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누군가가 ‘자신은 지지 않는 게임을 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은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 보면, 지는 게임을 하든 이기는 게임을 하든 그게 크게 중요한 것인지 물을 수 있다. 게임에서 이기든 지든 그게 내 생명과 평온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큰 상관이 없다. 그러므로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나의 평온한 삶이며, 그 이외의 것은 모두 부수적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며 느끼는 행복이 생명체인 인간에게도 매우 큰 의미를 갖지만, 사실 그것은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문명화된 인간에게는 필수적인 의무 사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선택적인 사항이다. 결혼하지 않고서도, 아이를 낳지 않고서도, 사회적 존재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자기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해야 한다는 것, 아이를 둘 이상 낳아 잘 길러야 한다는 것은 내가 속한 세대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가졌던 관념이었고, 나는 가급적 그 관념을 이행하고자 애쓴 것일 뿐이다. 어쩌면 나는 너무 순진하게 그 관념을 따르려 애썼는지도 모르겠다. 나의 실천을 후회하지 않지만, 나의 실천을 가능하게 한 그 관념에 대한 믿음이 확고부동하게 올바른 것이었다고 착각하지는 않으려 한다.
나에게 삶은 기본적으로 고독하고 권태롭고 잉여적이다. 나는 인간의 삶이 그런 것이라 보며, 이는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생명체에게도 적용된다.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의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라. 기본적으로 생명이란 고독하고, 권태롭지 않은가? 굶주림을 채울 필요가 없는 대부분의 시간에는 생명체에게 딱히 할 일이 없지 않나? 고독하고 권태로운 것이 어쩌면 생명에게는 (또한 전체 자연에 있어서)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인데, 인간이 이를 견디지 못해서 각종 놀이를 만든 게 아닐까? 어쩌면 정치적인 권력 게임과 이와 결부된 전쟁마저도 인간에게는 잉여적이고 문화적인 일종의 ‘놀이’ 아닐까?
그런데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사회적 집단이 만든 이 ‘놀이의 질서’에 편입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좋든 싫든 게임에 참여해야 하고, 그 게임에서 전제하는 규칙들을 따라야 하며, 게임이 마련해 놓은 보상과 처벌에 익숙해져야 한다. 인간은 삶의 권태와 잉여성을 잠시 망각하기 위해 게임을 만들었는데, 이제 인간은 역으로 게임에 집착하고 목을 매게 되어버린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의 게임이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아주 강력한 실재성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인간의 상상과 허구는 물리적 세계를 설명하고, 예측하고, 그 무엇보다도 통제한다. 그리고 그런 설명과 예측과 통제가 인간에게 실질적인 생명력과 안락, 쾌락을 제공한다.
돌아보면 나 역시 이 게임의 규칙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대한민국이라는 인간 공동체에서 태어나, 표준적인 교육 과정이라는 게임 속에서 한 명의 플레이어로서 다양한 부속 게임들을 플레이했다. 내가 군 복무를 했던 40개월 동안 전쟁이라는 극단적 게임이 벌어지지 않았던 것은 나로서는 천만다행한 일이었다. 그 후 나는 직장 생활이라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 치열하게 준비했던 일, 직장 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게임의 보상인 자본을 얻기 시작했던 일을 기억한다. 내가 이 모든 것이 게임일 뿐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든 평화롭게 건강하게 잘 살아가는 것이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것이며, 다른 모든 것들은 그저 게임일 뿐이라는 의미에서 크게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만드는 게 게임인 것은 맞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보면 인간의 필수적인 능력인 언어조차도 일종의 게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평화롭고 건강한 삶이라는 나의 기본 전제마저도 확고하지 않다고, 문화적인 존재인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짜릿하고 흥미로운 강렬한 느낌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조차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이 보편적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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