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과학철학으로 먹고사는 일

강형구 2025. 9. 17. 09:07

   내가 생각할 때 나에게는 아주 집요한 면이 있다. 고등학생 시절 이래로 그 어떤 상황에서든 계속 과학철학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을 하기 위해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나왔고, 대학에서는 철학을 전공했으며, 군 복무를 하면서도 계속 도서관에 나가 과학철학에 관한 책들을 읽었고,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에 나가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결국 지금은 대학에서 과학철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묻는다. 과연 내가 과학철학을 하면서 먹고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문제에 답하기 쉽게 더 직접적인 형태로 바꿔보자. 나는 과학철학을 통해서 무엇을 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과학적 지식의 전반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싶다. 이런 바람의 근저에 있는 거친 직관은 인간의 과학적 지식이 대략 두 종류의 기능을 한다는 평가다. 첫째, 과학적 지식은 인간의 축적된 경험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앞으로 인간이 어떤 경험을 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역할을 한다. 둘째, 과학적 지식은 인간이 세계에 대한 일정한 상(象, image)을 형성하고 이를 유지 혹은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세계 탐구의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나는 과학을 공부하다가 교과서 혹은 문제집에 수록된 과학에 대한 ‘설명’ 혹은 ‘해석’에 만족하지 못해서 과학철학(+과학사)으로 전향했다. 과학이라는 실천(혹은 게임)에 직접 참여해서 모종의 인정과 보상을 받는 일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고, 학교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그런 실천(게임)에서 두드러지게 좋은 실적을 얻지도 못했다. 결국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해 나갈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이 맞다. 지금까지도 나는 과학을 ‘설명’ 혹은 ‘해석’하여 과학적 지식이 우리 인간에게 제공하는 ‘상’을 제대로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싶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을 잘 이해하고 올바르게 해석하여, 이러한 이해와 해석을 우리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싶다. 대학에 다닐 때는 과학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일을 통해서 나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가 매우 불투명했고, 이러한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이런 활동이 먹고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리라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 나는 대학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과학을 이해하고 해석하여 특정한 방식으로 이를 표현하려는 나의 과학철학적 활동이 나와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온전히 실감하지 못한다. 마치 꿈만 같다.

 

   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내가 과학철학적 활동으로 생계유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역량이 성숙했음을 뜻한다. 과학철학은 일종의 문화적 활동이며, 문화적 활동은 경제적으로 발전한 사회에서만 수용(혹은 용인)할 수 있다. 과학철학은 과학지식의 직접적 습득과 적용만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과학지식의 다양한 측면들을 이해하고 이를 자유롭게 해석하려는 활동이다. 비슷한 예로 문학을 생각할 수 있다. 문학이 없더라도 사람은 살 수 있고 문학은 삶에 ‘관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 가치를 갖듯, 과학철학이 없더라도 인간은 과학은 할 수 있지만 과학철학은 인간의 과학 활동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결국 과학철학으로 먹고산다는 것은, 나 아닌 다른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과학이라는 활동(과학지식의 구체적인 내용, 과학의 특징, 과학자들의 행태 등)을 더 잘 이해하게 만들고, 예비 과학(공학)자들이 자신들이 하는(혹은 하게 될) 활동이 갖는 의미를 성찰하게 해주는 역할을 함으로써, 과학에 대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이해와 친숙함을 증진하여 나의 사회적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과학철학적 활동은 사회적으로 공인된 나의 공식적인 지성적 노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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