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한스 라이헨바흐, [원자와 우주] 16: 원자 기제의 법칙

강형구 2016. 6. 5. 08:09

 

16. 원자 기제의 법칙

  

   지금까지의 일련의 고찰을 통해 우리는 물질의 원자 이론이 기초하고 있는 사실들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귀결되는 원자 구조에 대한 개념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다. 이제 우리는 원자 구조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론적 논의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러한 이론적 논의는 우리에게 원자 구조가 갖는 독특한 유형의 법칙들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여기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은 원자에 대한 양자 이론과 보어의 원자 모형이다.
  

   앞선 논의에서 우리는 이미, 원자로부터 방출된 빛이 원자들의 내부를 드러내어 주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 이 빛이 원자들 내부에서의 과정에 의해서 생성되므로, 빛은 원자의 구조에 대한 가장 믿을만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다. 즉 빛은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 원자의 내부에 대한 “통찰(insight)”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또한 빛은 다른 물리적 측정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정확하게 측정될 수 있다는 장점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빛은 정밀한 이론적 판단 역시 가능하게 해 준다. 사실상 원자 구조의 법칙에 대한 지식으로 이끈 경험들은 상당 부분 원자들로부터 방출된 빛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광학적 방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원자에 의한 빛의 방출을 떠올려야 하며, 스펙트럼  선이라는 현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자들이 빛을 방출하기 위해서는 먼저 “들떠야(excited)” 한다. 원자를 들뜨게 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문제가 되는 해당 물질을 불 속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 경우 물질은 열의 영향을 받아 증발하면서 증발하는 원자들은 빛을 방출하도록 유도된다. 모든 사람들이 경험한 바 있듯, 조리용 소금을 칼에 찍어서 가스 불에 갖다 대면 불꽃이 노란색으로 바뀐다. 이 때 생성된 빛은 나트륨 원자들로부터 방출되는 것이다. 전기 불꽃을 사용하면 좀 더 편리하다. 소금을 전기 불꽃의 탄소로 된 양 끝 사이로 가져가면, 동일한 불꽃을 다시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방법들도 있다. 만약 우리가 공기가 완전히 제거된 유리관에 수소 또는 헬륨 기체를 집어넣고 고전압(high tension)의 전류를 통과시키면, 관 안에 있는 기체가 타오를 것이다. 이상과 같은 방법들을 사용해서 유도된 방사를 물질의 특성 방사선(characteristic radiation)이라고 부른다. 특성 방사선은 열 방사선과는 구분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열 방사선은 금속을 백열광(incandescence)에 갖다 대었을 때 발생하는데, 이는 특성 방사선과는 매우 다른 본성을 갖는다. 특성 방사선은 원자 내부로부터 발생하지만, 열 방사선은 원자들과 자유 전자들 전체의 열적 운동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이기에 원자의 내부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열 방사선에는 단일한 색깔이 아니라 여러 가지 색깔들이 혼합되어 있다는 것은 이미 9장에서 살펴본 바 있다. 정확한 탐구 결과, 특성 방사선 역시도 여러 가지 색깔들이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이 경우는 아주 다른 유형의 혼합이었다. 이 혼합이 갖는 특징이 그 이후의 모든 탐구들의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이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색깔의 혼합은 분광기(spectral apparatus)의 도움으로 분리될 수 있다. 분광기에서 빛은 프리즘 또는 회절격자를 통과해서 각각의 빛은 서로 다른 각으로 굴절한다(6장의 그림 5와 비교해볼 것). 만약 우리가 태양광을 분광기에 통과시키면 우리는 잘 알려진 빛의 스펙트럼, 즉 빨강, 노랑, 초랑, 보라 등 모든 색깔들이 포함되어 있는 연속 스펙트럼을 얻는다. 열 방사선으로부터도 이와 비슷한 스펙트럼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백열등(incandescent lamp)을 분광기에 통과시켰을 경우, 빛에 포함되어 있는 색깔들이 연속적인 질서를 갖고 한 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늘어선다. 그런데 물질의 특성 방사선을 분광기로 검사하면 이와는 아주 다른 그림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날카롭게 구분된 색깔들의 계열을 볼 수 있는데, 이때 각각의 색깔들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스펙트럼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이산적”이며 서로 분리되어 있어 불연속적이다. 빛이 맨 먼저 좁은 틈새를 통과하게끔 되어 있는 분광기의 배열로 인해, 모든 색깔은 얇은 선으로 나타나며 그래서 우리는 이를 “스펙트럼 선”이라고 부른다. 이 선들은 서로 평행하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 나타나며 선들 사이는 어둡다. 연속 스펙트럼에서는 빛 사이에 어두운 영역이 없는 것과 대조적으로, 각각의 밝은 선들은 정확히 하나의 색깔만을 갖는다. 하나의 색깔을 갖는다는 것은, 물리적인 언어로 말하자면 정확하게 하나의 파장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특성 방사선 스펙트럼에서 얻어지는 색깔들은 스펙트럼선들에 대응하는 파장들로 식별될 수 있다. 이러한 파장들은 원자로부터 방출되는 파장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물질이 독특한 파장들의 결합, 즉 특성 스펙트럼을 갖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칼륨(potassium)은 두 개의 붉은 선과 하나의 보라색 선을 갖고, 수소는 붉은 선 하나와 푸른 선 하나와 두 개의 보라색 선을 갖고, 나트륨은 노란색 영역에서 얇은 선 하나를 볼 수 있는데 이를 좀 더 살펴보면 실제로는 두 개의 선이다. 실제로 좀 더 스펙트럼선들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항상 선들의 수가 늘어나고,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았던 장소에서도 스펙트럼선이 발견된다. 따라서 얇은 선들의 전체 계열이 종종 발견되었다. 이에 더해, 많은 물질들은 스펙트럼에서 띠(band)라 불리는 영역을 갖는데, 이는 얇은 선이 아니라 연속적인 색깔들이 퍼져 있는 영역이다.
  

