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나에게 고집불통이라 했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 특정한 사람의 과학철학만을 연구할 수 있냐는 것이다. 그 사람은 낡은 사람이다. 유행이 지난 사람이다. 그건 낡은 주제다.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최신의 주제가 아니다. 그 사람과 그 주제에 대해 논문을 쓰면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아주 많이 들으며 여기까지 왔다. 맞다. 모두 좋은 이야기고 나를 위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한다. why not? 역으로 묻자. 그렇게 철학을 하면 안 되나? 그게 죄(罪)인가? 그게 당신이 나에게 강요할 수 있는 일인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내가 그렇게 철학을 하는 게 뭐가 문제인가?
물론 내가 극도로 조심한 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되 결코 내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말자는 것. 철학을 하겠다는 아들 때문에 부모님께서 속을 썩지는 않게 하자. 부모님과 누나의 짐이 되지는 말고, 오히려 평균 이상의 성공을 거둠으로써 가족들에게 도움이 되자. 나로서는 그런 마음으로 과학철학 공부를 잠시 그만두고 취직해서 직장 생활을 한 것이었다. 나는 원했고, 구했고, 얻었다. 그런 후에 직장을 다니면서 계속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내 마음에 일종의 오기가 생겨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하는 일은 뭐든 다하면서 과학철학을 공부했다. 결혼했고, 아이를 낳아 키웠고, 직장에서 진급도 했다. 그러다 대학교수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제법 넓었고 나 같은 사람을 받아주는 곳이 어딘가에 있었다. 국립목포대학교, 너무 감사해요.
아주 열심히 살자. 해야 할 일을 그럭저럭 잘 하자. 그러기 위해서는 애초에 너무 많은 일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자! 내 경험상 다른 사람들이 하라는 연구를 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면, 앞으로 내가 죽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은 나를 계속 따뜻하게 걱정해 줄 것이다. 왜 그런 연구를 하니? 그거 말고 다른 걸 하면 어떻겠니? 그런 연구를 하면 많은 사람들이 너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을 텐데. 이제 그거 그만하고 나랑 이런 걸 연구하는 게 어떨까? 등등. 지금까지 많이 경험해 봐서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런 걱정은 실제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봐, 나는 내 할 일을 열심히 제법 잘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뭘 연구하든 제발 관심 좀 꺼줘. 조용히 좀 해.
연구하기를 두려워하는 지인들에게도 말한다. 그냥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라. 네가 보기에 내가 똑똑하냐? 그렇지 않잖아. 그래도 하고 싶은 거 계속해서 하면, 열심히 원하고 구하면, 어딘가에서 살길은 열린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정말 하고 싶으면 그걸 진짜 열심히 해 보라고. 당연히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 그런 성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정말 몇 되지 않아.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해라. 그렇게 만족의 기준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끈질기게 그 일을 하다 보면 그걸 점점 더 잘하게 되고 사람들이 조금씩 더 너를 잘 알아줄 거다.
고집이 세다는 것은 달리 생각하면 그만큼 줏대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는데 고집이 세다는 게 뭐가 문제란 말인가?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고집이 세다는 것인가? 그건 고집이 센 게 아니라 줏대가 있고 소신이 뚜렷하다는 거지. 어쩌면 당신이 소신이 별로 뚜렷하지 않은 거 아닌가? 시류에 크게 흔들리고 이리저리 왔다가 갔다가 하는 거 아닌가? 나는 그런 삶을 비난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선택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 삶을 비난하지 않는 것처럼 당신 또한 나의 삶을 비난할 수 없다.
내게는 아직 할 일이 너무 많다. 그게 내게 많은 돈을 주거나 큰 명성을 줘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나의 할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앞으로도 내 할 일 하면서 만족하며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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