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이야기

결혼 11년

강형구 2025. 6. 1. 08:48

   어제인 2025. 5. 31.은 아내와 내가 결혼한 지 11년이 되는 날이었다. 돌아보면 그 11년 동안 우리에게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내와 나 사이에 세 아이가 태어났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았고 두 개의 공공기관에서 일하다 국립목포대학교의 교수가 되었다. 아내 또한 박사과정을 마쳤고 국립대구과학관에서 계속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내가 가장 보람되다고 느끼는 것은 나에게서 시작된 과학기술자료 조사 연구 전시 사업을 아내가 이어받아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내는 나보다 이 일을 훨씬 더 잘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어한다. 어제는 대구과학관에서 큰 행사를 한다기에 점심을 먹고 아이들을 데리고 과학관에 놀러 갔는데, 아내가 조성해 놓은 전시관은 내가 과학관에서 일할 때 조성했던 전시관보다 훨씬 멋졌다.

 

   11년 전 아내와 나는 결혼식이 끝난 후 인천공항에서 출발해 핀란드 헬싱키를 거쳐 프랑스 파리(드골 공항)로 갔다. 파리에 도착하니 늦은 밤이었고, 아내는 호텔이 아니라 스튜디오(원룸)를 예약했었는데, 키를 받으러 가니 영업시간이 지나 문이 닫혀 있었다. 부랴부랴 근처에 있던 행인에게 물어 숙박 예약 사이트 업자랑 통화를 해보니 특정한 장소로 이동하면 금고에 키가 보관되어 있다고 했고, 택시를 타고 그곳으로 찾아가 키를 가지고 다시 예약한 숙소에 택시를 타고 갔다. 온갖 고생을 한 후 문을 열고 스튜디오에 들어가니 탁자 위에 환영의 뜻을 담은 와인 한 병이 놓여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호텔이 아닌 스튜디오에서 직접 요리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1주일 동안 파리에 머무르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아내와 함께 신혼집으로 삼으려고 서울대입구역 근처에 투룸을 마련해 두었는데, 아내가 국립대구과학관에 합격하는 바람에 과학관 근처에 낡은 아파트 하나를 새로 마련해서 주말부부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산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라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5층까지 걸어 다녀야 했고 방 1개에 욕실 겸 세탁실 1개인 작고 아담한 아파트였다. 그렇게 우리는 아주 소박하게 신혼 생활을 시작했고, 이사를 하면서 집을 넓혀가는 게 우리 부부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우리는 곧 30평형 신축 아파트 전세를 얻었고, 집 주인이 전세 기간 전에 집을 빼라고 해서 과학관 근처에 있는 다른 신축 아파트로 한 번 더 전세로 옮긴 후, 2년쯤 지나 대구과학관에서 걸어서 10분이면 갈 수 있는 33평형 신축 아파트를 샀다. 이후 둘째와 셋째가 태어나기 전 과학관에서 약간 떨어진(차로 10분 거리) 38평형 아파트로 옮겼다.

 

   아파트를 사기 위해 받았던 대출은 얼마 남지 않았고 내년쯤이면 모두 다 갚는다. 이후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지금까지 아내와 나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한 사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나의 아이들은 모두 대구과학관 내에 있는 국공립 과학나무 어린이집에 보냈다. 첫째를 일곱 살까지 보낸 후 초등학교에 입학시켰고, 둘째와 셋째도 지금 과학나무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다. 아이들을 따로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는 않았다. 현재 첫째는 걸어서 집 근처의 초등학교에 통학하고 있고,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영어 학원과 미술 학원에 다니며, 윤선생 영어교실과 눈높이 학습(국어, 수학, 한자)을 한다. 둘째, 셋째는 눈높이 학습(국어, 한자)을 한다. 아내와 내가 틈틈이 아이들의 공부를 도와준다.

 

   겉으로 보면 소박하고 수수하지만, 그래도 우리 부부는 지난 11년 동안 퍽 많은 일들을 이루어냈다. 아내와 나 모두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거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제법 뿌듯한 성취다. 아이를 하나도 채 낳지 않는 시대에 아이 셋을 키우며 아등바등 살고 있긴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행복과 위안을 주는 존재는 그 무엇보다도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나와 아내의 예상 밖이며 우리의 걱정보다 더 활기차고 강하다. 어쩌면 아이들로 인해 지금까지 몰랐던 나 자신의 특정한 측면들을 발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내 남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닌 아이들이다. 참으로 아이들이 나와 아내를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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