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연구 이야기

보편력에 관한 단상

강형구 2021. 12. 22. 17:36

   물리학에서 막대와 시계가 필요한 이유는, 시계를 통해 물리적 사건이 발생한 시간을 측정하고, 막대를 통해 물리적 사건이 발생한 거리를 측정하기 때문이다. 보편력(universal force)은 그 정의상 특정 기준계 A에 속한 관측자가 식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보편력은 차폐시킬 수 없고, 모든 물질들에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쳐, 보편력이 작용하는지의 여부를 관측자의 관점에서 인지적으로 식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수 상대성 이론의 상황 즉 중력이 없는 경우, 우리는 시공간의 계량이 유클리드적 계량 법칙을 따른다고 전제를 할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빛 신호를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정지해 있는 점들을 식별하고, 서로 다른 점들 사이의 거리 관계를 따짐에 있어서, 우리는 유클리드 기하학의 법칙을 일관되게 적용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 경우에는 시계와 막대의 행태 역시 빛 기하학의 법칙을 따른다.

 

   그런데 이때 우리는 막대와 시계에 보편력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전제한다. 보편력을 0으로 설정하지 않으면, 보편력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시공간의 기하학적 형태가 달라지므로 일종의 미결정성이 발생한다. 우리는 이러한 미결정성을 허용할 이유가 없다. 즉, 우리는 F=0으로 두는 G를 선택하지, 굳이 G'+F를 선택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력이 작용하는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등가 원리 사고 실험, 회전 원판 사고 실험에 따르면, 정적인 중력장 또는 정상 상태의 중력장 아래에서 시계, 막대와 같은 측정 도구(계량적 도구)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관계가, 국소적 관성계와 비교했을 때 유클리드 기하학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 때 성립하는 관계는 가속도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의 유클리드적 관계는 일정한 것(상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의 비유클리드적 관계는 변하는 것(변수)이다.

 

   기준계 A에서 여전히 막대와 시계에는 보편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다만 막대와 시계로 표현되는 시공간 곡률이 유클리드적 곡률이 아니고, 이 곡률 또한 상황에 따라서 계속 변한다. 우리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도 측정 도구들에 보편력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

 

   그러나 만약 기준계 A에서 측정 도구들을 통해 경험적으로 파악되는 시공간 곡률이 국소적 관성계의 시공간 곡률과 다르다면, 우리는 기준계 A의 곡률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데, 아마 이를 위해 측정 도구가 일종의 보편력을 받아서 그렇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4차원 간격의 관점에서는 보편력이 작용하지 않는다. 이는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도 서로 다른 두 기준계 사이에서 일반 공변성이 만족되기 때문인데, 일반 공변성은 등가 원리 사고 실험과 회전 원판 사고 실험의 전제이다.

 

   결론적으로, 물리학을 서술할 수 있을 정도로 미분적으로 안정된 기준계에 속한 관측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경우에서든 측정 도구들은 보편력을 받지 않는다고 가정해야 할 것 같다. 측정 도구들이 보편력을 받는지의 여부는 서로 다른 두 기준계에 속한 관측자가 자신의 기준계가 갖는 시공간 곡률을 비교할 때만 파악될 수 있다. 즉, 일반 상대성 이론의 상황에서 보편력은 비교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