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Days
내겐 두 종류의 일상이 있다. 학교에 수업이 없는 날, 아침에 일어나 둘째와 셋째를 씻겨 옷을 입혀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이제 첫째는 스스로 학교에 잘 다닌다. 그런 다음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수업 준비를 비롯한 내 공식적인 일들을 하나씩 처리한다. 그러다 보면 금방 점심시간이다. 간단한 점심 식사가 끝난 다음에는 집안일의 시간이 온다. 밀린 빨래를 집안 곳곳에서 찾아 세탁기를 돌리고, 집안 전체를 정리한 다음 진공청소기로 청소한다. 대걸레로 집안 곳곳을 닦고,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쓰레기를 버린다. 그러면 어느새 학교를 마친 첫째가 집에 돌아오고, 나는 다시 어린이집에 가서 둘째와 셋째를 하원시켜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첫째는 학원에 가고, 둘째와 셋째는 간식을 먹으며 장난감을 갖고 놀거나 책 혹은 TV를 본다. 이윽고 아내가 퇴근해서 같이 아이들을 돌본다.
학기 중 학교 수업은 3일 혹은 4일 연달아 있다. 수업이 시작하는 날에는 아주 이른 새벽에 짐을 챙겨 차를 몰고 학교로 간다. 이른 새벽이라 차가 거의 없어서 밀릴 걱정이 없다. 대개 음악을 듣거나 강의를 들으면서 운전하는데, 이제는 익숙해진 길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습관처럼 움직인다. 가다가 간혹 다소 밀리는 곳이 있다. 나는 그곳이 어디인지 안다. 학교에 도착하면 아직 이른 아침이고 상쾌하다. 연구실에 들어가면 커피포트에 물을 채워 물을 덥힌다. 커피를 마시며 오전 수업을 준비한다. 가게에서 사 둔 향도 꼭 하나씩 피우는데, 향을 피우면 다른 냄새들이 달아나고 일에 집중하기에 좋다. 수업이 시작된다. 말하기 시간. 수업 이외의 시간에 나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업은 내게 일종의 말하기 시간이다.
수업이 끝나면 다소 지친 상태로 연구실에 돌아와 앉아 좀 쉬는데, 이때 발 마사지기가 유용하다. 15분 정도 앉아 마사지한 후 피로가 좀 풀렸다 싶으면 다시 일을 한다. 공식적인 행정 업무를 하거나, 수업을 준비하거나, 나의 연구를 하거나, 다른 사람이 내게 부탁한 일(감수 혹은 학술지 논문 심사)을 한다. 그러다 보면 시간은 훌쩍 가고, 저녁이 되면 우리 학교 기숙사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한 후 학교를 한 바퀴 산책한다. 연구실로 돌아가 다시 노동을 시작한다. 일종의 두뇌 노동이다. 대학 교수는 특정한 두뇌 노동에 특화된 사람이다. 수업을 위해, 논문을 쓰기 위해 두뇌 노동을 한다. 교수에게는 비교적 상당한 독립성과 자율성이 주어지지만, 외부의 관점에서는 다소 고독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밤이 깊어지면 마지막 통학버스를 탄다. 버스에 있는 한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나는 대개 책을 읽는다. 이윽고 가족들이 없는 숙소에 도착하면 읽던 책을 마저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본다. 이 시간은 내가 나에게 주는 짧은 사치의 시간이다. 전기장판을 켜고, 침낭 안에 들어가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긴다. 그러다 다시 눈을 뜨면 아침이고 휴대전화 알람이 울린다. 출근하는 통학버스에서 어제 읽던 책을 계속 읽고, 학교에 도착하면 다시 어제와 같은 하루가 반복된다. 수업을 준비하고, 논문을 쓰기 위해 책이나 논문을 읽는다. 두뇌 노동도 노동이고, 이것은 일종의 노동 분업이다. 그냥 나는 노동자로서 나에게 맡겨진 노동을 하는 것일 뿐. 두뇌 노동이 빨래하고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일과 크게 다른 것일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한 주의 수업이 끝나는 날, 아침부터 아이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차를 몰아,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며 음악이나 강의를 듣는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둘째와 셋째도 첫째처럼 스스로 학교에 갈 것이고, 친구들과 어울릴 것이며,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조금씩 노력할 것이다. 반갑게 가족들과 만난 다음에는 집과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다시 시작된다. 나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줄 것이고, 어떤 경우에도 아이들을 지지할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수 있다면. 아마도 조만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Perfect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