대해 나조차도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분명한 건 나는 일종의 언어 노동 종사자이고, 나는 철저히 언어 노동의 관점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며, 내게 주어진 언어 노동을 수행하려고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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