   이와 같은 특성 방사선에 대한 지식은 화학적 기술에도 유용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왜냐하면 잘 알려지지 않은 물질의 스펙트럼을 확인하여 해당 물질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광기는 화학적 분석에서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스펙트럼에 대한 연구는 이론적인 목적을 위해서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크기가 더 크고 더 정밀한 분광기가 제작됨에 따라 가능한 최고의 해상도를 갖게 되었다. 분광기가 발전함에 따라, 가능한 한 많은 빛 선들을 구분하여 이들의 파장을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실험 물리학은 이 분야에서 자랑할 만한 눈부신 성공을 거두었다. 이제 실험 물리학은 최고의 미터 막대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정확도를 갖고 파장을 측정할 수 있게 되어, 이제는 길이의 단위를 미터가 아니라 빛 파동의 파장으로 정의하는 것이 익숙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항을 언급하는 것은, 현대의 원자 연구가 이룬 위대한 진보가 주로 스펙트럼 탐구의 정밀성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원자들로부터 형성되는 스펙트럼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H. A. 로렌츠(Lorentz)가 옛 전자 이론을 이용해서 계산한 결과, 특정한 한계 내에서 스펙트럼선에 대한 올바른 결과 값을 얻을 수 있었다. 로렌츠는 전자들이 원자 내에서 앞뒤로 흔들린다고 가정했다. 맥스웰 이론의 개념들에 따르면 이러한 흔들림은 전기 파동을 방출해야 하고,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이러한 파동은 곧 빛 파동이다. 전기 파동의 진동수는 해당 전자에 의해서 명확하게 주어진다. 이러한 개념들을 기초로 해서 스펙트럼선의 파장들을 계산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로렌츠의 계산은 상대적으로 만족스러운 결과 값을 얻을 수 있었다. 로렌츠의 이론은 소리의 이론에서와 같이 다수의 스펙트럼선들이 발생하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 우리는 진동하는 물체가 하나의 고정된 음조가 아니라 배음(overtone)을 내보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이때 배음은 원래 음조의 진동수보다 두 배, 세 배, 네 배 등과 같은 높은 진동수를 갖고 있다. 따라서 로렌츠의 빛 방출 이론에 따라 우리는 “배음” 역시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과 관측된 스펙트럼선 계열 사이에서 만족할만한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실망스러운 결과가 얻어졌다. 스펙트럼선들은 기본 진동과 높은 진동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단순한 수치적 법칙에 들어맞지 않았다.
  

   로렌츠 이론에는 아주 커다란 난점이 하나 있었다. 이 이론은 러더퍼드의 원자 모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러더퍼드 모형에서는 전자들이 원형 궤도를 돌지 진자처럼 움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형 궤도는 스펙트럼선의 날카로운 특징을 설명하지 못했다. 빛의 방출은 회전하는 전자에 의한 에너지의 손실을 의미한다. 큰 규모의 행성 운동과 연관되어 발전된 모든 이전까지의 개념들에 따르면, 이와 같은 에너지 손실에 따라 궤도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회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서 궤도의 수축이 필연적으로 동반되어야 하며(따라서 태양계의 내행성들의 경우, 외행성들에 비해서 훨씬 더 짧은 공전 주기를 갖는다), 방출되는 빛의 진동수는 점차적으로 증가될 것이다. 여러 원자들은 각각 서로 다른 내적 발전의 단계에 있을 것이기에, 우리는 불타는 물질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원자들로부터 모든 가능한 진동수(또는 파장)가 단번에 방출되며, 모든 종류의 색깔들이 연속적인 분포로 나타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러더포드 모형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날카로운 스펙트럼선의 존재는 원자 안에서 빛이 생성되는 것에 대한 로렌츠-맥스웰의 이론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상과 같은 난점들은 오래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다른 방법에 의해서 극복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방법의 시발점은 아주 우연한 발견에 의해 마련되었다. 이 발견은 바젤의 중등학교 교사였던 발머(Balmer)에 의해서 1885년 이루어졌는데, 그는 수소 스펙트럼에 대해서 연구하던 참이었다. 처음에 수소 스펙트럼은 무질서한 뒤범벅(hodgepodge)처럼 보인다. 다양한 색깔들의 파장들을 기록해보면 이 파장들은 아무런 규칙성 없이 퍼져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발머는 이러한 색깔들의 분포 뒤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이 법칙은 처음에는 수소에 대해서 입증되었고, 이후 모든 다른 원소들에 대해서도 입증되었다. 이것은 마치 암호 전보(code telegram)를 해독하는 것과 같다. 처음에 문자들은 완전히 무질서한 상태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문자들 뒤에 감추어져 있던 가장 완벽한 질서를 담고 있는 열쇠를 얻게 되면, 모든 문자들은 각기 제 자리에 있는 것으로 보이고 이전에는 비규칙적인 혼합물이라고 여겨졌던 것이 이제는 의미를 갖게 된다. 발머는 숫자들을 갖고 실험하는 단순한 방법을 사용하여 그러한 열쇠를 찾아냈다. 발머가 찾아낸 것은 놀랄만한 수학 공식으로, 이 공식에는 두 개의 변수인 m과 n이 등장하며 이 변수들에는 모든 정수들이 적용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스펙트럼선들의 질서와 정수들 사이의 연관이 수립된 것이다.
  

