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계속 소박하게 간다

강형구 2025. 12. 28. 11:49

   고등학생 시절, 시립도서관에 갈 때마다 도서관 지하 식당에서 점심을 사 먹거나 도서관 근처 식당에서 저렴한 순두부찌개를 사 먹었다. 가끔 치르는 모의고사 성적이 좋든 나쁘든 나로서는 크게 상관없었다. 최종 성적에 맞춰서 철학과에 가려고 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국립대를 택했다. 국립대 등록금은 사립대에 비해 저렴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좋은 옷을 입거나 비싼 음식을 사 먹은 적은 거의 없었다. 학생회관 식당 밥이 제일 저렴해서 주로 학생회관을 이용해서 식사했고, 매점에서 김밥 한 줄을 사서 끼니를 때운 적도 많았다. 그러니까 뭐랄까. 나는 나를 종교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유학자, 승려, 교회 성직자 등)과 유사한 유형의 사람일 수 있겠다고 종종 생각했다.

 

   나는 철학을 전공했지만, 철학 전공자 특유의 자부심 혹은 자존감으로 살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사상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존심? 그건 전혀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철학 공부를 좋아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말을 잘하거나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사람은 전혀 아니었다. 미련할 정도로 성실한 건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았지만, 나는 결코 똑똑하거나 빛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 자체를 내가 원하지 않았다. 게다가 좋은 학점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어리석게도 학점 관리를 거의 안 했다. 그냥 지극히 평범한 철학과 학생일 뿐이었고 공부도 그저 꼴찌를 면했을 뿐이었다.

 

   내게 좀 특이한 면은 있었다. 정확하게 4년 만에 대학을 졸업했다. 게다가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주변의 지인들은 대개 공군 장교 시험에 응시했지만, 나는 육군 장교를 택했다. 군 생활을 할 때 나는 여유 시간에 거의 홍천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특별하게 공부를 잘 하지는 않아도 계속 책들이 있는 곳에서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 나는 그냥 교양 있는 사람 정도로만 평가받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부는 계속해서 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 그런 마음으로 대학원 공부를 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 공부를 하는 일은 내게는 일종의 행복이었다. 그렇게 공부하는 게 그저 즐거웠기 때문에 어떻게든 박사 학위를 끝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대학 교수가 된 지 2년 가까이 되었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학문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나의 이런 생각이나 태도를 좋아하지 않는 다른 교수님들이 계실 수 있다. 그런 순진한(나이브한?) 태도를 가지고 어떻게 철학자라 할 수 있느냐?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나는 내 생각과 태도를 고수한다. 왜냐하면 내 생각에 이건 일종의 선택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우리 학교의 전임교원 채용 공고에 지원해서 서류 심사, 공개 강의 및 면접 심사, 최종 면접 심사를 통과했다. 이런 일련의 절차를 통과했다는 게 곧 그 사람이 어떤 대단한 학문적 권위를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나는 개인적이고 임의적인 선택을 허용하는 일반적인 관점 혹은 태도보다는 공식적인 규정과 절차를 더 중요하게 평가한다.

 

   강의하고 논문을 쓰고 책을 번역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열심히 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애호가의 마음, 그저 공부를 좋아하고 아끼는 마음을 유지하고 있다. 교수가 되었다고 크게 변한 건 없다. 나는 그대로지만 그저 내게 붙은 이름만 바뀌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 겸손한 태도, 나의 전공이 아닌 여러 분야에 대한 특히 자연과학과 예술에 관한 관심. 나는 여전히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고 좋은 드라마도 즐겨 본다. 시립도서관, 군립도서관은 나의 쉼터다. 아마도 교수직에서 퇴임한 후에 나는 집과 가장 가까운 도서관에 나가서 매일 조용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을까. 나는 그냥 소박한 사람이고, 이렇게 계속 소박하게 사는 것을 편하게 느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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