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글쓰기에 대한 욕망

강형구 2020. 8. 17. 09:17

   사람들은 각자 자기 고유의 강한 욕망을 갖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음식에, 어떤 사람은 차에, 어떤 사람은 음악에 대해 강렬한 욕망을 갖는다. 맛있는 음식이 있다는 소문을 들으면 끝까지 그 가게에 찾아가서 음식을 맛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음악가의 음반이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 순간부터 자나 깨나 그 음반을 듣는 생각만 하며 지내다 결국 그것을 듣고 마는 사람이 있다.

 

    나는 옷에 별로 관심이 없다. 크기가 맞고 너무 추레하지만 않으면 거리낌 없이 입고 다닌다. 음식도 웬만해서는 다 잘 먹는다. 딱히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음식이 없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이나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망,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도 크지 않다. 나는 좋은 컴퓨터, 좋은 가방, 좋은 차, 좋은 공책, 좋은 필기구를 살 필요도 그다지 느끼지 못한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잘 수용하는 편이다. 조직 내에서 물 흐르듯 흘러가며 사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런데 나는 가끔씩 글을 쓰고 싶어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욕망을 느낀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든 머릿속에 떠오른 착상을 글로 표현해야 한다. 아내도 가끔씩 내가 뭔가에 홀린 듯한 상태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써 내기 전에는 이 상태가 중단되지 않는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시간을 들여 글을 쓰고 나면 일종의 평온함이 찾아온다. 물론 최종적으로 산출된 글이 완벽하게 나를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글은 나라는 인간의 어떤 중요한 부분을 표현하고 있다. 나의 일부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나의 이러한 강렬한 욕망에 비해 재능은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점이다. 즉, 내게서는 아주 높은 수준의 글이 나오지 않는다. 약간 통찰력이 있거나 살짝 멋진 글이 나오는 경우가 가끔씩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실망하지는 않는다. 일단 재능의 평범함을 받아들이면, 글이 갖춘 수준의 높고 낮음보다는 글을 씀으로써 얻는 행복과 기쁨이 더 중요해진다. 글을 읽는 것이 행복하고, 글을 읽다가 문득 글쓰기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욕망이 밀려올 때마다 글을 쓰는 것이 행복하다. 물론 좀 더 냉정하고 치밀하게, 좀 더 합리적이고 철저하게 글을 쓰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흥겨워서 자연스럽게 노래 부르는 사람처럼 꾸미지 않고 소탈하게 글 쓰는 것을 선호한다.

 

    다른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고 좋아할 수도 있고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나의 글을 싫어하며 읽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타인의 반응들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감내하고 더 나아가 지나쳐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계속 글을 써 나가는 일이다. 글 속에 담기는 나의 이야기들을 끊어지지 않게 계속 이어나가는 일이다. 나는 글쓰기의 일차적인 의미가 그것이 개인적이라는 데 있다고 믿는다.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글이란 스스로를 이해하고 표현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글쓰기에 수준 또는 객관성의 잣대를 들이밀면 뭔가 좀 부담스러워진다. 그래서 나는 추가적으로 덧붙는 글쓰기의 의미들을 없는 셈 치기보다는 부수적이고 부차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글쓰기는 계속된다. 데스크탑 컴퓨터에서 쓰고, 노트북에서 쓰며, 휴대전화에서 쓰고, 공책에 손으로 쓴다. 사람이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듯 나는 글을 써야 살 수 있다. 글쓰기는 나의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나로부터 산출되는 글의 질적 수준이 다소의 편차를 보일 수는 있지만 나의 글쓰기가 아예 중단될 수는 없다. 살다보면 좋은 일이 있을 수도 나쁜 일이 있을 수도 있다. 한없이 행복한 순간이 있을 수도 있고 한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이 있을 수도 있다. 이 모든 일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도, 내가 살아 있는 한 글쓰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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