   이러한 법칙들을 이해하기 위해 시도하던 덴마크의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1913년에 결정적인 발걸음을 내딛었는데, 이는 현대 물리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보어는 플랑크가 제시한 작용의 기본 양자 개념을 적용하여, 그 자체에 양자적인 운율을 갖고 있는 원자 모형을 도입할 경우, 발머의 계열을 이해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암호 전보의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비록 발머가 전보를 해독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전보의 내용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쓰여 있었다. 보어는 이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해독된 언어는 원자 구조의 완전한 비밀을 드러냈다.
  

   보어는 원자에 대한 러더퍼드 모형의 외형을 유지했다. 그러나 그가 이 모형 안에서 바꾼 것은 원자를 지배하는 기제의 내적 법칙 개념이었다. 특히 그는 회전하는 전자가 모든 궤도를 회전할 수는 없다고, 즉 핵으로부터 임의의 거리에 있는 궤도를 회전할 수는 없다고 가정했다. 대신 그는 전자가 완벽하게 명확한 지름을 가진 궤도들만을 회전한다고 가정했다. 그리고 그는 가능한 궤도들의 지름을 다음과 같이 계산했다. 모든 궤적에는 전자의 특정한 에너지양이 대응한다. 이때 큰 궤도일수록 큰 에너지양과 대응한다. 왜냐하면 이에 대응하는 포텐셜 에너지-만약 전자가 원자핵으로 “떨어질” 경우 얻어지는 에너지-가 크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플랑크의 양자 가설이 도입된다. 보어는 전자의 궤도 에너지가 플랑크의 작용 양자에 대해 특정하고 명확한 관계를 갖고 있을 경우에만 허용된다고 가정했다. 이를 위해 보어는, 궤도를 특성화하며 에너지에 관계되는 양인 작용을 계산하고, 이 작용이 기본적인 작용 양자의 정수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가정했다.
  

   이제 우리는 핵 주변을 도는 궤적들의 집합을 서로 분리된 원형 고리들과 같이 생각할 수 있다. 이는 원자의 행성 체계와 우주의 행성 체계 사이에 심오한 차이가 있음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우주의 행성 체계에서는 이와 같은 제한이 없이, 행성에게 적합한 에너지를 부여하기만 하면-아마도 이 에너지는 우주 외부로부터 비롯되는 것일 텐데-중심으로부터 그 어떤 거리에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자의 행성 체계는 양자 개념을 포함하고 있는데, 여기서 볼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안정성 조건은 천문학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낯선 것이다. 미시세계와 거시세계 사이의 이와 같은 심오한 차이는 플랑크의 에너지 양자가 갖는 극도의 미소함으로부터 비롯된다. 원자 세계에서 하나의 작용 양자에 대응하여 전자 궤도의 에너지가 증가할 경우, 이는 기존 궤도에서 좀 더 멀리 떨어진 고리 궤도로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동일한 양의 에너지를 천체의 행성에 추가시키면, 기존의 행성 에너지가 막대하기 때문에 그러한 에너지 추가는 전혀 눈에 띄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의미에서 행성의 에너지는 연속적으로 변화가능하고, 따라서 실제로 연속적인 계열로 배열된 모든 지름이 행성의 궤도가 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거듭해서 만나게 될 양자 이론의 중요한 특성을 예증한다. 오직 미시적 차원에서만 눈에 띄게 불연속적인 조건들이 드러나며, 이에 반해 거시적 차원에서는 에너지 양자가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연속적인 에너지 조건이 발견된다.
  

   우리가 앞서 살펴본 원자 행성 체계에서의 궤도 개념에 덧붙여, 보어는 방사 과정과 관련한 두 번째 가정을 추가했다. 그는 전자가 궤도를 돌 때는 전자가 방사선을 전혀 방출하지 않고, 전자가 아주 다른 방식으로 방사선을 방출한다고 가정했다. 보어에 따르면 작은 행성 체계인 원자 세계에서 가끔씩 붕괴가 일어나는데, 이는 원자 차원에서의 우주적인 파국(catastrophe)이라 할 수 있다. 붕괴 시에는 밖의 궤도를 돌던 전자가 안쪽 궤도로 떨어진다. 이 때 전자는 에너지를 잃는데, 잃은 에너지는 방사의 형태로 방출된다. 궤도 이동에 따라 발생하는 자유 에너지가 하나의 단일한 빛 광자로 변환되고, 방출된 빛의 진동수는 이 빛 광자가 갖는 진동수로 조정된다. 즉, 방출되는 빛의 진동수와 관련되는 에너지 양자는 전자가 이동하기 전과 이동한 후의 궤도가 갖는 에너지 사이의 차이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보어의 이와 같은 가정은 그의 이론의 핵심 골격을 이루는데, 이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던 모든 개념들을 결정적으로 위배한다. 우선, 맥스웰의 이론에 따르면 회전하는 전자가 아무런 전기적 파동도 방출하지 않아야 한다는 가정은 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보어는 그의 이론 시작 단계에서부터 매우 의식적으로 맥스웰의 전자동역학을 위배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어떻게 방사가 원자 궤도 사이의 이동에 의해서 유발되는 것인지, 왜 이 때의 진동수가 플랑크의 개념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무엇이 전자로 하여금 궤도 간을 도약하도록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론을 수립하는 고전적인 방법론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와 같은 반론들이 필연성을 가질지는 모르나, 보어는 이러한 반론들을 일단 제쳐두었고 바로 그것이 보어의 사고방식이 가진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보어는 스펙트럼선들에서 관측되는 특정한 규칙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이와 같은 규칙성이 고전적 이론과 조화를 이룰 수 없음이 드러났기 때문에, 보어는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의식하면서 고전적인 이론을 포기했다. 연구의 시작점부터 그는 스펙트럼 연구라는 좁은 영역에 잘 들어맞는다고 증명되는 가설을 유지하고자 했고, 이 가설이 물리학의 다른 영역과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 따라서 보어와 더불어 물리학에 완전히 혁명적인 특성을 가진 사고방식이 도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연구자는 좁고 특성화된 연구 영역을 파악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일시적으로 물리학의 다른 영역과 통일시키는 것을 포기한다. 물론 이는 오직 잠정적인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곧 새로운 이론이 체계 안에서 모순이 없이 통일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리학은 그와 같은 사고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간다. 이렇게 해야지만 특정한 연구 영역이 최초로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역을 통합된 체계에로 융합하는 작업은 분명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채 이후의 세대에게 남겨진다. 분명 이는 체계적으로 계획된 과학적 작업의 발전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인간 활동의 성공에 대한, 비논리적이고 직관적이며 소박한 자신감이다. 이러한 자신감이 그러한 긍정적인 사고 태도의 바탕에 깔려 있다. 필자는 이러한 자신감을 헐뜯고자(disparagement) 하는 것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자연에 대한 현대적인 탐구의 성공을 이끈 것은 바로 이러한 방법론이었다.
  

