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뮤지션 한로로를 알게 된 건 작년인 2025년 가을이다. 그때 나는 우리 학교의 한 학생이 한로로의 노래에 관해 쓴 음악 비평문을 피드백하면서 한로로를 알게 되었다. 좀 늦게 알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알았을 때 이미 한로로는 제법 잘 알려진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가, 이미 나는 구세대가 되어 그게 뭐든 약간 나중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나는 최근에야 한로로를 알게 되었는데, 벌써 우리 큰애가 한로로를 좋아한다. 차를 타면 한로로 음악을 틀어달라고 한다. 한로로의 노래 가사를 찾아 써서 따라 부른다.
큰애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이제 나와 아내의 시대는 지나고 너희들의 시대가 왔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산다. 누군가는 ‘영포티’를 말하고 ‘돌싱’을 말하지만, 사실 나는 그런 걸 믿지 않는다. 나는 나의 부모님이 사셨던 것처럼 살아갈 것이다. 사람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이가 좀 들면 자신이 아니라 자식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 법이다. 그게 순리다.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내 삶의 주인공은 나라고? 아니야. 아이를 낳으면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내 아이가 된다. 그 나이가 되면 내 아이가 내 삶의 주인공이 된 삶을 사는 게 자연스러운 거다. 가령, 내가 내 아들과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게 좋을까? 아버지인데 아들과 친구처럼 보일 정도로 젊어 보인다면 그건 좋은 게 아니라 일종의 ‘병’ 아닐까?
나는 이미 생물학적으로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의 절반을 살았다.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내게는 늙는 일만 남았다. 이제 나는 조금씩 부모님의 죽음을 예비하고 가끔 나의 죽음 또한 상상한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돌아가셨고, 큰애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까. 이제는 내게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옵션이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대학에서 교양을 가르치는 철학 교수가 되었으니, 나는 이 일을 열심히 하면서 남은 생을 지내면 된다. 내 일을 열심히 하는 것 말고 나의 관심은 오롯이 내 아이들이 잘 자라는 것에 있다. 아이들이 사교육에 찌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최대한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게 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우리나라의 유래 깊은 역사적 장소들을 두루 방문할 것이다.
이제 내 삶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 내 아이들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내 아이들이 어떤 학교에 가고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삶을 살게 되든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런 것들은 그냥 이름일 뿐이고 우연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전적으로 믿고 죽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게 부모로서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삶이라 믿는다. 어쩌면 이런 삶은 너무 뻔하고 진부하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게 가장 현명한 삶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모를 뿐이다. 내가 사회적으로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는 이상,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부모인 자신을 끝까지 믿고 사랑하고 기억해 주는 것은 결국 자식밖에 없다. 그게 진리다. 그러니까 평범한 인간으로서 내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전략은 자식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며 삶을 배운다. 공부를 해봐야 공부를 알고, 연애를 해봐야 연애를 안다. 결혼을 해봐야 결혼이 무엇인지 알고, 아이를 낳아봐야 부모가 무엇인지 안다. 고통을 겪어봐야 고통이 무엇인지 알고, 정말 행복해 봐야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이제야 좀 알겠다. 내가 아닌 아이들을 위해 사는 삶이 무엇이며 무엇일 수 있는지. 그게 왜 의미가 있는지. 그런데 여전히 잘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며 그게 뭔지 더 잘 알아보려 한다. 나는 죽음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아직 죽어보지 않았으니까. 분명한 건 있다. 때가 오면 죽는 것도 열심히 죽을 것이다. 열심히 죽으면서 죽음이 무엇인지 배울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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