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노트 0002

강형구 2014. 12. 26. 10:47

   어제는 성탄절이었다. 성탄절이었지만 나는 대구 현풍에 있는 한 독서실에서 기말 과제를 작성했다. 박사학위를 끝낼 때까지는 아마도 이런 식의 삶이 이어지리라. 사실 나는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는가? 세상의 움직임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고,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삶을. 능력이 출중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나는 철학을 공부하는 철학도이다. 비록 나는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이 직업을 통해 이 세상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있지만, 이 땅의 철학이 유지되고 발전되는 데에 조금이나마 기여하는 것 역시도 내게는 일종의 운명이자 사명이다.

 

   방금 막 이번 학기 마지막 과제 제출을 끝냈다. 시원섭섭하다. 아마 한동안 주말에는 글을 읽는 일 이외의 다른 일들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현재 내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운전을 연습하는 것 아닐까? 운전 면허증을 따고 너무나 오랫동안 운전대를 잡아보지 않은 까닭에, 운전에 대한 아주 원시적인 두려움 같은 것이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다. 그러나 운전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가족, 특히 은혜와 부모님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다. 기본적으로는 내가 운전을 하되, 필요한 경우에 은혜나 아버지께서 운전을 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옳다. 세상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논문은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글로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의도적으로 글쓰는 것이 아주 일상적인 것이 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해진다.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읽으면 내가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 그래서 최대한 그다지 깊이 있는 글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글을 많이 써보는 경험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학부 시절 매일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짧막한 글들을 최소한 한 개씩 올렸던 경험이 있다. 그것이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때 나의 글쓰기 선생님은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che)였다. 당시에 나는 책세상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니체의 전집을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상 읽었다.

 

   이번 학기에는 진정으로 좋은 학점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제는 좋은 학점이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나는 글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표현하고 싶을 따름이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학점을 확인하지 않으리라. 대학원의 한 교수님이 쓰신 다음과 같은 글의 내용을 나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박사과정은 일종의 통과의례다. 결국 공부는 혼자서 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학벌이나 학점을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최선을 다하며 이번 학기를 마무리 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학점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나는 나의 철학 연구를 앞으로도 계속 해 나갈 것이다.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철학도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술이 나의 체질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해가 지날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그저께와 어제 화이트 와인을 마셨는데, 마실 때는 기분이 좋았지만 마시고 난 후에 매우 힘들었다. 앞으로는 술을 자제해야 하리라. 나도 내년이면 서른 네 살이다. 아버지께서는 예순 셋, 어머니께서는 예순이 되신다. 부모님과 은혜를 생각해서라도 나의 건강은 나 스스로 잘 챙겨야만 한다. 좀 더 부지런히 달리고, 역기 운동을 하고, 윗몸 일으키기도 해야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면서 운전을 배우고, 좀 더 다른 사람들과 친근하게 지낼 수 있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30대의 남자가 되리라.

 

   만약에 내년에 은혜와 나 사이에서 예쁜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 것이다. 막상 아이를 가지려고 하니, 지금껏 살아오면서 잘못했던 많은 일들이 떠오른다. 과연 내가 아버지가 될 자격이 있을까? 만약 아이가 태어난다면, 나는 우리 부모님만큼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이런 저런 걱정들이 들긴 하지만, 두려움을 무릅쓰고 해야만 하는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일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다. 조카 건호를 보고 있으면 나도 건호같이 예쁜 아들을 낳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은혜와 나는 미리 아이들의 이름도 정해 놓았다. 남자 아이라면 '준모'라고 부를 것이고, 여자 아이라면 '한별'이라고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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