   역사가는 이러한 혁명적인 특성을 갈릴레오의 방법론으로 돌아온 것으로 기술할 수 있음을 인지할 것이다. 갈릴레오 역시 보어와 비슷하게, 그 당시에는 얻을 수 없었던 세계에 대한 통합된 물리적 상을 무시한 채로, 단일한 영역에 대한 엄밀하고 완전한 연구를 추구했다. 우리 아버지들의 세대에 이르러 완숙한 체계로 성장한, 성숙한 물리학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이와 같은 건전한 사유 방법이 잊힐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원자 현상들에 대한 사실들에 직면하고 고전적인 과학으로는 이 사실들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되었을 때, 성숙한 물리학은 다시금 새로운 혁명을 겪어야 했다.
  

   보어와 그의 가설이 거둔 성공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어서, 물리학 세계에 종사하던 모든 사람들은 당시 영국 물리학자 러더퍼드의 조수였던 젊은 덴마크 물리학자의 저술들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이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보어는 자신의 이론을 이용하여 수소 원자의 스펙트럼 계열인 발머 계열을 계산할 수 있었다. 더 나아가 그는 다른 계열들에 대응하는 공식들을 계산하는 데 성공했고, 이러한 모든 공식들에 특정한 상수(이를 리드버그 상수라 부른다)가 포함되어 있음을 보일 수 있었다. 예전에 이 상수는 단순하며 다른 상수들과 독립적인 상수인 것으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보어의 수학 공식이 필연적으로 유도하는 바와 같이, 전자의 질량, 전자의 전하, 양성자의 무게가 특정하게 결합된 결과물로 표현될 수 있다. 헬륨 원자의 스펙트럼에 대한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통해 이 상수가 보어의 계산 결과와 약간 다른 값을 갖는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때 보어는 원자핵 주위를 회전하는 전자의 영향을 고려하고 전자 운동에 의해 원자핵 역시 약간 운동한다는 것을 고려하여 좀 더 정확한 계산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그는 좀 더 정확하게 측정된 리드버그 상수와 일치하는 값을 얻었다. 마지막으로, 한 천문학자가 수소 스펙트럼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특정한 미세 선들을 발견했고 이 선들은 보어의 공식에 들어맞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이때 보어는 이러한 선들은 수소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헬륨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계산했다. 그리고 그는 완벽하게 순수한 수소가 생산되어 헬륨의 흔적이 완전히 제거될 경우 이러한 선들이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담하게 추측했다. 그리고 보어의 이러한 예측은 실험적으로 입증되었다. 보어의 원자 모형은 물리학적 연구를 통해서 승리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발견은 항상 그것이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하며, 그것이 바로 그러한 발견의 행복한 운명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점에서 그것의 진리로서의 특성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난다. 만약 하나의 가정이 참이라면, 이 가정은 그것이 발견되었을 때의 목적만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와 관련된 모든 현상들의 근원들을 포함한다. 보어의 발견은 아주 높은 정도로 이러한 성공을 거두었다. 우리는 보어 가설의 참됨에 대한 가장 유쾌한(gratifying) 입증을 살펴보게 될 것이다.
  

   우선, 보어는 수소와 헬륨보다 더 무거운 원소들의 광학 계열- 즉, 눈에 보이는 스펙트럼선들-을 계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위해서는 작은 행성 체계에 대한 독창적인 개념들을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적이었고, 어려운 수학적 계산들에 의지해야 했다. 92개의 행성들을 포함하고 있는 체계가, 오직 8개의 행성들을 포함하고 있는 천문학적 행성 체계보다 훨씬 더 복잡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행성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상호적인 영향인 “섭동(perturbation)”을 계산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정확한 수학적 기법이 필요하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행성들이 동일한 평면 위에서 회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서 서로 기울어진 평면 위에서 궤도 운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일군의 물리학자들이 이러한 계산에 참여했는데, 계산을 거듭할수록 계산 결과가 관측된 스펙트럼선들이 훌륭하게 일치했다. 이는 매우 놀랄만한 결과였다.
  

