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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는 일

강형구 2017. 6. 24. 04:31

 

   전문가란 일반 사람들이 해내기 어려운 전문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최소한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며, 전문가로서의 능력 및 역량을 인정받아야 한다. 특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하거나,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광범위한 인정을 받으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철학자를 생각해보자. 어떤 사람이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으면 그를 철학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 사람이 철학에 관한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리 철학에 관한 깊은 식견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를 공식적인 전문가라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종류의 전문가일까? 나의 역량은 어떤 분야에 특화되어 있을까? 우선 나는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을 전공했으니, 아마도 나를 과학사 및 과학철학에 대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아주 뛰어난 전문가는 아니며, 약간 표현이 어색하지만 초보 전문가라 할 수 있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 의사, 변호사, 노무사, 변리사, 요리사, 건축사 등등. 내가 잘 할 수 없지만 처리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나는 그 일을 직접 하기보다는 전문가에게 그 일을 대신 해달라고 의뢰한다.

  

   최근에 나에게는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하는 일이 몇 가지 생겼다. 우선 요 며칠 새 나의 휴대전화의 진동 기능이 정지되었다. 전화를 오래 사용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전화가 오거나 문자 메시지가 왔을 때 진동이 되지 않아서 놓친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나로서는 도무지 휴대전화의 진동 기능을 복구시킬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대구시 지하철 1호선 진천역 근처에 있는 삼성전자 서비스센터에 방문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휴대전화를 고칠 수 있다. 또 다른 일은 노트북에 관한 것이다. 올해 4월 초에 구입했던 노트북이 며칠 전부터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전원을 켜고 조금 사용하다 보면 - -” 소리를 내다가 전원이 꺼진다. PC를 초기화하고 운영체제인 윈도우10을 재설치 해봐도 복구가 되지 않는다. 나는 노트북을 수리하는 것도 내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실 내가 직접 해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것이 약간 번거롭게 여겨지기도 한다. 휴대전화를 수리하기 위해서 서비스센터에 찾아가야 하고, 노트북을 수리하기 위해서 회사 직영점에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만능이 아니기 때문에, 아프면 병원에 가야하고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교육기관에 가야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수준의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제법 훌륭한 일이다. 의사, 변호사 등과 같은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왜 우리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를 전문성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하지 못하지만 삶에 꼭 필요한 일들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다.

  

   내가 전문가의 힘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처해보니,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독자적인 전문성을 갖추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과학의 역사, 과학의 철학에 대해서 궁금한 사람이 과연 나에게서 유용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나는 교양과 식견이 풍부한 일반인과 대비하여 차별화되는 특별한 지식과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이런 물음을 던지고 보니, 아직까지 나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갖추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두루 인정받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전문성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전문성을 갖추어야 내가 사회 속에서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되는 내 나름의 고유한 기능을 담당할 수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