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통계물리학과 확률(1/3)

강형구 2024. 5. 8. 20:33

   고대 그리스인 중 물, 불, 공기, 흙, 에테르 등과 같은 5가지 종류의 물질이 이 세계를 구성한다고 생각한 인물들이 있었다. 그러나 잠시만 생각해보면 이와 같은 분류가 매우 거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암석들이 있고 이들을 잘게 쪼개면 작은 알갱이들이 남는다. 작은 알갱이들은 물에 녹일 수 있으므로 액체가 될 수 있으며, 가연성 물질은 태우면 연기가 되어 대기 속으로 동화된다. 천상의 물체인 에테르는 몰라도, 물, 불, 공기, 흙이라는 4 원소 사이에는 변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이들은 실제로 원소라고 말할 수 없다. 이들보다 더 다양하고 기초적인 원소가 존재해, 이들이 결합하여 물, 불, 공기, 흙을 만들 것이다. 기체, 액체, 고체는 원소가 아니라 물질의 상태이다.

 

   어떤 물리적 대상이 있을 때, 이 대상의 시간, 위치, 속도, 가속도, 질량, 운동량과 같은 변수들은 이른바 ‘역학(mechanics)’과 관련된 변수들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학적 변수들에 숫자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측정’을 해야만 한다. 측정 없이도 이러한 변수들이 존재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다. 인간과 비교할 때 거시적인 크기의 물체들에 이와 같은 역학적 변수들을 부여하고 이 변수들의 크기를 도구를 통해 정확하게 측정한 후, 이러한 양들을 계산할 수 있는 수학적 도식 체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일종의 역사적인 사실이다. 이를 대표적으로 잘 보여주는 학문이 바로 ‘천문학’이다. 뉴턴의 고전역학이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티코(Tycho), 케플러(Kepler)를 거쳐 다름 아닌 천문학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하지만 역학적 변수들이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 세계의 다양한 현상들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기학과 자기학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전하량, 전류, 전압 등은 인간이 측정 도구를 통해 다양한 종류의 전기 현상을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도입한 변수들이다. 이때 역학적 변수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場, field)’의 개념을 최초로 도입했던 이가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 1791-1867)이고 그게 바로 19세기의 일이다. 이후 맥스웰이 장의 물리학인 전자기학을 수학적으로 체계화했고,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의 원리를 전자기학을 포함한 모든 물리 이론으로 확장했다.

 

   유사하게, 18-19세기에 전자기현상이 아닌 다른 부류의 현상에 대한 탐구도 이루어진다. 연금술로부터 비롯된 다양한 물질들에 대한 탐구, 다양한 기체의 연소에 대한 탐구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탐구 과정에서 역학, 전자기학에서와는 다른 부류의 변수들이 나타났다. 온도, 열량, 부피, 압력, 일 등이다. 이러한 변수들이 처음부터 존재했고 그것을 인간이 발견했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서 생존하고 자연의 다양한 현상을 자신의 조직을 위해 이용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자연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특정한 부류의 현상을 만나 이를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분류하는 과정에서 변수들을 만들어 낸다. 바로 이러한 변수들이 이른바 ‘열역학적’ 변수들이다.

 

   열역학적 현상에 대한 사회 차원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탐구를 통해, 이러한 현상을 기술하는 다양한 정량적 법칙들이 확인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기체의 압력, 부피, 온도 사이의 관계를 기술하는 법칙(PV=nRT)이다. 그런데 이때는 이미 뉴턴의 고전적 역학을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열역학적 현상들을 구성하는 기초적인 대상이 다름 아닌 작은 알갱이들이며, 이 알갱이들 또한 거시적인 물체들과 마찬가지로 고전적 역학을 따르리라 추측하는 것은 일견 당연했다. 이런 추측 아래에서 자연과학자들은 역학과 열역학 사이의 관계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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