   이와 동시에 뢴트겐 방사선 영역에서 이와 유사한 규칙성이 있는지 탐구되었다. 모든 원자는 빛뿐만 아니라 X선 역시 방출한다. 뢴트겐선을 원자에 쪼였을 때 이러한 방출이 일어나는데, 이때 원자가 들떠서 이차 방사선을 방출한다는 것은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따라서 뢴트겐 영역의 선들이 계열을 이루는 “뢴트겐 계열” 역시 존재하는데, 이 계열은 사진 건판으로 포착할 수 있으며 광학 선들과 같은 동일한 규칙성을 보여준다. 이 계열 역시 보어의 공식에 들어맞았다. 무거운 원자들에서 이 선들은 전자들이 원자핵의 인근으로 도약할 때 발생한다. 이때 전자들이 원자핵에 아주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강한 힘을 필요로 한다. 이에 따라 전자 도약은 충분한 에너지를 가지게 되어 큰 에너지를 갖고 있는 양자 광선이 방출되며, 이때 방출되는 광선은 짧은 파장을 갖는다.
  

   또 다른 단계의 연구도 이루어졌다. 원자는 비정상적인 조건들 아래에서도 연구되었으며 보어의 이론은 다시 한 번 검증되었다. 이러한 결과들 중에 대표적인 것이 제만 효과였다. 제만 효과는 예전에 이 효과를 발견한 사람인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제만(Zeeman)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효과는 원자가 빛을 방출할 때 강한 자기장이 미치는 영향과 관련되어 있다. 이를 실험하기 위해서 소금이 타오르는 불꽃 또는 전기불꽃을 커다란 말굽자석의 두 극 사이에 갖다 놓는다. 이때 모든 스펙트럼선들은 분리되는데, 하나였던 선이 둘, 셋 혹은 그 이상의 선으로 분리되는 것이다. 보어의 이론은 이 현상이 불꽃 속에서 빛나는 원자들에 대한 자기장의 영향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설명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리고 보어 이론은 아주 강력한 자기장의 경우에 발생하는 현상에 대해서도 설명을 해냈다. 이 경우 특별한 방식으로 스펙트럼선들이 분리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슈타르크 효과(독일의 물리학자 슈타르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역시 설명할 수 있었다. 이 효과는 원자가 빛을 방출할 때의 전기장의 영향을 연구하면서 발견된 효과였다.
  

   따라서 원자의 내적 구조에 대한 지식이 얻어졌다. 수학적 계산을 함에 있어 보어는 그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특별히 제시한 하나의 원리에 크게 의존했는데, 이는 이른바 대응 원리라고 불린다. 대응 원리에 따르면, 원자들이 핵으로부터 아주 먼 거리에 떨어져 있을 경우에 원자 모형은 거시 규모의 물질 이론인 거시적 이론과 점차적으로 근사해야만 한다. 이 원리는 새로운 이론들과 옛 이론들 사이의 아주 흥미로운 연결 관계를 나타낸다. 이 원리는 차원이 커질수록 예전의 개념에 연속적으로 들어맞게 되는 원자 개념만이 옳을 수 있다는 생각을 공식화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예전 개념이 거시 차원에서는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 모든 경험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이론은 필연적으로 틀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던(38쪽) 연속적 확장의 과정은 아주 다른 연관과 아주 다른 적용과 함께 대응 원리 안에서 예증된 셈이다. 이 원리는 모든 수학적 가정들에 방향을 제시할 때 지속적으로 유용하다는 사실이 단번에 드러났다.
  

   그러나 원자의 물리적 효과들에 대한 설명보다도 훨씬 더 많은 일들이 성취되었다. 원자의 화학적 속성들 역시도 보어 모형의 도움을 받아서 명료해질 수 있었다. 이와 관련된 근본적인 개념은, 화학적 결합이 원자들의 행성 체계 사이의 좀 더 포괄적인 통합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달리 안정적인 전자들의 특정한 배열이 존재한다. 이 배열은 화학적으로 비활성적인 물질들을 특징짓는다. 이에 반해, 불안정한 “껍질”은 좀 더 많은 전자들을 얻어서 형태를 변형시키고자 하는 경향을 가지기 때문에, 이는 화학적으로 활성적인 원소들을 특징짓는다. 예를 들어 수소는 양의 핵 하나와 전자 하나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자는 핵 주위를 타원 궤도를 그리며 회전한다(그림 17). 양 전하와 음 전하 사이의 균형 때문에 원자는 겉에서 보면 중성적이다. 그러나 전자는 외부의 역장에 의해서 쉽게 궤도로부터 이탈하며, 이 경우 우리는 수소 이온을 얻는다. 이는 양으로 대전된 수소 이온인데, 이는 음의 원자들과 쉽게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고 적극적으로 결합한다. 헬륨은 2개의 양 전하를 가진 핵과 두 개의 회전하는 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배열은 아주 안정적으로 여겨진다. 즉, 헬륨을 이온화시켜서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 주기율 체계에서 다음으로 등장하는 원소는 리튬인데, 리튬은 세 개의 전자들을 가진다. 이때 세 번째 전자는 동일한 껍질에 있는 나머지 두 개의 전자들과 결합하지 못함을 보일 수 있으며, 원자 내에서 이 세 번째 전자는 헬륨과 닮은 체계의 바깥에서 좀 더 큰 타원을 그리면서 회전한다. 이는 마치 혜성과도 같아서, 대부분의 시간에는 중심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가 아주 가끔씩 원자 내부 영역으로 들어온다(그림 18). 따라서 이 세 번째 전자는 밖으로 쉽게 이탈한다. 그렇게 되면 남겨진 원자에는 음 전하 하나가 부족하게 되어, 겉으로 볼 때 더 이상 전기적으로 중성이지 않으며 한 단위의 양의 전하를 가진 체계처럼 행동한다. 즉, 리튬처럼 무거운 원자도 중립적인 상태에서는 세 개의 전자들을 갖지만, 이온이 되었을 경우에는 오직 한 단위의 양의 전하만 갖게 된다. 이와 비슷하게 원소들의 계열들을 따라가다 보면 안정적인 배열을 갖는 네온을 만나게 된다. 네온이 가진 10개의 전자들은 모두 두 개의 껍질 안에 있으며, 이때 껍질은 전자 2개의 껍질과 전자 8개의 껍질로 나누어진다(그림 19). 주기율 체계 상 네온 앞에는 산소와 플루오르가 있는데, 두 번째 껍질에 산소는 6개의 전자를 갖고 플루오르는 7개의 전자를 갖는다. 산소와 플루오르는 가장 겉에 있는 껍질을 여분의 전자 하나 혹은 둘로 채워 전자 8개를 만들려고 한다. 그렇게 될 경우 음의 전하가 초과되는 셈이므로, 산소와 플루오르는 음의 이온이 된다.
  

