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늘 어리면서도 늙은 상태에 있다. 이를테면 나는 나의 부모님에 비할 때 어리지만 나의 아이들에 비할 때 늙었다. 좀 더 객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대한민국 남성의 평균 수명을 80세 정도라고 할 때, 나는 43년을 살았기 때문에 지금껏 절반의 삶을 살았고 앞으로 40년 정도를 더 살 수 있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반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나는 계속 내가 생각하는 철학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에게 공부는 일종의 ‘자기 수양’ 개념으로 다가왔다. 당연히 이게 아닌 다른 식의 개념을 가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서울법대’에 들어가 판사 혹은 검사가 되어 우리 사회 속에서 높은 지위, 명예, 권력을 갖길 바랄 수 있다. 다른 누군가는 ‘의대’에 들어가 우리 사회의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따를 수 있다. 그러나 내게 공부란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자기 수양, 심신 단련, 다른 사람과의 경쟁과는 크게 상관없이 자기 스스로 고양하는 일과 비슷했다. 이런 개념은 지방에서 은둔하면서 학문에 정진한 유학(儒學)자들, 끊임없이 고행하며 번뇌에서 벗어나려 했던 승려(僧侶)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형성되었다.
그런데 이런 나의 개념이 우리 사회의 제도적 장치들과 온전히 합치하지는 않았고, 여기에는 장점, 단점 모두가 있었다. 우선 수양으로서의 공부와 가까운 ‘철학’이라는 학문이 사회적으로 별 인기가 없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쯤 도올 김용옥 선생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렇듯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현명한 철학자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찬사가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대학 학과로서의 철학과는 그 힘을 잃어갔다. ‘철학과 나와서 뭐 하며 사느냐’라는 상투적 걱정이 이미 사회 속에 팽배해 있었다. ‘철학과’ 입학은 그다지 경쟁이 치열하지 않았지만(장점), ‘철학과’를 졸업한 후 철학을 해서 먹고 사는 일은 쉬워 보이지 않았다(단점).
나는 철학이란 일종의 자기 수양이라고 생각했고, 나는 학부 과정에서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으므로, 우수한 학생들이 따르는 전형적인 학자의 경로를 따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못했다. 정말로 나는 학자가 되기보다는 더 공부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내가 육군 장교로서 군 복무를 한 건 그동안 소득을 얻기 위해서였고, 석사과정에서 공부할 때도 아르바이트를 해 생활비를 직접 벌었다. 박사과정 입학 후 휴학하고 취직을 한 뒤 다시 공부한 것도 철학이란 내게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수양하는 하나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뛰어난 철학자가 되고자 한 적이 없다. 주변에서 그런 바람을 가진 사람을 적지 않게 봐왔지만, 아무리 해도 나에게는 그런 바람이 생기지 않았다. 반면 나와 같이 소박하게 수양으로서의 철학 개념을 가진 사람 또한 적지 않았다. 그냥 공부하는 게 좋아서 계속 공부하고 가르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는 말이다.
사실 나는 내가 대학교수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로서는 과학관에서 연구직으로서 일하면서 계속 과학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칠 수 있었기 때문이고, 어쩌면 그런 삶이 내게 더 어울렸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내가 지금까지도 철학에 관한 소박한 관점, 일종의 자기 수양으로서 철학을 보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뭔가 비범하고 새로운 통찰을 얻고 싶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는 새로운 사상 혹은 관점을 제시하고 싶다고? 적어도 나에게는 아니다. 나는 그저 수련하고 수양하는 마음으로 철학을 하고 싶을 뿐이고, 그 대상이 과학(혹은 수학)에 관련된 텍스트인 셈이다. 나의 주된 관심은 인간 혹은 사회라기보다는 ‘자연(自然, nature)’이기 때문이다.
나는 달리기 혹은 춤 혹은 노래하듯 철학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권한다. 왜냐하면 내게 철학이란 진리가 아닌 자기 수양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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