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철학 이야기 139

시간에 대한 생각

시간이 대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할 수는 없어도,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2024년 2월 6일 오후 9시 14분이다. 지금 이 순간은 이제 다시 나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세계에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그 존재의 유지 혹은 변화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최소한 내 주변만 보면 그렇다. 물론 좀 더 먼 영역으로 논의를 확장하면 이 이야기는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나는 내 눈에 보이는 것들, 이른바 ‘국소적인 것들과 관련한 파악’을 상당히 확신한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최소한 국소적 기준계의 관측자에게 그러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이러한 시간의 흘러감을 부정할까? 그렇지는 않다. 기준계 A에서 보았을 때 기준계 B의 상대 운동(등속 또는 가속)에..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2)

이번 주 주말(1월 14일)까지 출판사에 책의 제목과 목차를 보내야 하므로, 이번 글은 그와 같은 실용적인 목표에 초점을 맞춰 쓰려고 한다. 책 제목은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이다. 그러면 이 책의 핵심 키워드 10개는 무엇으로 선정해야 할까? ① 20세기 이전의 과학철학 – 경험주의(흄)와 이성주의(칸트) ② 상대성 이론과 시간 및 공간의 문제 ③ 통계 물리학과 확률 개념의 문제 ④ 양자역학과 과학언어의 논리 문제 ⑤ 상대화된 선험 : 구성인가 규약인가? ⑥ 과학적 지식 속 규약과 경험의 역할 ⑦ 과학적 지식의 변화와 정당화 ⑧ 과학철학자와 과학자의 관계 : 라이헨바흐-아인슈타인 사례 ⑨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에 대한 비판들 ⑩ 21세기 : 경험주의 과학철학의 부활? 대략 이..

한스 라이헨바흐와 20세기 경험주의 과학철학(1)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을 위해 먼저 밝힌다. 나의 블로그를 몇 번 찾아오신 분들은 이미 아셨겠지만, 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못 된다. 생각나는 대로 약간 즉흥적이고 두서없이 글을 쓰는 편이므로, 이를 감안하여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다. 또한 하나 더 이야기할 것이 있다. 나는 나의 철학적 아이디어의 우선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우선권을 고집한다면, 나의 아이디어를 블로그에 쓰지도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나의 글들에서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그것을 자유롭게 자신의 목적에 맞게 활용하시면 된다. 그 분은 그 분의 글을 쓰는 것이고, 나는 나의 글을 쓰는 것이다. 나와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지만지) 사이의 인연은 퍽 오래되었다. 나는 2014년에 ..

인공지능이 ‘낯선 지능’임을 이해하고 그것과 상호작용하는 것

2023년 11월 현재, ChatGPT가 등장했던 초기에 인간 사회에 던져주었던 충격은 어느 정도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나의 경우 인터넷 즐겨찾기에 ChatGPT 홈페이지를 등록시켜 놓았고, 가끔 로그인하여 ChatGPT에게 이런 저런 주제들에 대한 의견을 묻곤 한다. ChatGPT는 상당히 똑똑하며, 나로서는 심사숙고하고 이런 저런 자료들을 많이 찾아보아야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주 빠른 속도로 비교적 만족스러운 대답을 내놓는다. 나는 처음에 ChatGPT를 시험해보면서 이질감과 당혹스러움을 강하게 느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것은 내가 ChatGPT를 의인화시켜서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나와 비슷한 다른 사람과 대화한다는 은연중의 전제를 갖고 ChatGPT에게 이런 저런 질문들을 던지고 ..

과학철학자는 과학철학을 하는 것일 뿐

내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글의 주제는 이것이다. “Reconsidering Einstein’s Philosophy of Science : Or, Putting Einstein’s philosophy into the tradition of philosophy of science”. 내가 이런 대담한(?) 주제를 생각할 수 있는 것 또한 당연히 여러 아인슈타인 연구자들의 과학사적 연구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과학철학자들이 물리학자인 아인슈타인에 대한 ‘지나친 우상화’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러한 우상화에 대해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나 자신이 고등학교 시절 아인슈타인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를 일종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면서 과학철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런 나의 초기 ..

노직, [지식과 회의주의(1981)](03)

Ⅱ. 회의주의 지식에 관한 회의주의자는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적게 알거나 전혀 알지 못한다고 주장하거나, 어쨌든 이러한 입장이 지식에 대한 믿음보다 덜 합리적이지는 않다고 주장한다. 철학의 역사는 회의주의자를 논박하고자 하는 서로 다른 많은 시도들을 보여준다. 이 시도들에서는 회의주의자가 잘못되었음을 증명하거나, 회의주의자가 지식에 대항하여 논증을 할 때 특정한 지식을 전제하므로 자가당착적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다른 시도들에서는 회의주의를 수용하는 것이 비합리적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왜냐하면 회의주의자의 모든 전제들이 참일 가능성보다는 그의 극단적인 결론이 거짓일 가능성이 높거나, 혹은 믿음에 대한 합리성은 반-회의적인 방식으로 진행해나가는 절차만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이다. 비..

노직, [지식과 회의주의(1981)](02)

2. 믿음에 이르는 경로와 방법 네 번째 조건에 따르면 만약 p가 참일 경우 그 사람은 p를 믿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의 사건을 우연히 보게 되었거나 이 사건을 기술하는 내용을 우연히 책에서 보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그 사건을 보거나 그 사건에 대한 내용을 책에서 보지 않았다면, 비록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그는 그 사건을 믿지 않을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배제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진실로 p를 믿고 있다. 그런 그가, 여전히 p가 참인 아주 비슷한 상황에서 그를 p라고 믿게 만드는 데 사용한 방법과는 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p를 믿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그는 비록 p가 여전히 참이라고 하더라도 ~p를 믿을 ..

노직, [지식과 회의주의(1981)](01)

지식 지식의 조건들 우리의 임무는 아래의 내용과 부합하는 추가적인 조건들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1) p는 참이다. (2) S는 p를 믿는다. 우리는 각각의 조건이 지식을 위한 필요조건이 되어, 이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데 실패하는 사례는 어떤 사례도 지식의 사례가 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 조건들의 결합이 지식에 대한 충분조건이 되어, 이 모든 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사례는 어떤 경우에도 지식의 사례가 되도록 하고자 한다. 우선 우리는 일상적인 사례들을 올바르게 다룰 수 있고, 지식을 지식으로 분류하고 지식이 아닌 것을 지식이 아니라고 분류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조건들을 공식화시키겠다. 그리고 난 후 우리는 이 조건들이 다른 논문들 속에서 등장한 어려운 사례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살펴보고..

게티어, [정당화된 참된 믿음은 과연 지식인가?(1963)]

최근 들어 한 사람이 주어진 명제를 안다는 것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서술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시도들은 대개의 경우 아래와 유사한 형식으로 진술될 수 있다. (a) S가 P를 안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은 다음과 같다. (i) P는 참이다. (ii) S는 P를 믿는다. (iii) S가 P를 믿는 것이 정당화된다. 예를 들어 치솜(Chisholm)의 경우, 아래의 조건들이 지식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서술한다고 본다. (b) S가 P를 안다는 것의 필요충분조건은 다음과 같다. (i) S가 P를 수용한다. (ii) S는 P에 관한 충분한 증거를 갖고 있다. (iii) P는 참이다. 에이어(Ayer)는 지식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c) S가 P를 안다는 것의 필요충분..