   좀 더 무거운 원소들에서도 동일한 방식이 되풀이된다. 나트륨은 11개의 전자들을 갖고 있는데, 이들 중 10개는 안정된 네온 구조와 유사하게 배열되어 있는 반면 나머지 하나는 외부의 혜성과 같은 궤도를 돌고 있어서 궤도로부터 쉽게 이탈한다. 그래서 나트륨은 빈번하게 이온화 된 원자로 나타난다. 마그네슘, 알루미늄, 실리콘, 인, 황 등을 포함하는 이 집단에서의 “이상”적인 원소는 아르곤이다. 아르곤은 18개의 전자들을 갖고 있는데, 이 전자들은 세 개의 전자껍질에 안정적으로 통합되어 있는데, 이때 전자껍질들 중 하나는 2개의 전자로, 나머지 두 개는 8개의 전자들로 채워져 있다. 예를 들어 바깥 껍질에 오직 7개의 전자만을 갖고 있는 염소는 전자 하나를 쉽게 수용하며, 이 경우 이온화 된 음의 원자가 된다. 황은 바깥 껍질에 두 개의 전자들을 필요로 하므로, 외부로부터 두 개의 원자를 받아들여 2개의 음전하로 대전된 이온이 된다. 다른 원소들도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좀 더 나아가면 우리는 아주 복잡하게 고안된 체계들을 마주하게 된다. 현재까지도 이러한 복잡한 체계들에 대한 엄격하게 정량적인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서는 오직 근사적이고 정성적인 결과들만을 얻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주기율 체계에 있는 질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히 아주 무거운 원소들과 관련되어 있는 좀 더 복잡한 원자 구조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마지막에 있는 원소인 우라늄은 총 92개의 전자들을 통제해야 한다. 이 경우, 특히 핵 내부의 배열은 조밀하게 뒤얽혀 있어 융합을 통해서 더 무거운 물질을 생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라늄에서 원소들의 계열은 종결된다. 이보다 더 복잡한 원자 배열은 전혀 안정성을 갖지 않는다. 물론 언젠가 우라늄보다 더 무거운 물질이 발견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무거운 원자들에서 영속성은 유지되지 않는다. 이는, 우리가 앞서 살펴본 방사성에서 관측되었던 것처럼, 무거운 물질들이 붕괴되는 경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원자들의 전기적 속성들이 주어지면 원자들의 화학적 속성들 역시 주어진다. 왜냐하면 반응의 화학적 힘이란 전기적인 힘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트륨과 염소로 구성되어 있는 소금을 살펴보자. 소금의 경우 나트륨의 전자 하나가 염소에 제공되어 염소가 아르곤의 완결된 구조를 갖게 됨으로써 성립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양의 나트륨 이온과 음의 염소 이온이 생성되며, 이 두 이온이 서로를 전기적으로 끌어당겨 결합된 뒤 소금 분자가 형성된다. 특정한 환경에 놓인 단순한 분자들 내에서는 완벽한 결합(amalgamation)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때 외부에 있는 전자들은 두 원자핵 주변에 있는 단순한 껍질을 형성하는 데 단번에 참여한다. 아마도 물이 이러한 유형의 분자일 것이다. 물 분자에서는 두 개의 수소 원자가 갖고 있는 두 개의 전자가, 전자 6개가 채워져 있는 산소 원자의 외부 껍질에 참여한다. 이때 산소 원자핵과 두 개의 수소 원자핵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핵을 형성하고, 이는 마치 네온과 같은 구조를 갖게 된다. 지금껏 화학 결합에 대한 좀 더 정확한 계산은 아주 제한된 측정을 통해서만 가능해왔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실들은 이미 분명하게 드러났다. 화학적 “원자가(valence)”-화학적으로 끌어당기는 원자의 힘이며, 원자가는 이를 만족시키는 수소 원자들의 수로 측정됨-는 외부의 전자들을 받아들이는(혹은 제공하는) 능력으로 설명되는데, 안정된 층에서는 이 힘을 결여한다. 염소는 원자가 1을, 산소는 원자가 2 등을 가지며,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설명을 하지 않겠다. 두 개의 수소 원자들로 이루어진 수소 분자의 예처럼 옛 화학의 관점에서 볼 때 수수께끼였던 현상이, 이제는 수학을 사용하여 원자 체계들의 특별한 결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러한 개념들의 의의는 이 개념들이 화학적 전자가의 전기적 이론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물질의 화학적 속성들은 양자 법칙에 의존하는데, 이 법칙에 따라 전자들의 행성 궤도는 아주 명확한 운율을 갖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발전의 결과를, 화학이 물리학의 한 분과가 되었다고 공식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전에 열에 대한 역학적 이론이 등장함으로써 열역학이 물리학의 한 학문이 되었던 것처럼, 이제 보어의 원자 이론을 통해서 화학 역시 동일한 과정을 겪게 된 것이다. 물론 이는 과학적 기법에 있어서 화학이 물리학에 의해 대체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비록 전기 공학이 맥스웰의 물리적 전기동역학에 종속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율적인 학문으로 남아 있는 것처럼, 분업의 차원에서 화학은 여전히 자율적인 학문으로 남아 있다. 이는 오히려 화학의 개념적인 기초가 물리학에 바탕을 둠을 의미한다. 즉, 최종적으로 분석할 경우 화학적 과정은 물리적 과정이며, 물리적 과정의 법칙은 원자의 양자 이론을 통해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양자 이론은 거시적인 물질의 분자들을 구별하는 아주 새로운 개념들을 발전시켰다. 분자들의 열운동 또는 기체 속 원자들의 열운동 역시 보어의 양자 법칙들을 따르기 때문에, 기체 법칙들에도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 결과 얻어진 새로운 기체 법칙은 낮은 온도에서 관측된 물질의 특별한 행태를 설명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개념들에 있어서 놀라운 것은 “양자화(quantization)”인데, 양자화는 회전 운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직선 운동에도 적용된다. 물리학자들은 자연의 과정들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심오한 방식으로 양자화된 구조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점차적으로 알게 되었다. 예를 들어 금속 내에서 전도 현상을 일으키는 자유 전자들의 운동은 양자 법칙들을 따르며, 우리는 이 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론적인 이해에 도달하게 되었다. 전도 현상은 이전까지는 그 어떤 계산으로도 추적할 수 없었던 현상이었다. 이러한 방법으로 놀라운 초전도성 현상 역시 설명할 수 있었다.
  

