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소박한 바람

강형구 2025. 11. 23. 11:35

   돌아보면 과거의 나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몰랐다. 물론 지금도 내가 세상 물정을 아주 잘 아는 건 아니다. 그런데 분명한 건 하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나라는 사람의 바람은 단순하고 소박했다는 거다. 나는 돈이나 권력에는 관심이 없었고, 나 자신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냥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히 내 할 일을 하며 살고 싶었다.

 

   이번에 나는 국립대학 교수 자격으로 교육부와 한국장학재단이 주관하는 ‘대한민국 인재상’ 고교 청소년분과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나 이외의 다른 심사위원들은 화려한 이력을 가진 분들이다. 예를 들어 나와 한 팀을 이루어 면접 심사를 진행한 분(인천 지역 사립학교 이사장)은 자제분 둘을 모두 미국에서 유학시켰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 대부분 유명한 수도권 사립대 교수. 아이가 있다면 유학 보내 공부시키는 분위기. 서울에서도 좋은 지역의 좋은 집에서 사는 분들. 그런데 나는 이런 분들이 좋아 보였지만 크게 부럽지는 않았다. 사실 이제껏 나는 그런 화려한 삶을 바란 적이 없고 바라지도 않기 때문이다.

 

   만약 내게 다시 한번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굳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것이 나의 의지로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나는 부산 사람이기에 부산에 있는 대학(가급적 장학금을 주는 국립대학)에 진학해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냐면, 나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하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다른 지역(대구)에 정착했기 때문이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정착해 살아가는 데는 수도권 소재의 대학을 졸업했다는 점이 별다른 장점이 되지 못하며 오히려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나는 서울이란 곳을 특별하게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내게는 수도권에 관한 특권 의식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의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수도권의 문화 수준이 높다는 점은 우수하게 평가하지만, 기형적으로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수도권만 두드러지게 발전해 있다면 그건 장점이 아니라 일종의 문제이자 병(病)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는 대구에 정착했고, 우리 아이들도 가급적 대구 지역에서 정착해 살게 하고 싶다. 아이들이 대구 지역에서 살아간다면 나와 아내로부터 이모저모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대구 지역에도 좋은 대학들이 제법 있다. 만약 내가 가족들과 함께 광주나 목포에 정착했다 해도 비슷하게 결정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전라남도와 광주 지역에 정착해 사는 것을 권했을 것이다.

 

   어떤 관념 체계가 합리적인 수준을 넘어 비합리적인 맹신으로 발전하면 나는 그걸 일종의 ‘이데올로기’라고 부른다. 수도권 중심주의, 대학 서열화가 그러하고, 이와 비슷한 줄 세우기의 관점이 우리 사회 영역 전반에 퍼져있다. 이건 계속 유지하고 재생산해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바꿔나가야 하는 구조다. 강원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강원도에 정착하여 강원도를 발전시키는 게 이치에 맞는 일이다. 우리나라 지역 곳곳의 인재들이 수도권에만 쏠리는 것은 심각한 질병이다.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설혹 그게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실제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그 현실적 질서에 순응하고 그 비합리적인 병폐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는 게 나의 신념이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나와 아내로부터 멀리 떠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계속 서로 너무 가까이 사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다. 자식들을 언제까지나 품고 사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절한 거리를 두면서 가족끼리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내 바람은 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 나와 아내에게서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짝을 찾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키우며 소박하고 행복하게 잘 사는 거다. 오로지 그것만이 나의 바람이지, 무슨 학교에 가서 어떤 직장을 갖는지 등은 지극히 부수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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