   고체에 있는 분자들의 배열 역시도 양자 법칙들에 의해서 밝혀질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고체의 기본 형태는 결정이다. 옛 화학 이론조차도 결정의 구조에 대한 특정한 개념들을 구성한 바 있다. 그리고 물리학자들이 X선으로 수정을 통과시키는 법을 배웠을 때 이러한 개념들은 입증되었다. 결정 내에서 원자들은 일종의 격자 형태로 배열되어 있다. 이에 대한 예로 우리는 그림 20에서는 식탁 소금의 결정을 볼 수 있다.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는 것처럼 소금은 염소와 나트륨으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이뿐만 아니라 원자들이 격자와 같은 구조 안에서 어떻게 배열되었는지도 알고 있다. 각각의 원자들은 격자 귀퉁이에 번갈아가며 배열되어 있으며, 이는 그림 20에서의 희고 검은 점들에 대응한다. 사실 여기서 기술하고 있는 이 점들은 원자가 아니라 이온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귀퉁이들 사이에는 서로 다른 전하들로 인해 전기적으로 끄는 힘이 발생하며, 이러한 전기적 힘이 전체 격자 구조를 지탱한다. 그림 20에서 이러한 힘은 격자의 모서리로 표현되어 있다. 실제로는 이러한 모서리가 존재하지 않으며, 원자들은 각각의 위치에서 고립된 채로 상호간의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해당 위치를 유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끌어당김의 법칙은 보어의 양자 원리들에 들어맞는다. 이는 격자의 귀퉁이에 있는 원자들의 진동에 의해 발생하는 열운동에 대해서도 참이다. 이와 같은 결정 모형에서 분자의 개념은 그 의의를 잃어버린다. 왜냐하면 격자에서는 원자들이 서로 짝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귀퉁이가 귀퉁이 근처에 있는 다른 여섯 개의 귀퉁이들과 대칭적으로 관계를 갖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정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분자를 나타내며, 여기서의 모든 원자들은 함께 성장해나간다.
  

   식탁 소금은 상대적으로 단순한 결정 구조를 갖고 있다. 우리는 다른 물질들이 소금보다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배열을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결정 구조가 밝혀졌다. 결정들의 격자 구조를 발견하는 데에는 굉장한 창의력과 수학적 기술이 요구되었다. 라우에(Laue)는 X선을 이용해서 결정을 조명하는 법을 발견함으로써 이러한 목적을 위한 필수적인 도구를 제공했다. 결정에 X선을 비추면 특징적인 회절 현상이 나타나는데, 뢴트겐 광선과 결정 사이의 이러한 간섭 현상은 사진 건판에서의 검은 점들을 통해 인지될 수 있다. 그림 21에서 우리는 방해석(iceland spar) 결정의 뢴트겐 사진을 볼 수 있다. 이 사진에서 우리는 뢴트겐 광선이 직선으로 통과함에 따라 생긴 중앙에 있는 커다란 검은 점이 아니라, 그 주변에 있는 다수의 작은 점들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 오직 이 작은 점들만이 옆쪽으로 휘어서 회절하게 된 뢴트겐 광선이 일으킨 효과들이다. 물리학자들은 이러한 사진을 보고 수학적인 추론을 통해 격자 구조를 역으로 추적함으로써 격자의 구조를 탐구했다. 이렇게 추론된 격자 구조는 X선을 사용하여 방사선을 쬐었을 경우 관측된 검은색 간섭 점들을 정확하게 산출해냈다. 일반인에게는 이와 같은 일들이 거의 불가능한 업적으로 여겨질 것이다. 실제로 사진 건판에 있는 소수의 검은 점들로부터 결정의 내부 구조를 논증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사진 건판 위의 점들은 너무나 놀라운 규칙성을 보여주기 때문에, 이러한 규칙성만으로도 우리는 이러한 규칙성을 가능하도록 하는 법칙을 믿을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그림 21에서 우리는 점들의 배열 속에서 클로버 잎과 같은 형태를 볼 수 있고, 다른 결정들에서는 이와는 다른 형태를 볼 수 있다. 결정에 대한 연구 전체는 실험 결과와 너무나 잘 일치하고 그 성과가 너무나 컸기 때문에, 결정 연구는 이제 물리학의 확장되고 자율적인 연구 분야가 되었으며, 더 이상 아무도 이 분야에서의 발견을 의심하지 않는다.
  

   물리학의 이 분야는 실천적인 적용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금속처럼 겉으로는 결정으로 보이지 않는 물질의 경우에도, 이를 더 정확하게 검사해보면 수많은 작은 결정들로 구성되어 있고 이 결정들이 서로 구분되지 않게 뒤섞여 있음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X선 조명 방법은 철 막대에 적용되었고, 이제 우리는 이 방법으로 철 학대의 강도를 시험할 수 있게 되었다. 직물 역시도 X선을 이용해서 탐구되었으며, 그 결과 기술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직물의 구조에 대한 결론적인 지식 역시 얻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어의 발견은 이론적인 탐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거대한 업적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한 세대의 탐구자들 전체가 이 발견에 의존했고, 한동안 물리학이 해야 하는 일은 단지 양자 이론과 보어의 원자 모형을 새롭게 적용해서 이를 입증하는 것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물리학자들은, 필요한 경우에는 보어의 원래 가설에 수정을 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러한 방법으로 얻은 발견들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지구가 매일 자전축을 중심으로 회전하는 것에 대응해서 전자들 역시 그 자신의 축 주변을 회전한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었다. 하나의 점이 그 자신의 축 주변을 회전할 경우 이 회전 운동을 알아차릴 수 없다. 왜냐하면 점의 축 회전 같은 경우, 그 어떤 연장된 것도 축 “주변”을 회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록 전자가 매우 작다고 해도 단순한 점으로 간주될 수는 없었으며, 전자에는 일정한 부피가 할당되어 이 부피가 팽이처럼 무엇인가의 주변을 회전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보였다.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서 물리적 효과를 나타내는 전자의 각운동량이 도출되었으며, 이것이 정확한 공식에 영향을 주었다. 동일한 고찰이 원자핵에도 적용되어야 했고, 그 결과로 원자핵 역시 각운동량을 가짐이 확인되었다. 이에 더해 이러한 새로운 개념은 화학에도 매우 흥미로운 귀결을 가져왔다. 사실상 수소에는 서로 아주 미세한 차이가 있는 두 가지 종류의 형태가 있다. 분자를 이루는 두 개의 원자핵이 동일한 방향으로 회전하는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는지에 따라 두 종류의 수소가 서로 구분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처음에는 이론적으로 계산되었으며, 이후 실험실에서 실제로 두 종류의 수소가 분리됨으로써 실험적으로도 입증되었다. 이 수소는 각각 오르토 수소와 파라 수소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눈부신 이론적 구조 뒤에는 위험을 알리는 그림자가 늘 도사리고 있었고, 사실 이를 많은 물리학자들도 알고 있었다. 그 토대에서부터 보어의 이론은 고전 물리학과 상충되었다. 이러한 상충의 결과로 이상한 불확실성이 모든 물리적 사고에 퍼졌고, 이는 이전까지 물리학에서 알지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여전히 물리학의 여러 곳에서는 고전적인 방식의 사고가 필수 불가결했으나, 다른 곳에서는 보어의 모순적인 가정을 옹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적응을 위한 일종의 외교적 기법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이들은 두 개의 일관되지 않은 사유 방식 사이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어떤 명백한 불합리함도 발생하지 않고 참을 수 있을 만한 통합성이 나타나도록 했다. 이론을 다루는 이와 같은 곡예(juggling)는 놀랄만한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 이러한 개념들은 분명 일종의 타협으로 보였다. 어떤 견고한 기초 없이 일정한 금지를 도입하거나 특정한 규칙들을 도입하였으며, 이러한 과정이 거듭될수록 원래 가설들에 추가로 도입된 내용들 사이의 불일치가 증가했다. 이는 성공과 모순이 이상하게 결합된 시기였고, 이는 마치 빛에 대한 파동 이론을 발전시키기 위해 애쓰던 프레넬의 시대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 오늘날의 우리는 이러한 유사성이 단순한 유비보다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두 시대와 관련된 물음들이 근본적으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파동 또는 입자”라는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한 물음은 양자 이론에서도 근본적으로 중요하다. 물리학자들 스스로가 이와 같은 상황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으며, 주도적인 물리학자들은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저마다 계속 노력하고 있었다. 모순을 해결하는 것은 전에 했던 것처럼 임시방편적이고 새롭게 타협하는 방법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새롭게 통합된 물리학에 이르는 길을 찾기 위해서는, 완전히 새로운 물질 이론의 윤곽이 그려져야 했고 더 심오한 이해가 적응의 기법을 대체해야 했다. 가장 최근의 몇 년 동안 새로운 원자 물리학에 접근하기 위한 심오한 시도들이 이루어졌으며, 다음 장에서 그러한 시도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